KBS의 어젠다는 무엇이었나?
<특집> 416 커뮤니케이션 4. KBS의 어젠다는 무엇이었나?
텔레비전은 무엇을 방송했는가?
열흘 넘게 보았다. 가라앉은 배, 배가 사라진 바다, 그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배, 그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도 있을 생명들의 모습과 이야기, 그리고 사냥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우리 방송의 의제설정인가?
공영방송 연구자로서 당신은 416을 무엇이라고 정의하는가?
권언유착과 무책임 저널리즘의 결과물이다.
416 분석에서 당신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언론 보도의 전문성 결여와 발표 저널리즘이다.
재난 상황에서 방송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확한 정보 제공, 여러 목소리를 연계하는 국민 통합, 이를 통한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재난 대처 방법의 전달이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416을 어떻게 전달했나?
소방차 저널리즘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소방차 저널리즘이 뭔가?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었던 우리 방송의 악습이다. 사건이 터지면 현장에 몰려들어 소란을 떨지만 정확한 정보, 의미 있는 뉴스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럼 뭘 하는 것인가?
선정 보도에 매달린다.
911과 416을 전하는 미국과 한국의 방송은 무엇이 같고 또 달랐는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지상파방송들은 911이라는 국가 재난 보도에서 국민 통합에 초점을 맞추었다. 416을 보도하면서 한국의 방송은 박약한 전문성이 드러났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선정 보도로 갔다. 홍가혜 인터뷰나 구조 학생에 대한 동료 사망 질문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416 보도에서 KBS의 어젠다는 무엇이었나?
공영방송으로서 특화된 어젠다를 볼 수 없었다. 이번 사건 역시 정보를 통제하려는 정부와 그들의 발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방송사들의 한계를 드러냈을 뿐이다.
KBS의 뉴스 게이트키핑 기준은 무엇이었나?
KBS가 자기만의 게이트키핑 기준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볼 수 없었다.
그럼 그들은 무엇을 한 것인가?
공영방송이라면 국가적 사태에 대응하는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구조작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심층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천안함 폭침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SNS에서 왜곡된 정보와 편파적 선동이 극성을 떨었다. KBS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왜 제 일을 하지 않은 것인가?
대책본부나 수사기관에서 발표하는 정보만 가지고 종일 보도하다 보니 물리적 한계가 드러났다. 같은 뉴스가 반복되면서 전파 낭비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다.
416의 유사 사례는 무엇인가, 그 일 이후 커뮤니케이션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을 들고 싶다. 당시 모든 방송사들이 붕괴 현장에 임시 스튜디오를 차려 놓고 난리 법석을 떠는 바람에 구조작업에 큰 차질을 빚었다. 붕괴된 폐허 사이로 내시경 카메라까지 들이대면서 보도 경쟁을 벌여 보도 윤리 문제도 지적되었다. 이후 이른바 ‘소방차 저널리즘’, ‘떼거지 저널리즘’의 병폐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후에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사건 현장에 몰려가 법석을 떠는 일은 다소 줄었다. 하지만 사건에 대처하는 차분하고 의미 있는 보도 관행은 아직 찾기 힘들다. 이번에 이런 문제점이 고스란히 그대로 나타났다.
당신에게 416은 무엇인가?
한 나라의 정치, 사회 수준은 언론 수준과 비례한다. 정치개혁만큼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공영방송 분야에서 416 연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다매체 다채널 시대,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여론 공론장들의 경쟁이 심화될수록 공영방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현실에 안주해 온 공영방송의 개혁이 절실하다. 내가 앞으로 연구하고 고민해야 할 주제다.
황근
황근은 선문대학교 언론광고학부 교수다. ≪디지털 방송 법제론≫(2008), ≪방송위원회의 정책 과제와 방향≫(2000)과 같은 책을 썼고 국회 정보화추진위원회 위원, 한국방송학회 방송법제연구회 회장과 같은 일을 했다. 방송, 그 가운데서도 공영방송을 연구한다. 열흘이 넘게 가라앉은 배, 배가 사라진 바다, 그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배, 그 배 안에서 구조를 기다릴 수도 있을 생명들에 대한 영상을 안방에 실어 나른 우리 방송의 416 보도를 보면서 그의 생각은 절실해진다. 공영방송은 개혁되어야 한다. 더 이상 권언유착과 책임을 모르는 방송으로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