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번역
컴북스 5월의 신간 리뷰. 마정미가 쓴 <<문화 번역>>
번역에서 언어 권력의 불평등성
말을 말로 바꾸는 것이 번역이다. 수평 관계처럼 보이지만 중력이 존재한다. 약한 말은 힘센 말에 끌린다. 번역은 문화의 태도가 되고 권력의 흐름이 된다. 세계는 평평할까?
인종, 민족, 국가와 같은 차별적 개념들이 혼종성 개념으로 바뀌면서 인종 간, 민족 간, 국가 간 경계를 넘는 새로운 담론이 일어난다.
<<문화 번역>>, xii쪽
문화 번역이란 무엇인가?
이질 문화가 소통하며 혼종하는 과정이고 여러 문화가 갈등하면서 발생하는 양상이다.
어떤 조건에서 진행되는가?
번역이 이루어지는 특정 시공간의 맥락과 문화 번역의 행위자에 대한 이해다.
언어가 아니라 문화가 핵심인가?
문화를 전달하는 유력한 과정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번역은 언어의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 이질적인 두 언어 세계의 문화를 소통하는 것이다.
어떻게 진행되는가?
타자의 언어, 행동 양식, 가치관에 내재된 문화 의미를 파악해 맥락에 따라 의미를 만든다.
기존 번역학 또는 번역 연구와 무엇이 다른가?
그들은 텍스트의 중요성을 절대적으로 강조했다. 번역 행위의 역사성, 정치성의 중요성은 알아보지 못했다. ‘문화 번역’ 이론은 번역 자체를 정치적 행위로 본다. 역사와 사회 맥락이 암시하는 권력 구도에 주목하여 문화 간 접촉과 교섭을 일종의 번역 행위로 읽는다.
문화 번역이라는 용어는 언제 시작되었나?
1950년대 이후 인류학과 민속지학 분야에서다. 이때 ‘문화 번역’은 ‘문화들의 번역’, 더 정확하게는 ‘타문화의 번역’을 의미했다.
무엇을 위한 번역이었는가?
다른 언어에 들어 있는 타문화의 사유 양식을 서양 독자들에게 서양의 언어로 선명하게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인류학적 민속지학의 작업은 번역의 문제가 되었다. 원시문화 안에 내포된 의미를 찾아내고 결정하는 인류학자의 권위가 강조되면서 민속지의 번역적 성격은 더욱 강조되었다.
인류학이 아니라 번역학으로 발전한 이유는 뭔가?
인류학이 타문화를 해석하고 기술하는 문제를 투명한 객관적 재현이 아닌 불투명한 번역의 문제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번역학에서는 언어체계가 다른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제에 집중했던 전통적인 번역 연구에서 한발 나아가 문화 차원을 끌어들인다.
문화 번역의 배경 이론은 무엇인가?
탈식민주의다. 번역과 식민주의는 애초에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역사 배경을 깔고 있다. 유럽 제국주의 맥락에서 식민화의 기제로 활용된 번역은 피지배민족을 계몽한다는 명분으로 언어에 불평등한 권력을 행사한다.
번역이 식민지배의 기술이란 뜻인가?
그렇다. 두 문화가 접촉하는 지점에서 언어적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언어와 문화 사이에 위계질서가 작동되고 권력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문화 번역의 비판 초점은 무엇인가?
번역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며 정치권력의 구도를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지배 문화, 동화 포섭에 그치지 않고 잔여 차이, 소수 문화가 발현되고 절충되는 양상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문화 간의 접촉과 교섭을 번역 행위로 본다.
탈식민지 전략과 어떻게 관계되는가?
서구와 비서구, 문명과 야만,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구도에서 번역은 불균등한 권력관계와 문화 질서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탈식민지 전략에서 문화 번역은 일방적 특권화의 구도를 벗어나는 대안적 번역을 꾀하는 과정이자 일방적인 지배 관계를 해체하는 문화적 실천이 될 수 있다.
실천의 단서는 어디서 찾는가?
