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박인환 시선
7월 신간 4. 시인 박인환의 리얼리즘
권경아가 엮은 ≪초판본 박인환 시선≫
리얼리즘일 수밖에 없었던 모더니즘
눈은 지상의 너머를 보고 있어도 발은 대지 위에 있다. 식민지와 한국 전쟁의 울림으로 맥박은 불안정하다. 현실은 허무가 되고 허무는 부정이 되고 부정은 그의 고향 인제에서 봄을 기다리는 소망이 되었다.
植民港의 밤
饗宴의 밤
領事 婦人에게 아시아의 傳說을 말했다.
自動車도 人力車도 停車되었으므로
神聖한 땅 위를 나는 걸었다.
銀行 支配人이 同伴한 꽃 파는 少女
그는 일찌기 自己의 몸값보다
꽃값이 비쌌다는 것을 안다.
陸戰隊의 演奏會를 듣고 오던 住民은
敵愾心으로 植民地의 哀歌를 불렀다.
三角洲의 달빛
白晝의 流血을 밟으며 찬 海風이 나의 얼굴을
적신다
≪초판본 박인환 시선≫, 권경아 엮음, 144쪽
오늘 밤 나는 어디에 다녀오는 길인가?
영사 부인이 참석할 정도로 화려한 향연에 갔다.
무엇을 보았나?
식민지의 현실이다.
어떤 현실인가?
소녀는 자기 몸값보다 비싼 꽃을 판다. 조선의 주민을 지켜야 할 육전대는 오히려 침략자들의 향연에서 음악을 연주한다.
그러고 나서 적개심에 차 식민지의 애가를 부르는가?
직접 대항하지 못하고 시를 통해 식민지 현실을 비판하는 시인 자신에 대한 자조로도 볼 수 있다.
박인환의 리얼리즘인가?
그는 일관되게 모더니즘 정신을 추구했다. 그러나 작품 자체에서는 현실 비판과 저항 정신이 드러나는 리얼리즘 경향이 드러난다.
모더니즘이 어떻게 리얼리즘이 되는가?
피폐한 당시 한국 사회에는 모더니즘의 미적 저항보다도 현실 참여와 실천이 시급했다. 박인환은 모더니즘을 현실의 바탕 위에서 실현하고자 했다.
리얼리즘의 모더니즘이란 무엇인가?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그 시대를 극복”하고, “형상적 생명에 현실적 정신을 부합”시켜야 한다. 즉, 현실적 정신 위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다.
어떤 작품이 있나?
≪신시론≫ 1집이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실린 초기 시들이다. 위의 <식민항의 밤>이나 <인천항>, <인도네시아 인민들에게 주는 시> 등이 그렇다.
<목마와 숙녀>와의 연결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한국 전쟁 때문이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드는 전쟁을 체험하고 극도의 불안과 절망을 경험한 후 그의 시정신이 바뀌었다
한국 전쟁은 그에게 무엇이었나?
절망과 죽음 의식, 극도의 허무 의식이다. <세 사람의 가족(家族)>에서 전쟁이 머물다 지난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깊은 상처와 절망과 죽음뿐이다. <한 줄기 눈물도 없이>에는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쳤지만 남는 것은 절망과 죽음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 의식이 가득하다.
절망과 죽음은 무엇을 만나게 되는가?
그의 후기 시에는 허무 의식과 함께 근대 이성에 대한 부정 인식이 나타난다. 이 부정 인식이 허무 의식을 극복하는 단초가 된다.
부정 인식의 계기는 무엇인가?
근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보고 겪은 현실이다. 미국 여행 시초에 잘 드러난다.
예를 들면 어떤 모습인가?
미국에서 “쓴 눈물을 흘리며 브라보… 코리언 하고”(<어느 날>) 술을 마시는 흑인을 만난다. “아메리카는 휘트먼의 나라로 알았건만 아메리카는 링컨의 나라로 알았건만” 흑인에게 자유를 주었다던 링컨의 나라에서 “모든 비애와 환희”를 목격한다.
모든 비애와 환희를 목격하고 나서 어디로 가는가?
부정의 근대를 넘어서 새로운 봄을 기대한다. 고향 인제에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시 <인제>가 있다. 지난날 아름답던 고향이 지금은 “전란으로 폐허가 된 도읍”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빨리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담겨 있다.
기다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존경하는 선인들에게 바치는 시 <옛날의 사람들에게>를 보라. “가난과 고통과 멸시를 무릅쓰면서” “문화의 화단”을 만들었던 선인들의 싸움을 “거룩한 정신”과 “예술의 금자탑”이라 부르며 이를 계승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박인환은 누구인가?
시인이다. 1926년 태어나 1956년 사망했다. 김경린과 함께 1950년대 모더니즘의 주축을 이루는 <후반기> 동인과 <신시론> 동인의 결성을 주도하며 한국 모더니즘 시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신은 왜 이 시집을 엮었나?
박인환은 흔히 극도의 허무 의식을 보인 시인으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사망 직전에 남긴 시들을 보면 그가 절망과 허무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지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자들이 무엇을 보기를 희망하는가?
모더니즘 시정신에 사회적 현실을 결합하려 했던 박인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권경아다. 한양대학교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