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핵경제에서 태양에너지까지
‘방랑자의 시선’으로 그린 생동하는 환경사
환경사는 역사의 일부분이 아니다. 인간과 환경의 변증법적 관계를 통해 역사의 숨은 동력인 자연을 드러내는 진정한 전체사다. 요아힘 라트카우는 상이한 관찰 방식들을 넘나드는 방랑자의 시선으로 이제껏 볼 수 없던 역사의 윤곽을 그린다. 라트카우의 ‘환경 세계사’는 인간과 지역, 작은 차이에서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이자 대안적 가능성으로 가득한 미래의 역사다. 설명, 판단, 이론, 개념, 구조화가 아니라 직접 증언을 쏟아 내는 생동감 넘치는 다양한 화자들로 가득한 역사다. 라트카우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에는 거대 서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살아 있는 인간과 역사적 행위자로서 자연이 있다.
이 책은 한 학자가 천착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연구 주제를 다룬 라트카우의 행보를 따라간다. 현대 사회를 특징짓는 ‘작은 결정들의 독재’를 밝힌 핵경제 연구, 라트카우가 촉발해 나무와 숲을 환경사의 중심 화두로 만든 목재난 논쟁, 독일제국의 역사를 신경과민이라는 키워드로 재해석한 파격적 시도, 생동하는 인간에 기반한 역사 서술을 보여 준 인물 전기 세 편 등 라트카우의 환경 세계사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융합이 널리 회자되고 있지만, 우리는 융합을 할 줄 모른다.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환경사라는 밭을 일구어 낸 라트카우에게 진정한 융합을 배워 보자.
요아힘 라트카우(Joachim Radkau, 1943∼ )
독일 근대사학자, 환경사학자. 뮌스터대학교와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사학을 공부했고, 함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핵경제 연구와 목재 연구를 거쳐 환경사 연구를 시작했다. 다양한 연구 이력을 활용해 정치사회사적 맥락을 넘어 산업, 기술, 에너지까지 포함하는 좀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환경의 관계에 접근하는 독창적인 경로를 개척했다. 은퇴 후에는 인물 전기 연구까지 더해 누구보다 다학제적이고 융합적인 환경사를 완성했다는 평가와 함께 독일 환경사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2009년에 정년 퇴임할 때까지 빌레펠트대학교에서 독일근대사 교수로 근무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양대 대표작은 일찍이 글로벌 환경사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자연과 권력(Natur und Macht)≫,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환경운동사 연구에 도전한 ≪생태의 시대(Die Ära der Ökologie)≫다. 이에 앞서 독일 내에서 학자로서 이름을 뚜렷이 각인한 주요 저작으로는 ≪독일 핵경제의 부상과 위기 1945∼1975(Aufstieg und Krise der deutschen Atomwirtschaft 1945-1975)≫와 ≪나무(Holz)≫ 등이 있다.
200자평
요아힘 라트카우는 환경 세계사 분야를 개척한 환경사학자다. 핵, 나무, 신경과민, 태양에너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환경사를 진정한 전체사로 우뚝 세웠다. 라트카우의 환경 세계사는 인간과 지역, 작은 차이에서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이자 대안적 가능성으로 가득한 미래의 역사다. 생동감 넘치는 라트카우의 이야기들에서 거대 서사가 대신할 수 없는 역사의 실천적 힘을 찾아본다.
지은이
박혜정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세대학교 사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역사학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복고와 개혁 사이의 독일 전후 직업교육 이중체제≫(2002)라는 표제로 박사 논문을 출간했다. 지구사 연구와 세계사교육 연구를 거쳐 현재는 기후사 연구와 기후교양교육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발표한 논문으로는 “기후위기 시대의 융합교양교육”(2024), “기후위기 시대에 읽는 ‘목재난(Holznot)’ 논쟁”(2024), “21세기에 읽는 17세기 위기”(2023) 등이 있다. 단독 저서로 ≪하나의 지구 복수의 지구사≫(2022), 공저로 ≪새로 쓰는 지역사와 세계사≫(2022), ≪4차 산업혁명 시대 인문 교양교육의 도전과 혁신≫(2022), ≪분단의 역사인식과 사유를 넘어≫(2019) 등이 있다.
차례
역사의 리비도, 자연을 찾아서
01 핵
02 나무
03 교육
04 자연
05 세계사
06 신경과민
07 인물
08 환경운동
09 미래
10 태양
책속으로
서양사, 동양사, 한국사의 칸막이 체제하에 유독 학제적 경계를 넘는 데 조심스럽고 주저함이 많은 한국의 역사학계에서 라트카우와 같은 역사학자가 당장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를 비롯해 우리가 당면한 21세기의 빅퀘스천은 라트카우와 같은 미래형 역사학자를 절실히 요한다. 선험적 가정, 가치, 이념, 이론의 틀을 과감히 탈출해 역사 본유의 문제인 ‘변화’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하되, 실천적 윤리의식을 잃지 않는 직업인으로서 역사학자가 그것이다. 학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평생 모험 정신으로 자신의 세계를 종횡무진 넓혀 온 라트카우의 궤적이 학계를 넘어 일반 독자들에게도 신선한 자극과 영감의 원천이 되길 바란다.
_“역사의 리비도, 자연을 찾아서” 중에서
결국 독일의 원전 건립은 국가와 에너지경제계의 긴밀한 협의 속에 정부 프로그램이나 정책적 결정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추진되었다기보다 “참여자들조차 점차적으로만 선명하게 깨닫게 된” 지그재그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독일의 원전 건립 과정은 전문 지식이 확산하고 그에 따른 의도치 않은 시너지 효과가 수시로 발생하면서 그 누구도 직접 책임을 질 수 없는 장기적 경로가 결정되어 버리는 근대 사회의 근본적 취약점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_“01 핵” 중에서
라트카우가 전하는 생태 위기의 해법은 단순명료하다. 피시스로서 자연을 기억하고 자연에 예비분을 마련해 미래의 예측 불가능한 일들에 대비하라! 행성과 인류세, IPCC와 기후과학이 지배하는 기후위기 담론 속에서 개개인은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간과 자연이 균형을 맞추어 온 작은 생태계의 놀라운 회복 탄성을 다시 떠올릴 시간이다. 작은 생태계가 지질적 규모로 진행되는 기후위기 속에서 기껏해야 부차적 역할을 할 뿐이라고 해도, 라트카우의 말대로 우리는 그 부차적 요인만을 바꿀 수 있을 뿐이다.
_“04 자연” 중에서
라트카우는 맥닐 부자의 새의 눈에 맞서 ‘방랑자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다시 쓸 것을 제안한다. 방랑자의 시선은 비유하자면 동양 산수화의 삼원법(三遠法)과 같다. 산 위에 올라 전체를 내려다보는 수평시(水平視), 산을 올려다보며 경관의 웅장함을 경외하는 앙시(仰視), 산속으로 들어가 겉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을 두루 살피며 통찰력을 기르는 부감시(俯瞰視)는 오직 자유로이 떠도는 방랑자만이 품을 수 있는 다시점이다. 라트카우는 환경의 세계사 ≪자연과 권력≫과 환경운동의 세계사 ≪생태의 시대≫를 통해 ‘상이한 관찰 방식들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방랑자의 시선’으로 무수한 다양성과 가능성을 품은 ‘새로운 세계사’의 윤곽을 그리는 데 도전했다.
_“05 세계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