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규 시선 초판본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 출간 특집 3. 세상이 답답하고 자신이 한심할 때
추선진이 엮은 ≪초판본 김조규 시선≫
민중의 모더니즘
식민지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싸우다 죽거나 얼굴을 돌리거나 밤새 통음하는 것인가? 김조규의 선택은 비판과 모색이었다. 초현실과 표현은 현실의 현미경이다.
카페 “미쓰 조선”에서
너는 “모나리자”의 알 수 없는 미소로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고 불라는 水族館은 毒草 煙氣에 취하여 흔들리고 있는데 나는 나라 잃은 젊은이의 서름과 버림받은 나의 인생을 슬퍼하며 술상을 맞우하고 있었다. 네의 량 길손 흰 저고리 다홍치마는 “하나꼬”라는 낯선 異邦 이름과는 조화되지 않았느니 네의 검은 머리채 속에는 네가 잃어버린 것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모든 것이 그대로 깃들어 숨 쉬고 있는 것이 아니냐? 어머니의 자장가와 네가 뜯던 봄나물과 흙냄새, 처마 밑의 지지배배 제비 둥지, 밭머리의 돌각담, 아침저녁 물동이에 넘쳐 나던 물방울과 싸리바자 담 모롱이 두엄 무지, 처마 끝의 빩안 고추, 배추쌈의 된장 맛- 그리고 그리고 한마디 물음에도 빩애지던 네 얼굴을 후려갈기던 집달리의 욕설. 끌려가던 돼지의 悲鳴, 아버지의 긴 한숨과 어머니의 통곡 소리- 아아 채 여물지도 못한 비들기 할딱이는 네 젖가슴을 우악스런 검은 손에 내맡기고 네의 貞操를 동전 몇 잎으로 희롱해도 너는 울지도 반항도 못하고 있고나.
술상 건너 깨여지는 유리잔과 정력의 浪費와 란폭한 辱說, 순간에서 永遠한 快樂을 찾는 歡樂의 一大 狂亂 속에서 시드는 네의 청춘을 구원할 생각도 없이 웃음과 애교로 生存을 구걸하고 있으니 슬프다 유리창은 어둡고 밤은 깊어 가고 거리에는 궂은 비 주룩주룩 설업게 내리는데 “누나가 보고 싶어 누나가 보고 싶어” 네 어린 동생의 영양실조의 눈동자가 창문에 매달려 들여다보는데도 너는 등을 돌려대고 네게 술잔을 권하고 있으니
아아 버림받은 人生은 내가 아니라 “하나꼬” 너였고나 “미쓰 조선” 너였고나.
≪초판본 김조규 시선≫, 추선진 엮음, 160~161쪽
김조규가 누구인가?
1931년 등단해 평양을 중심으로 활동한 모더니스트 시인이다. 1914년 태어나 1990년 사망했다.
평양의 모더니스트는 어떤 사람들이었나?
김조규 외에도 유항림, 최명익, 양운한, 이후 월남한 김이석 등이 있었다. 모더니즘 동인지 ≪단층≫이 있었다.
≪단층≫은 어떤 잡지였나?
1937년 4월 평양에서 창간되었다. 유항림, 김조규, 김이석, 김화청, 황순원이 참여했다. 심리주의, 실험 경향을 띠었고 문학 수준도 높았다. 4호 발간 후 폐간되었다.
평양의 모더니스트는 무엇을 위한 모더니즘이었는가?
민족이 처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 문학 시도로 모더니즘을 택했다. 기존 질서와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신, 새로운 나라를 지향했다.
김조규에게 시란 무엇이었는가?
식민지 현실의 극복 방법이었다. 새로운 형식으로 내포된 진실을 드러내고 현실 체제를 반성해 민족의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정신을 구축하려 했다.
새로운 정신의 구축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좀먹는 시대의 폐물이여>를 보라. 김조규는 퇴폐성과 상업성, 현실로부터 멀어진 낭만성만을 추구하는 시에 직접 반발한다. 화자는 “女人의 裸像”, “落葉”을 읊는 시를 비판하고 “곰팡이 쓸은 詩稿”가 아닌 새로운 시를 지향한다.
그가 지향하는 시는 뭔가?
“민중과 민중의 핏줄”을 담은 시다.
그에게 당대 민중의 현실이란 무엇이었나?
“히멀건 맥물로 주린 뱃속을 채”워야 하는, 가난과 굶주림으로 참혹해진 고향, 1930년대 일제의 수탈로 극도로 피폐해진 농가의 모습이었다. <누이야 고향(故鄕) 가면은> 등에는 그 가난한 고향에서마저도 삶을 영위하지 못하고 유랑하는 삶도 등장한다.
모더니즘 기법으로 이런 현실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었는가?
그는 초현실주의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기법을 사용해 시를 썼다. 풍경과 사물을 이미지로 전환해 현실의 억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방안이란 뭘 말하는 것인가?
문장을 중도에 끊어서 행을 바꾼다. 색채어, 한자어, 외래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무엇을 위한 노력인가?
식민지 지식인의 분열된 자의식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한 기법이다.
시어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고도로 함축된 의미를 가진, 암울하고 악의적이며 저항적인 시어들을 사용했다.
암울, 악의, 저항은 어떤 의도인가?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부정의 표현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과 새로운 전망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시인이 우리에게 낯선 까닭은 무엇인가?
주 활동 기반이 평양이었고 해방 이후에도 북한에서 창작을 계속했기 때문이다. 작가동맹 기관지인 월간 ≪조선문학≫, 월간 ≪문학예술≫의 책임 주필을 지냈고 김일성대학 문과대학 교수로 근무했다. 1956년 숙청되었다가 1960년 복귀한 후 시집 ≪김조규 시선집≫(조선작가동맹출판사), 동시집 ≪바다가에 아이들이 모여든다≫(아동도서출판사)를 출판하는 등 별세할 때까지 지속적인 창작 활동을 했다.
언제 다시 빛을 보았나?
1988년 월북 문인 해금 조치 후 동생 김태규 시인과 모교인 숭실대학교에서 시인이 생전에 엮은 육필 원고를 바탕으로 시집을 출간하고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후 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시집은 어떻게 엮었나?
해방 이전의 작품들을 엮었다. 시가 발표된 신문, 잡지 지면을 바탕으로 기존 연구 자료들을 참고했다.
해방 전 작품만 고른 이유는 무엇인가?
해방 이후의 작품은 당의 창작 지침에 따라야 하는 북한 사회의 특성상 문학적인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 평양의 모더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그의 해방 전 작품들에 대해 좀 더 활발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누군가?
추선진이다. 경희대학교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