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천줄읽기
문시영이 옮긴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Aurelius Augustinus)의 ≪고백록(Confessiones) 천줄읽기≫
빛이 찾아오는 순간
머리는 지식을 탐하고 몸은 쾌락을 추구한다. 마음은 어두워지고 몸은 무거워진다. 빛은 자백의 순간에 찾아온다. 영광은 스스로를 밝힐 뿐이다.
어느 날, 황제에게 바칠 축사 원고를 구상하면서 길을 걷다가 거지를 보았습니다. 구걸해서 얻은 몇 푼에 만족해하는 그를 보면서 여전히 탐욕에 얽매여 만족할 줄 모르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보다 나은 것이 무엇일까요? 학식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으로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니 거지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나는 아직도 근심으로 애를 태우는데 구걸한 술 몇 잔에 만족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더욱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지금 만족을 모른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뜻이었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허망함에 고민만 더해 갔습니다.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문시영 옮김, 58쪽
아우구스티누스가 거지를 본 게 언제인가?
385년, 서른한 살 때다.
서른한 살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황제에게 축사를 바칠 만큼 명예를 얻었지만 여전히 확실한 진리를 찾아 헤매며 방황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어쩌다 헤매기 시작했는가?
열아홉 살, 카르타고에서 수사학을 공부할 때 교과과정을 따라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Hortensius)≫를 읽었다. 진정한 행복은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원하는 데 있다는 키케로의 주장에 그는 ‘지혜를 사랑함’ 곧 철학에 사로잡힌다.
철학을 만나는 순간이 정신의 방황의 출발점이 된 것인가?
순간적이고 공허한 쾌락에 대한 헛된 희망이 시들해졌다. 그 자리에 불변의 지혜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불타올랐다.
그의 방황은 어떤 모습이었나?
마니교에 빠져들었다. 마니교도의 언변은 매우 뛰어났고, 일식과 월식을 맞추는 등 자연과학에도 해박했다. 그는 그들이 자신을 확실한 진리로 이끌어 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 밖에 점성술, 미학, 천문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진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마니교와 헤어지고 진리를 찾기 위해 그가 간 곳은 어디인가?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났다. 그의 인격, 삶, 성서 해석 등에 깊은 감명을 받고 마니교를 떠나 기독교에 입문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일곱에 셋을 합하면 열이 되는” 것처럼 분명하게 맞아떨어지는 확실성을 찾아다니던 그에게 불합리해 보이는 성서는 답이 되지 못했다.
불합리해 보이는 성서를 떠나 그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어디인가?
플라톤 학파의 책을 탐독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 실체만을 믿는 마니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실체의 존재를 깨달았다. 무형의 진리를 이해하고 내면세계에 몰두했다. 하지만 지적 편력과 육체적 쾌락에 사로잡혀 방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지적 욕망과 육체적 쾌락에서 언제 벗어나는가?
거지를 본 이듬해였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확실한 진리를 찾지 못해 애통해하고 있을 때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tolle lege, tolle lege)’ 하는 말을 들었다. 그는 책을 집어 들어 눈에 들어온 구절을 읽었다.
어떤 구절이었나?
로마서 13장 13∼14절이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쟁투하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들고 읽은 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진리를 찾아 헤매는 방황에 마침표를 찍었다. 밖으로 나가 물질적 실체에 놀아나는 동안 얻지 못한 진리를 안으로 들어가 영혼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자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뭐라고 하는 것인가?
기독교에서는 영적 회심을 체험했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음에 확실성의 빛이 들어와 의심의 모든 어두움을 몰아냈다고 썼다.
확실성의 빛은 그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세상의 욕망을 찾아다니지 않고 신앙의 길에 굳건히 서기로 결심한다.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수도 생활과 집필 활동을 했다. 395년 히포의 주교로 선출되어 43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를 위해 헌신했다.
어떻게 헌신했는가?
배교 성직자 문제로 빚어진 도나티스트 분파주의자들과 대립이 폭력 사태로 비화될 때 교회의 일치를 위해 지도력을 발휘했다. 자유의지와 은총에 관해 펠라기우스와 벌인 신학 논쟁에서 은총의 중요성을 확립했다. 책을 100여 권 넘게 썼고 열정적으로 목회했다.
≪고백록≫은 왜 내놓았는가?
많은 사람이 그의 회심과 변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조금씩 기록했던 글을 모아 ‘인간 영혼에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부제를 달아 출판했다.
그는 무엇을 고백했는가?
자신의 악행과 선행을 고백한다. 인간의 정체를 고발하고 나아가 죄인을 구원한 의롭고 선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제목 때문에 ‘고백’에 초점을 맞추지만 라틴어 원제 ‘Confessiones’의 동사 ‘confiteri’는 두 가지로 쓰인다. ‘자백하다’는 의미의 재귀동사와 ‘누구를 칭송하다’는 의미의 타동사다. 자기 자신에게는 고백을, 신에게는 찬양을 뜻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철학사에서 처음으로 시간을 연구했다는 그 책인가?
그렇다. 카시러가 그렇게 평가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영혼의 팽창으로 비유한다. 과거의 기억, 현재의 직관, 미래의 기대를 말하는 대목에서 시간을 의식의 문제로 설명하는 독창성을 보여 준다.
오늘 우리에게 이 책은 무엇인가?
우리는 지식 정보가 넘치는 스마트한 사회에 살지만 곳곳에 참된 진리를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도사리고 있고 인간에 대한 지식은 여전히 궁핍하다. 이 책은 우리에게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의미와 진리를 찾아 나서는 길에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은 원전으로부터 얼마나, 어떻게 뽑아 옮겼나?
전체 흐름을 중심으로 10%를 뽑아 옮겼다. ≪고백록≫은 신 앞에서 죄인인 인간을 기소하고 신의 은총을 통한 구원에 이르는 여정을 보여 준다. 창세기를 주해하는 부분부터 글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전제 열세 권 가운데 11∼13권을 소홀히 다루는 학자가 있지만 창조 신앙에 대한 확고한 고백이라는 점에서 골고루 발췌, 번역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문시영이다. 남서울대학교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