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서 천줄읽기
제헌절 특집 고전 5. 법은 언제 법이 되는가?
장현근이 옮긴 가의(賈誼)의 ≪신서(新書)≫
공수의 형세
전장에서는 군율이 우선이고 정치에서는 인의가 먼저다. 나라를 세울 때는 전쟁이 우선이고 지킬 때는 정치가 먼저다. 형세의 오름과 내림을 알지 못하면 법이 있어도 법이 아니다.
한 필부가 난을 일으켜 나라를 뒤엎고 천자가 다른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인의의 정치가 행해지지 않아 공수의 형세가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一夫作難而七廟墮, 身死人手, 爲天下笑者, 何也? 仁義不施, 攻守之勢異也.
≪신서≫, 가의 지음, 장현근 옮김, 31쪽
어느 나라 얘긴가?
진나라다.
진나라가 인과 의가 없어 망했는가?
그렇다. 인의를 근본으로 삼는 왕도 정치를 버리고 폭력과 기만에 기초한 법치주의를 택했기 때문에 멸망했다는 것이 가의의 분석이다.
공수의 형세가 달라졌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천하를 제패할 때와 나라를 다스릴 때는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진나라는 전국시대의 혼란을 잠재우고 천하를 제패했다. 그러나 진시황과 진2세는 자만에 빠져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폭정을 일삼았다. 결국 진섭이 난을 일으키고 유방이 진2세를 죽여 15년 만에 멸망에 이르렀다.
한나라 사람이 진나라의 흥망을 이야기하는 까닭이 뭔가?
한나라 문제가 진나라를 반면교사 삼아 어진 정치를 베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진 정치인가?
이 글 <과진론(過秦論)>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군자는 나라를 다스릴 때 상고의 역사를 관찰하고, 당시의 사정을 증험하며, 인사 제도의 득실을 검증하고, 국가 흥망성쇠의 이치를 고찰하며, 권세가 마땅한지를 자세히 살펴서 정책의 거취에 질서를 잡고, 변화가 시세에 입각해 이루어지도록 한다.”
어진 정치의 구체 방안을 내놓았는가?
국가의 안정을 위해 천자의 권위를 강화하고 제후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기 위해서 천자와 제후의 복식·녹봉·호칭 등을 구별하고, 제후에게 주는 봉지를 분할해 소규모 제후국을 여럿 두는 방법을 제안한다.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도 제시하는가?
군주가 모범을 보여 백성을 교화해야 한다. 부득이 벌을 내릴 때는 신중해야 한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차라리 죄 있는 사람을 놓치는 것이 낫다”고 썼다.
한나라는 가의의 주장을 실천했는가?
한나라가 유가적 민본 사상에 입각해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자리 잡는 데 가의의 주장이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생존 당시에는 훈구 대신의 반발에 부딪혀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훈구 대신은 왜 그를 반대했는가?
어린 나이에도 자신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그를 시기했다. 자신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개혁 사상을 곱게 볼 수 없었다.
가의는 누구인가?
한나라 초엽의 천재 사상가이자 당시 가장 유명했던 정치 이론가다.
왜 그를 천재라 불렀는가?
어려서부터 시문에 뛰어났고 유가를 비롯해 법가·도가·묵가·음양 등 제자백가 사상에 정통했다. 하남 태수 오공의 문하에 있다가 그의 추천으로 문제 때 박사가 되었는데, 불과 20세였다. 조칙을 의논할 때마다 물 흐르듯 대답해 문제에게 총애를 받았고 박사가 된 지 1년 만에 태중대부까지 올랐다.
문제는 그를 어떻게 운영했나?
그를 공경에 임명하려 했다. 그러나 훈구 대신은 그를 참소했고 24세에 좌천되었다.
거기가 끝인가?
문제는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뒤에 문제의 막내아들 양회왕 유읍의 태부가 되었다. 유읍이 낙마해 죽자 슬퍼하다 이듬해 32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신서≫는 어떤 책인가?
새로운 국가 건설의 격동기에 치안에 대한 생각과 정치적 아이디어가 가득한 한나라 초 정치철학의 압권이다. 문경지치(文景之治)를 통해 한나라 문화의 토대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글 56편이 실려 있다.
정치학 교과서인가?
그렇다. 모든 정치적 판단을 백성의 입장에서 행하라는 민본의 참 의미를 깨우쳐 준다. 백성이 왜 국가의 목숨인지, 현명한 정치가는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얼마나 어떻게 뽑아 옮겼나?
가의의 정치사상이 잘 녹아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권1 열한 편, 권2 다섯 편, 권9 네 편을 뽑아 모두 옮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장현근이다.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