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혁명
그림의 혁명
역사, 그 이후에 대한 감수성
빌렘 플루서는 변증법을 인공두뇌학으로,
정치를 생태학으로, 사상과 시를 기술로 대치시켜
역사 이후 인류의 방향을 찾는다. 그리고
우연성과 가능성을 확신한 뒤 숨 쉬듯 가볍게 말한다.
≪그림의 혁명≫은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 대한
생태학적 낙관주의다.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에 대한 플루서의 사유를 담았다. 그는 ‘커뮤니케이션 혁명’을 ‘그림의 혁명’으로 읽어낸다. 어떤 철학적 체계에도 기반을 두지 않았지만 인용이나 논증이 매끄럽고 신선하다.
≪그림의 혁명≫, 빌렘 플루서 지음, 김현진 옮김, 258쪽, 1만8000원, 커뮤니케이션북스
빌렘 플루서란 누구인가?
빌렘 플루서(Vile’m Flusser, 1920~1991)는 체코 유태인 태생의 미디어 사상가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브라질로, 또 브라질 군사정권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 생활을 전전하며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연구했다.
“그의 사고는 항상 사실에 직면했기에 그는 자신의 사고에만 머물러 있지 못한다. 세계를 예리하게 관찰하고 현실성을 포착해 고전적인 구상으로 여과시키고 독자적인 구상을 개진하는 능력은 그를 탈역사적 시대의 사상가로 만들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진실성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사실의 관찰과 그것에 기반한 성찰이 일치하는 점이다.”(마리아 릴리아 레아오)
“그는 기술적 매체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즉 자신의 고유한 규칙을 발명하고 설정하며 접근함으로써 다가오는 세대와 사회적 발전을 위한 ‘빛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그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부채질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도록 도왔다. 그의 특별한 점은, 지배적인 상황을 보는 온갖 예리함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주는 그의 논증이다.”(고트프리트 에거)
“파시즘이 그를 산출 가능한 세계의 변두리로 추방했을 때, 4000년의 역사적 기억으로 오늘과 내일의 현실성을 측량하기 위해 옛 유럽의 중세로부터 한 명의 사자(使者)가 귀환했다.”(프리드리히 키틀러)
“그의 사고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시대의 체험으로 검정(檢定)한 레이더 시스템이었다. 시대의 폭력에 대항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대항하기는커녕 오히려 바로 그 폭력을 정당화하기조차 했던 역사적 휴머니즘의 폐허에서 그는 용맹 과감하게, 새로운 것을 건설하고, 그토록 엄청난 악을 야기한 옛것과의 단절로서 새로운 것을 시인하고자 노력했다.”(페터 바이벨)
“변천의 과정 위에 버티고 서서 플루서는 철학의 역사를 불러내, 모든 지시 관계(Referenz)에서 해방된 그림 문화의 징후를 통해 그것과 결별한다. 그것은 그 자체에 대항하고 또 다른 지식에, 더는 우리가 아는 철학이 필요 없는 지식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종의 역설적 철학이다. 그러한 철학의 반경 속에서 플루서 역시 움직인다.”(플로리안 뢰처)
“빌렘 플루서의 저서는 우리의 텔레마틱 세계 사회의 구체적인 유토피아를 전개한다. 즉, 분산시키고 마비시키는 중앙집중식-따라서 바로 ‘파시즘적’ 성향인-브로드캐스팅의 매체 현실 한가운데서, 대화적으로 작동되는 가역성의, 망형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노르베르트 볼츠)
“빌렘 플루서의 사고 모델은 비판적 사고의 안전한 입장을 버리고 세계를 간극으로부터, 두 가지 역사적 확신 사이에 난 공백으로부터 이해하도록 부추기는 선동이며 요구다.”(하랄트 브란트)
그 밖의 저서들
컴퓨터 그림의 현상을 ‘피상성’으로 간주하고, 이를 심도 있게 분석한다. 발렌도르프의 비너스 상에서 시작해 라스코 동굴벽화, 최근의 컴퓨터 그림에 상응하는 세계를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그 의미를 밝혀간다.
≪피상성 예찬≫ 김성재 옮김, 370쪽, 2만원
플루서에게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은 인생에 대한 의미 부여다. 하지만 기술적 형상에 의해 주도되는 원형극장형 담론만으로는 이를 실현할 수 없다. 대안은 대화적 커뮤니케이션망을 구축하는 것. 그가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을 예고한 선가자로 불리는 까닭이다.
≪코무니콜로기≫, 김성재 옮김, 380쪽, 2만3000원
매클루언이 확장을 설명할 때 그는 인체 그 자체에 골몰한다. 이 책은 태초 이래로 인간문화에는 두 가지 대립되는 전환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선형문자의 발명이고 둘째는 기술 영상의 발명이다. 그리고 묻는다. 문화는 스스로를 변혁했는가?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윤종석 옮김, 106쪽, 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