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 나탄
윤도중이 옮긴 고트홀트 레싱(Gotthold E. Lessing)의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
무엇이 인간을 갈라서게 하는가?
신의 명령인가? 아버지의 핏줄인가? 역사의 당파성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신인가? 핏줄인가? 당파인가? 물론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고 그것은 오로지 관계이며 당연히 사랑이다.
나탄: 옛날 동방의 어떤 나라에 한 남자가 살았는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반지를 받았습니다. 보석은 오팔로 온갖 영롱한 광채를 발했습니다. 그리고 신통력이 있어서 그걸 믿고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신과 인간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지요. 그러니 그 동방의 남자가 반지를 잠시도 손가락에서 빼지 않고 또 반지가 영원히 자기 집안에 남아 있도록 조치한 건 당연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렇게 했던 겁니다. 그 반지를 아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고, 아들에게도 다시 그 반지를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물려주라고 단단히 못을 박았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태어난 순서와 상관없이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 오직 그 반지의 힘으로 집안의 우두머리, 가장이 되어야 한다고 정한 겁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폐하?
살라딘: 알아들었으니 계속하게.
나탄: 이렇게 그 반지가 아들에서 아들로 전해 오다가 마침내 아들 셋을 둔 아버지에게 넘어왔습니다. 세 아들은 하나같이 아버지에게 순종했으므로 아버지는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혹 어떤 때는 첫째가, 다른 때는 둘째가, 또 다른 때는 셋째가, 이렇게 세 아들 가운데 하나가 아버지와 단둘이 있으면서 아버지의 흘러넘치는 사랑을 다른 두 형제와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반지의 적임자로 보이곤 했습니다. 마음이 약한 아버지는 결국 세 아들 모두에게 반지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러나 죽을 때가 되자 마음 좋은 아버지는 곤경에 빠지고 맙니다. 자기 말만 믿고 있을 세 아들 가운데 둘을 실망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아버지를 괴롭히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아버지는 은밀히 세공사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의 반지를 본떠 똑같은 반지 두 개를 더 만들게 합니다. 비용과 노력을 아끼지 말고 모조품을 진품과 똑같이,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세공사는 그 일을 훌륭하게 해냅니다. 세공사가 반지 세 개를 가져왔을 때 아버지조차 진짜 반지를 가려내지 못합니다. 아버지는 기쁘고 만족해서 세 아들을 하나씩 따로 불러 축복과 함께 반지를 줍니다. 그리고 눈을 감습니다. 폐하, 듣고 계신가요?
≪현자 나탄≫, 고트홀트 레싱 지음, 윤도중 옮김, 121∼123쪽
세 아들이 모두 가장이 되나?
문제가 생긴다. 세 아들이 각자 반지를 끼고 나타나 자신이 가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어느 반지가 진짜인지 밝히지 못한다.
어느 반지가 진짜 반지인가?
알 수 없다. 세 아들은 각자 재판관 앞에서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직접 반지를 받았다고 말한다. 또 저마다 아버지가 이미 오래전에 자신에게 반지를 물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진술했다. 모두 사실이었다.
진짜를 가려낼 방법이 있는가?
진짜 반지에는 그것을 낀 사람이 신과 인간에게 사랑받도록 하는 힘이 있다. 그 신통력을 이용하려 한다.
반지의 신통력은 어떻게 확인되는가?
재판관이 세 아들에게 누구를 가장 사랑하느냐고 묻는다. 셋 중 하나가 진짜 반지를 끼고 있다면 나머지 둘은 그를 사랑해야 한다. 하지만 셋 다 침묵한다.
침묵에 대한 판관의 대답은 무엇인가?
어떤 반지가 진짜인지는 신통력이 나타나야 판정할 수 있다. 재판관은 세 형제에게 각자 자기 반지가 진짜라고 믿고 반지의 신통력이 빨리 나타나도록, 다시 말해 신과 인간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한다.
현자 나탄은 살라딘에게 왜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살라딘이 나탄에게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 가운데 어느 것이 참종교인지 선택하라고 했다. 반지 설화는 그에 대한 답이다.
참종교를 선택해야 할 이유가 뭔가?
나탄에 대한 살라딘의 시험이다. 전쟁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나탄의 재산이 필요하다. 살라딘은 그것을 가로챌 구실을 만들려는 것이다.
나탄은 살라딘의 시험을 통과하는가?
살라딘은 그를 현자로 인정한다. 친구가 되길 부탁한다.
반지 설화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박애와 관용의 실천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유일하고 참종교라 할지라도 인간적인 삶을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특정 종파나 민족의 일원이기에 앞서 인간은 인간이다. 인간은 이런 인간성을 바탕으로 종파와 민족을 초월해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
인간이 종교와 민족의 차이를 초월할 수 있는가?
종교와 민족 사이의 갈등은 현재도 계속되며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과 행복을 위협하고 파괴한다. ≪현자 나탄≫은 우리에게 진정한 관용의 세계는 거저 오지 않으며, 우리가 의지를 갖고 관용을 실천할 때 비로소 도래한다고 충고한다.
레싱은 왜 이 작품을 썼나?
괴체 목사와 벌인 논쟁이 모티프가 되었다. 괴체는 레싱에게 어떤 종교를 진정한 종교로 믿느냐고 묻는데 그에 대한 답이 바로 이 작품의 주제다.
그와 괴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레싱이 라이마루스의 유고를 출판했는데 기독교 교리 전반을 부정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글을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출판하자 기독교 측은 경악했다. 괴체 목사가 교계 대변자로 나서 그를 격렬히 비난하게 되고 레싱은 ≪반괴체(Anti-Goeze)≫라는 글 열한 편을 발표하며 반발한다.
당신은 레싱을 어떤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칸트는 계몽주의를 ‘인간이 자초한 미성숙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운동이라고 정의하고 ‘용기를 내서 너의 이성을 사용하라’고 했다. 레싱은 이 구호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 중 하나다.
독일 문학에서 그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독일 최초 전업 작가이자 시민 비극의 창조자로서,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로 칭송된다.
어떻게 살다 갔나?
1729년에 태어났다. 목사인 부친 뜻에 따라 신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문학에 끌려 신학자의 길을 접고 문필 활동과 언론계에 투신한다. 평생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가 1781년에 눈을 감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도중이다. 숭실대학교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