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고로드의 바딤 / 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
조주관이 옮긴 야코프 크냐지닌(Яков Б. Княжнин)의 ≪노브고로드의 바딤/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Вадим Новгородский / Несчастие от кареты)≫
농노와 시민
현명한 왕과 천박한 시민, 무능한 왕과 용감한 시민, 안정된 전통과 위험한 혁명, 선택은 쉽지 않다. 누구인가, 무엇인가? 어느 것이 더 오래가는가?
바딤
오, 영웅들의 열정이여! 이제야 자네들을 알아보겠네!
자네들은 민족의 희망이요, 조국의 기쁨이네!
(그와 함께 온 사령관들에게)
나의 옹호자들이여! 도시의 장벽을 허물자.
그리고 약한 어둠의 잔재를 이용해
저 어두운 밀림으로, 우리 여기서부터 나가자.
승리를 약속한 나의 무사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조국이 입은 피해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분노했고,
죽기를 각오했고, 왕위를 전복하고자 마음먹었다.
비고르는 우리 뒤를 이어 저 영웅들을 따르고
프레네스트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이곳에 남는다.
자, 전진하라!
<노브고로드의 바딤>, ≪노브고로드의 바딤/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 야코프 크냐지닌 지음, 조주관 옮김, 21∼22쪽
바딤은 누구인가?
노브고로드 공국의 시(市) 장관이다.
지금 무엇을 향해 전진하는가?
죽기를 각오하고 왕위를 전복하려 한다.
왕위 전복의 목적이 뭔가?
원래 노브고로드는 자유로운 시민이 통치하는 공화국이었다. 그러다 왕정이 시작됐다. 바딤은 왕정에 반대한다.
어쩌다 왕정이 시작되었나?
시민들의 청원에 따라 류리크가 통치자가 되었다.
시민들은 왜 왕이 필요했나?
내란으로 도시가 혼란해지자 당시 시 장관이었던 고스토미슬이 류리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류리크는 혼란을 수습하고 시민들에게 행복을 되찾아 주었다. 시민들은 그의 공적에 감동해 그를 군주로 맞아들였다.
류리크는 누구인가?
역사에 따르면 류리크는 바랴크인들의 지도자였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은 북구 바이킹족을 바랴크인이라 불렀다.
시민은 바딤에게 동조하는가?
시민들은 류리크를 선택한다. 그는 시민을 향해 왕관을 벗으며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이 왕관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바딤의 머리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시민의 선택은 무엇인가?
류리크 앞에서 여전히 무릎 꿇고 통치를 바란다.
바딤의 대처는 무엇인가?
“스스로 족쇄를 요구하는 추악한 농노들”이라고 한탄한다.
반역의 끝은 무엇이었나?
류리크는 마지막까지 바딤에게 벗으로 남아 달라고 부탁한다. 바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류리크의 연인이며 바딤의 딸인 라미다도 아버지를 뒤따른다.
실제 이야기인가?
바딤과 류리크는 역사서에 나오는 실존 인물이다. 특히 류리크는 러시아 최초로 류리크 왕조를 구축했다. 이후 16세기 말까지 왕권은 전부 류리크의 자손이 차지했다. 그에 대한 전설과 역사를 기초로 작가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다.
예카테리나 2세의 <류리크의 삶에서>가 그의 이야기인가?
그렇다. 여제가 직접 작품을 썼다. 류리크를 찬양하기 위해서 한 일이다.
무엇을 위해 류리크를 찬양했는가?
바랴크족 출신으로 절대왕정을 수립한 류리크를 미화하면 그녀 자신의 출신과 지위를 정당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류리크에게 관대하고 자애로운 통치자 이미지를 부여했다. 바딤은 권력욕 때문에 음모를 꾸민 인물로 그려진다.
크냐지닌의 바딤은 어떤 인물인가?
옛 로마 공화국 정치인들에 버금가는 덕성을 갖춘 인물로 그린다. 바딤과 그의 딸이 자살을 택하는 결말도 절대왕정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되었다.
자살과 절대왕정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가” 하는 문제는 계몽주의와 더불어 끊임없이 던져진 질문이었다. 당시 계몽주의의 핵심은 국가와 종교적 환경이 제공하는 미신과 불합리성에서 벗어나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것, 인간의 권리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이런 흐름에서 자살은 최고의 반항이자 자유사상과 결부되는 행위다.
이 작품에 대해 예카테리나는 뭐라고 했나?
격노했다. 하지만 크냐지닌이 죽고 난 뒤에야 작품이 출간되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이 대신 취조를 당해야 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 크냐지닌의 위치는?
수마로코프의 사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수마로코프의 작법에 따라 희가극 8편, 희극 4편, 비극 8편을 썼다. <노브고로드의 바딤> 등을 통해 비극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희극 <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 등은 고골과 그리보예도프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마차 때문에 일어난 불행>은 어떤 작품인가?
농노제와 러시아 귀족들의 프랑스심취광 현상 등 당대 러시아 사회상을 풍자한 2막 코미디 오페라다.
작가는 어떻게 살았나?
1742년에 태어났다. 몰리에르, 코르네유, 라신 등 프랑스 3대 극작가의 작품에 심취했으며 어려서부터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한때 도박으로 국고를 탕진해 사형을 언도받기도 했지만 예카테리나 2세의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 대신 모든 지위와 재산을 박탈당한 채 문학에 매진했다. 1777년에야 지위를 돌려받았다. 1791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조주관이다.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