문화 번역은 기존의 인류학, 민족지학의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대안적 실천 가능성을 모색하는 가운데 등장한 사고 틀이다. 예컨대 로빈슨은 권력의 문제와 저항, 재위치, 재번역의 주제를 번역의 연구 영역으로 끌어들여와 종국에는 번역이 탈식민화의 채널이라고 주장한다.
문화 번역과 미디어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번역’과 ‘횡단’에 대한 관심은 삶의 현실 조건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다. 현대적 삶의 조건, 즉 시간, 공간, 국가적 경계를 넘나드는 초국적 흐름은 미디어와 네트워크 발달의 소산이다.
아파두라이의 매체와 이주 논의인가?
그렇다. 전자 매체에 의해 중개되어 지구 전체를 옮겨 다니는 이미지들과, 이주 노동자와 같은 대량 이주 현상은 지구촌과 세계화의 특성이다. 이런 상황은 통제되고 획일적인 체제나 논리에서 비끄러지는 ‘탈영토화된 수용자’를 만들어 낸다.
문화 번역의 세계는 문화제국주의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
아파두라이는 과거 중심부라고 하던 세계가 주변부에 의해 변화하면서 그 지배적 정체성이 전복되고 있는 현상을 지적한다. 어떻게 보면 대중문화는 다양한 문화가 섞이고 번역되는 가장 생생한 현장이다. 특히 매스미디어를 통해 양산되는 대중문화에는 그 사회의 다양한 문화적 양태가 담기기 마련이고 역동적인 충돌과 접합의 모습도 담기게 된다.
대중문화가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가능케 하는가?
탈영토화의 영역이 될지 자본에 종속된 문화 시장의 영역이 될지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가진 역동적인 힘이 네트워크와 디지털 미디어가 매개의 주체가 되는 현대사회에서 어떠한 문화적 양상으로 표출될지 주목할 만하다.
문화 번역에서 한국의 이슈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도 급속히 다민족,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와 인식 전환을 통해 잠재된 갈등을 해소하고 이주자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진지한 연구가 필요하다. 시혜가 아니라 인정의 정치가 요구된다.
한국 사회 주류의 이주민에 대한 태도는 무엇인가?
외국인 노동 이주자들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되는 ‘불쌍한 타자’ 혹은 ‘위협적인 이방인’으로 구성되고 있다. 혈통과 서열과 나이에 의해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고 타자의 위치로 주변화되며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대 ‘그들’이라는 이항대립의 차별적 멘털리티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항대립의 차별 멘털리티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1980년대 저임금 정책에 따라 한국에 온 노동자들은 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다. 혈통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그들은 임시 거주자이거나 불법 이민자이며 불법이든 합법이든 거주 국가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추방될 수도 있는 주변적 존재다.
최근 활발한 다문화주의 움직임은 어떻게 해석하는가?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국가 정체성을 유지 또는 강화하려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다문화주의의 표방은 여전히 튼튼하게 유지되는 ‘한국’이라는 단일한 국가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문화연구자들은 우리 정부의 관용적인 다문화주의는 동화 전략 내지 위계적 이분법에 기초한 차이 전략 정도이고, 일부 소수자 운동은 그에 부합함으로써 현실적 이익을 취하려 한다고 분석한다.
이주민들은 한국 사회를 무엇이라 번역하는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이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 여전히 사회적 소수자이고 자신의 언어로, 혹은 번역된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나 이주민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그들의 이주 형태가 다양해지면 문화 번역, 혹은 문화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의 이주민 문제는 어느 단계에 있는가?
이들을 지역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로부터 귀화한 이주 노동자나 한국인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혹은 결혼이주자가 데려온 자녀들을 국민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로 국면이 전환되고 있다. 혼종성의 시대를 맞게 되면 문화의 혼종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당신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나는 보이지 않고 말되지 못한 의미가 새롭게 드러나는 상황 속에 살고 있다. 이동하는 주체들, 이민자들은 각각의 사회에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파장을 미친다. 정책적이건 전략적이건 이들을 포괄하는 문제가 현대성의 문제다. 이민자들이 정착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것처럼 원주민들도 이민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을 받는다. 이러면서 사회관계와 문화 형태가 창조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마정미다. 한남대학교 정치언론국제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