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주요섭 단편집
8월의 납량 특집 1. 1930년대 조선 지식인의 가장 아픈 질문
이승하가 엮은 ≪초판본 주요섭 단편집≫
주요섭의 동반자문학
20년 만에 만난 친구는 영 딴판이다. 스스로 비난했던 그 비겁한 행동을 자신이 그대로 재현한다. 변절이다. 주요섭은 1930년대 조선 지식인의 가장 아픈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다.
“선생님, 선생님. 도무지 정신을 못 채리는데요. 어떠케던지 좀 살려 줍시우. 선생님, 좀 살려 줍시우, 어이, 어이.”
하면서 그 여자는 다시 또 허둥지둥 병실 쪽으로 달려갓다. 동일 군은 사무실로 들어와 앉어 굵직한 여송연을 한 대 새로 피어 물면서
“환자의 무식에는 정말 질색이란 말야. 의사를 요술꾼처럼 생각을 하니… 그러다가 혹시 환자가 죽는다던지 하면은 생사람 살인이나 한 듯이 질알 발광들을 하고…” 하면서 그는 혼자말인지 나더러 들으란 말인지 중얼거렷다.
<의학박사>, ≪초판본 주요섭 단편집≫, 주요섭 지음, 이승하 엮음, 40쪽
동일이 누구인가?
손재주가 조선 제일이라고 소문난 의학박사, 채동일이다.
‘나’는 누군가?
채동일의 친구다.
둘은 어떤 관계인가?
21년 전 ‘나’가 고등보통학교의 애송이 교원이던 시절, 외과 대학 병원의 젊은 의사였던 동일과 여염집 사랑채에서 함께 지낸 사이다.
둘은 어떻게 다시 만났는가?
‘나’가 20년 만에 그를 만나러 병원으로 찾아왔다.
‘나’는 병원에서 무엇을 하는가?
채동일이 수술 구경을 권했다. 그는 간호사에게 ‘나’를 외국서 방금 오신 의학박사라고 소개하며 참고삼아 수술 참관을 한다고 속인다.
무슨 수술이었는가?
암종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수술은 잘되었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동일은 수술 직후 “흥 설비가 불완전한 걸 어쩌는 수 잇나?” 하고 혼잣말을 한다.
의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문제가 많다. 뿐만 아니었다. 불치 병인 암을 실컷 내버려 두었다가 다 죽게 되니 떠메고 와서 살려 달라 한다며 환자의 가족을 탓한다. 어차피 소용없는 환자라 생각해 수술대 위에서 죽이지 않으려고 최대한 빨리 봉합했다고도 말한다.
동일의 태도에 대해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20년 전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고는 “설비 불완전을 핑게루 기술의 부족을 엄호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지” 하고 쏘아붙인다.
20년 전 그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나?
자신의 실수로 환자가 잘못되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원으로 달려가 환자 곁에서 밤을 지새우며 간병하고 치료했다. ‘나’가 한 말은 바로 20년 전 동일이 내뱉었던 바로 그 말이었다.
수술이 실패하자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병원 어디선가 여자의 통곡 소리가 들린다. ‘나’는 무의식중에 “죽었군” 하고 말한다. 동일은 이미 예견했던 일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여송연을 꺼내 문다. 오래간만에 당구나 치러 가자고 유쾌하게 말한다. ‘나’는 묵묵히 그를 따랐다.
묵묵히 따르는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동일을 만난 이튿날 아침 누이동생에게 전날 일을 전하며 그에게 느낀 환멸과 증오를 이야기한다. 잠잠히 듣던 동생이 말한다. “흥 오빠두 거름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숭보듯 하시는군.”
‘나’에게 묻은 거름은 어떤 것인가?
그녀는 말한다. “오빠가 이전엔 원고를 쓰실 적에는 세 번 네 번 고처 쓰구 수정하구 또 고처 쓰구 해서야 잡지사루 보내시군 하더니 어제 아츰 신문사에 보내는 원고 쓰시는 걸 보니깐 한 번 그저 죽 내리써서는 한 번 다시 읽어두 안 보구 그냥 봉투에 너허 가지구 나가십데다. 오빠는 그래 그때와 지금이 변하지 안엇수!”
주요섭은 이 작품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지식인의 변절이다. 이 작품은 1938년 ≪동아일보≫에 연재됐다. 식민 지배 기간이 길어지고 일제의 만행이 극심해지자 한반도에서 3·1운동 때의 모습은 사라졌다. 독립운동가들은 멀리 북만주와 연해주, 중국 본토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지만, 국내의 지식인들은 대개 언론인·법조인·상공인·학자·관료 등으로 살길을 찾아서 둥지를 틀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주요섭이 지식인의 변절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연애소설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요섭 문학의 출발점은 동반자문학이다. 카프에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주의문학의 대의에 동조하는 작품을 등단 초기에 적지 않게 썼다.
우리는 왜 그가 동반자문학 작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가?
우리 문학계에서 동반자문학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에 묻혀 출간이나 연구되지 않은 작품이 많다. 이 책에 실은 <의학박사>와 <살인>도 책으로는 처음 소개하는 작품이다.
≪초판본 주요섭 단편집≫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나?
<살인>, <의학박사>, <붙느냐, 떨어지느냐?>, <세 죽음>, <나는 유령이다>, <마음의 상채기> 등 여섯 편이다. 시대를 정직하게 읽고 제대로 이해한 소설가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승하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