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영 작품집
김문주가 엮은 ≪초판본 이근영 작품집≫
열린 미래에 대한 암시
이근영의 소설은 끝을 알 수 없다.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끝을 원한다면 독자 스스로 이야기해야 한다. 강력한 암시와 열린 미래. 행동을 유인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구장의 명령으로 뜰 밑에 마당에는 군데군데 떨어진 멍석이 피어졌다. 서 생원은 속으로 “대문이나 걸었으면”하였는데 이것 역시 구장의 명령으로 잠거졌다. 그리고 박 서방이 집 모롱이에서 곤장(棍杖)을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자 서 생원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었다. 그것은 두툼한 판자를 좁게 쪼개어서 손잡이까지 만들은 것이다.
늙은이들은 다 각기 원님이나 되는 듯이 높은 마루에 앉어서 팟뿌리 수염을 쓰다듬으며 위엄을 보이고 있다. 한가운대는 윤 진사가 버티고 앉어 있다.
“멍석 우에 앉게.”
하고 전 부안군수가 턱으로 가르킨다.
서 생원은 모든 것을 각오한 이상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멍석 우에 꿇어앉었다. 박 서방과 구장은 서 생원을 중간에 두고 양편으로 갈러섰다. 서 생원은 멍석 우에 앉은 채로 땅속의 수만 길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이 정신이 아뜩하였다. 이때이다. 대문을 발로 차는 소리가 나자마자 와직끈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짝이 떨어져 나자빠진다. 그러자 맨 앞에 덕쇠 그 다음으로 열댓 명의 청년 장년 노년의 헙수룩한 농군들이 살기가 등등해가지고 몰려온다.
“저게 어떤 놈들이야?”
하고 늙으니들은 소리소리 질른다. 이것을 본 서 생원은 전기를 통한 것같이 벌덕 일어나더니 덕쇠를 껴안고 그 넓은 가슴에다 얼굴을 파묻는다. 덕쇠는 서 생원을 안은 채 그대로 있고 다른 사람들은 멍석을 한 쪽으로 밀어 치우는 둥 널판때기를 뺐어서 팽개치는 둥 법석을 이루었다. “서 생원을 무엇땀에 볼기치는 거요?”하고 웨치자
“어째 이놈!”하더니 구장이 이 사람의 뺌을 잘팍 쳤다. 여기에 농군들은 더욱 살기가 등등하여저 마당은 수라장이 되고 말었다. 이런 중에도 서 생원은 덕쇠를 부뜰고 “차라리 나를 죽여주게.”
한마디 겨우 하고서는 다시 얼굴을 덕쇠 가슴에 파묻는다.
<농우(農牛)>, ≪초판본 이근영 작품집≫, 이근영 지음, 김문주 엮음, 55∼57쪽
사건의 발단은 무엇인가?
지주인 윤 진사와 소작인인 서 생원 사이에 일이 벌어졌다. 윤 진사가 자기 논일을 먼저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 생원이 부리던 소를 끌고 가 버렸다. 소를 찾아오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났고 윤진사가 나자빠진다.
많이 다쳤나?
허리를 다쳤다면서 온갖 엄살이다. 서 생원은 왕년에 씨름 장사였다.
보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마을 어르신들 앞에서 못된 놈 볼기 치기’가 벌어진다.
봉건사회의 관행인가?
글자 그대로 사형(私刑), 린치다. 오래전 사라진 인습인데 ‘가짜 양반’ 윤 진사가 이를 되살리려 하는 것이다.
윤 진사의 횡포는 뭘 믿고 횡행하는가?
그는 면장이다. 사실상 마을의 왕이다. 직책의 위세와 아울러 지역 유지들의 성원으로 곤장을 치려 한다.
지역 유지의 면면은 무엇인가?
친구인 김 진사, 전직 군수 ‘양천집’, 윤 진사 쪽을 은근히 편드는 구장이다.
존경 받는 ‘어르신’인가?
그냥 돈 많거나 세도를 부리는 사람들일 뿐이다. 양천집은 윤 진사에게 곤장을 집행하도록 부추겼다.
덕쇠의 등장은 무엇인가?
주민 여론이 비등했다. “지금이 어느 세상이라구 볼기맞는다든가? 미친놈들.”
무산자들의 계급의식인가?
서 생원의 위기를 자기 일처럼 생각한다. “서 생원이 만일 볼기맞는 날이면 가난뱅이 우리들 전부가 볼기맞는 거란 말이여”라며 나쁜 인습의 부활을 경계한다.
주민들의 공동 대응은 이번이 처음인가?
경험이 있다. 재작년 가을에도 합심해서 덤빈 일이 있었다. 주민들은 공동체 단결의 효과를 알고 있다.
계급의식의 자각과 행동인가?
사소한 사건이 커지면서 소작인 대 지주 계급의 대립을 형성했다. 작가는 이 과정을 견실히 그렸다. 독자들은 하나로 뭉치는 농민 공동체를 보며 자연스레 동화한다.
싸움은 어떻게 발전되는가?
집단행동에 나선다. 윤 진사 집에 몰려가 시비를 따진다. 긴장감이 절정에 이른다.
서 생원은 구출되는가?
“서 생원은 … 얼굴을 덕쇠 가슴에 파묻는다”란 문장으로 끝난다. 서 생원이 린치는 안 당할 것으로 보이는 열린 결말이다.
이근영이 열린 결말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
부정적 현실을 청산하고 건전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는 작가 의식이다.
이 책, ≪초판본 이근영 작품집≫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는가?
일제 강점기 소설로는 <농우>와 <고향(故鄕) 사람들>, <소년(少年)>이 있다. 해방 정국 때 소설로는 <고구마>, <탁류(濁流) 속을 가는 박 교수(朴 敎授)>가 있다. 월북 이후 작품으로는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를 실었다.
<고향 사람들>에서 열린 결말은 어떤 모습인가?
멀리 떠나는 사람들이 성황당에서 여행길 안전을 기원한다. 여행자들의 앞날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이다.
여행자는 누구인가?
일본 북해도 탄광에 집단취업한 농민들이다. 탄광회사 측은 ‘우리 탄광은 조금도 위험이 없으니 안심하고 가자’고 말한다.
안전 기원은 탄광의 위험에 대한 암시인가?
안전 문제도 그렇거니와 회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취업자들의 신변을 걱정하게 만든다. 암시는 이근영이 곧잘 쓴 기법이다.
탄광회사에 부정 이미지를 씌운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의 근대화, 식민지 개발론’의 허구성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동시에 농촌 피폐 문제와 재일 조선인 노동자의 신변 문제를 시사했다.
그의 간접 암시 기법은 언제까지 계속되는가?
해방 후에는 암시 기법에서 벗어나 시대 문제와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거론한다. <고구마>는 해방 후에도 여전한 지주 횡포, 그 지주의 뒷배를 봐 주는 미군 얘기다.
월북 이후의 스타일은 어떤가?
<고구마>에서 다룬 소재를 심하게 부풀렸다. 거의 왜곡이다. 1955년 북한에서 발표한 <그들은 굴하지 않았다>가 그렇다. 남한 사회를 아주 부정적으로 그렸다.
어느 정도인가?
“항상 눌려만 지내오던 사람들이 총질을 하는 승냥이 앞에서 그렇게 당차게 버티였다”는 식이다. 고도의 암시 기법은 사라졌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문주다. 영남대 국문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