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중세극
5월의 신간. 스페인의 중세와 연극의 기능
안영옥이 쓴 ≪스페인 중세극≫
후글라르는 누구일까?
14세기 스페인에 떠돌이 가수들이 있었다. 점잖은 사람들은 그들이 분장을 하고 해로운 짓을 한다고 비난했다. 후글라르다. 광대 익살꾼이고 연극인이며 문화 확산자이자 살아 있는 책이었다.
중세 후기로 들어오면서 신성극은 예수에 대한 경배와 예배에 중요성을 두면서 예수 탄생이나 수난에 대한 신비를 주요 테마로 했다. 15세기에 들어 이러한 내용들은 위작 성서 또는 외경의 내용과 우화, 비유를 통해 대중화되었고, 프란시스코 교단 사제들이 이 일을 장려했다. 당시 국민들이 즐겁게 접했을 우화나 상징, 그리고 대중의 실제 삶의 모습들이 상당히 포함됨으로써 극은 더욱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전해 내려오는 작품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증명하거나 알 수가 없어서 당시 역사서나 현왕의 법전 등을 통해 상상해 본 것이다. 그런데 1150년경 라틴어로 쓴 신학 주해서 두 편 마지막 원고지 여백에 로망스어로 된 <동방박사 소시극(Auto de los Reyes Magos)>이 스페인에서 우연찮게 발견되었다. 이는 중세 스페인 연극사뿐만 아니라 유럽 연극사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할 만하다.
≪스페인 중세극≫, 안영옥 지음, 34∼35쪽
현왕의 법전은 중세 초기에도 극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했는가?
알폰소 현왕의 ≪칠부법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사제들이 할 수 있는 극이 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같은 것으로 그 극은 어떻게 천사가 목자들에게 왔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동방박사 소시극>은 어떤 이야기인가?
성경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주현절을 테마로 해서 토착어로 쓴 가장 오래된 극이다. ≪마태복음≫ 2장 1절부터 12절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전해지는 작품은 이것뿐인가?
중세극을 연 이 작품을 제외하면 15세기 이전에 쓴 종교극 가운데 카스티야에 남아 내려오는 작품은 없다.
15세기 이전에 쓴 종교극이 거의 남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어인과 벌인 지속적인 국토 회복 전쟁 때문이다. 이때는 믿음을 신장하기 위한 어떤 수단도 필요하지 않았다. 종교극은 성서를 가르치는 도구이자 믿음을 진작하는 수단이었다.
15세기에는 왜 종교극이 필요했나?
전쟁에서 기독교가 승리했다. 스페인은 단일 국가로서 근대적인 의미의 국가 체제를 세웠다. 국가를 온전히 통일하기 위해서는 유대인이나 무어인들을 기독교로 개종하는 정신의 통일이 필요했다.
정신의 통일이 왜 필요해진 것인가?
비기독교인에 대한 개종 요구와 종교 재판소를 통한 비기독교인 추출 때문이다. 그러자 대대로 기독교도였던 사람들과 개종한 기독교인들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
이 상황이 극작품에 나타나는가?
15세기와 16세기에 활동한 극작가들이 극에 반영했다. 새로운 사회, 종교적 상황에 맞도록 성서 이야기를 재해석한 것이다.
성서의 재해석이라니?
살라망카 학파라 부르는 후안 델 엔시나, 루카스 페르난데스 같은 작가들은 전통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신의 역사를 보여 주면서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렸다. 17세기 대연극 시대를 예고한 것이다.
어떤 작품이 그러한가?
<이집트로의 도피 소시극>은 성경 이야기 외에도 외경 또는 위작 성경으로 알려진 예수 가족과 도둑의 만남을 다뤘다. 또 ‘믿지 않는 순례자’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작가의 순수 창작이다.
종교극 외에 다른 극은 없었나?
광대들의 춤과 놀이, 이야기에서 비롯한 비종교극이다.
비종교극이 있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나?
14세기 초 마르틴 페레스가 쓴 고백서에 떠돌이 가수들이 ‘분장을 하고 해로운 일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떠돌이 가수’는 ‘후글라르’를 말하나?
그렇다. 후글라르는 광대, 익살꾼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스페인 최초의 문학이자 서사시인 ≪엘 시드의 노래≫를 비롯해 중세 서사시가 그들 입으로 구전되었고 전사되어 현재까지 전해진다.
후글라르의 사회 기능은 무엇인가?
대중 매체가 없던 시절에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며 오락과 정보를 제공했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부터 입으로 문학을 전한 가수이자 연극배우였으며 앵커였다.
이들이 연극인인가?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일인 다역을 하거나 간단한 분장으로 현실감을 높였다. 연극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연극 요소가 발견되는 현실은 어떤 모습이었나?
민간전승으로 내려오던 봄의 축제, 만우절 등 다양한 민속 축제, 종교 축제, 민속놀이, 카니발에서 볼 수 있는 가면극, 서민들의 유희극, 막간 광대극이다. 후글라르가 이 행사를 주도했다.
15세기 이후 비종교극은 어떤 모습인가?
모모스가 있다. 궁중에서 행해진 일종의 궁중극이다. 15세기 초, 카스티야에 들어온 가면무도에 문학 요소가 섞였다. 코플라라는 것도 있다. 대화체 양식의 짧은 노래로 왕의 실책이나 허물, 부패한 사회상을 읊은 풍자극이다. 프란시스코 데 마드리드가 읊은 목가 또한 중세극의 대표작으로 볼 수 있다.
스페인 중세극의 중요성은 어디서 발견되는가?
한 나라의 문화 기원을 추적하는 데 유용한 자료다. 중세 작품은 민족 태동기를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민족 형성 배경을 알 수 있고 국가 성립 이후에도 문화나 사상에 깊은 영향을 준다.
우리나라에 스페인 중세극이 얼마나 소개되어 있나?
손에 꼽을 정도로 초라하다.
이유가 무엇인가?
텍스트로 남아 있는 극작품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중세 어휘나 형태, 구문이 현대어와 달라 해독이 어렵다. 관련 자료 또한 귀하고, 어떤 것은 접근조차 어렵다.
이 책, ≪스페인 중세극≫은 무엇을 말하는가?
스페인과 유럽 중세극의 차이를 밝혔다. 이어서 스페인 중세극 전반을 상세히 해설했다. 최초 극작품부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과도기 작품까지 다뤘으며, 대부분 전문을 번역했다. 분량이 많은 것은 작품 분석으로 정리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안영옥이다. 고려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