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파상 환상 단편집
무서운 책 5. 귀신과 악마, 뱀파이어도 벌벌 떠는 그것
노영란이 옮긴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모파상 환상 단편집(Contes fantastiques de Maupassant)≫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무서움
집 잃은 개, 머리카락, 우리 집 거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 일상과 일용의 뒷면을 본 인간은 불안과 공포의 근원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파상은 알고 있었다.
대낮처럼 훤하게 모든 것을 볼 수 있는데,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울이 텅 비어 있었다, 그냥 깨끗하게, 훤하게, 빛으로 가득했다. 내 모습이 그 안에 없었다… 나는 분명 그 앞에 서 있는데!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투명하게 빛나는 거울을 보았다. 그리고 정신 나간 눈으로 거울을 쳐다보았다. 앞으로 더 다가설 수가 없었다. 그가 분명히 거기 있다는 것, 그렇지만 그가 또 한 번 내 손아귀에서 도망칠 거라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그의 몸이 나의 모습을 삼켜 버렸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를라>, ≪모파상 환상 단편집≫, 기 드 모파상 지음, 노영란 옮김, 90쪽
그가 누구인가?
오를라다.
오를라는 누군가?
알 수 없다. ‘나’는 그를 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언제부터 그를 느꼈는가?
신경쇠약과 불면증에 시달리기 시작할 때다. 누군가 자신을 뒤쫓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신경쇠약에 의한 착각인가?
아니다.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잠에서 깼다. 물을 마시려 했다. 잠들기 전에 분명히 가득 차 있던 물병이 비어 있었다. 방 안에는 ‘나’밖에 없는데, 누가 물을 마신 걸까?
누구인가?
오를라다.
그의 짓인지 어떻게 확신하는가?
혹시 ‘나’가 그런 것인가 해서 실험을 했다. 물병과 우유병을 하얀 천으로 감았다. 손과 수염, 입술에 흑연을 묻히고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 보니 하얀 천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물과 우유는 사라졌다.
그것이 유일한 증거인가?
또 다른 일도 있었다. 환한 대낮에 산책을 하다가 장미나무를 바라보았다. 가지가 저 혼자 휘더니 부러졌다. 꽃이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다가 허공에 멈추었다.
오를라의 정체가 뭔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고 ‘나’의 착각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나’일 수도 있다.
미지의 존재라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몽생미셸을 여행할 때 수도원에서 신부를 만났다. 그가 미지의 존재를 이야기했다.
그가 말한 미지의 존재는 어떤 것이었나?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지상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예를 들어, 바람은 건물을 부수고 인간을 죽이고 거대한 파도를 만들고 무서운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인간은 바람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바람은 분명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오를라에 대해 ‘나’는 뭘 할 수 있는가?
그의 지배력이 커지자 그를 죽이려 한다. 그가 집 안에 들어왔을 때,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자 문을 모두 잠그고 불을 질렀다.
그는 불타 사라졌는가?
실패한다. ‘나’는 일기의 끝에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만 하겠지…”라고 썼다. 그가 ‘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를라>는 모파상 환상 단편 가운데 어느 지점에 있는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오를라는 괴기스러우면서도 신비하고, 동시에 소름끼치는 존재다. 그것은 ‘나’의 외부에 존재할 수도 있고, 내부에 존재할 수도 있다. 복합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끝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떻게 태어났는가?
1887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 <오를라>는 1885년 ≪질 블라스≫에 실은 <어느 미치광이의 편지>와 이듬해 같은 신문에 실은 <오를라>의 연장선에 있다.
<어느 미치광이의 편지>는 어떤 작품인가?
편지 형식의 글이다. 신체의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인간을 둘러싼 것들은 무한하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이 미지의 존재를 느끼는 과정을 그렸다.
≪질 블라스≫판 <오를라> 이후 작품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미지의 존재는 마침내 이름을 갖게 된다. 주인공은 정신과 전문의와 자연과학자 앞에서 초현실적 세계에 대한 생각과 주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최종판은 일기 형식으로 바뀌었고 사건이 추가되었다.
‘오를라’는 무슨 뜻인가?
여러 의견이 있다. 오를라(Le Horla)가 모르(mort), 오뢰르(horreur), 위를르망(hurlement) 곧 죽음, 공포, 울부짖음 등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 콜레라(choléra)의 철자를 바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파상은 누구인가?
일반적으로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로 알려졌지만, 환상 단편을 많이 썼다. 그의 환상 단편들은 프랑스 환상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작품을 썼는가?
1880년 중편 <비곗덩어리>로 데뷔했다. 데뷔하자마자 작가로서 인정을 받고 성공했다. 이후 10년간 매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다. ≪텔리에의 집≫, ≪마드무아젤 피피≫, ≪오를라≫ 등 중단편집과 ≪여자의 일생≫, ≪벨아미≫, ≪몽토리올≫, ≪피에르와 장≫, ≪죽음처럼 강하게≫ 등 장편소설을 썼다.
어떻게 살다 갔는가?
1850년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문학 소양이 뛰어난 어머니와 여섯 살 아래 남동생과 어린 시절을 보냈다. 루앙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어머니와 친분이 있던 플로베르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다. 이때 졸라, 위스망드, 도데 등 당대 위대한 문인을 소개받았다. 1877년경 매독에 걸렸고 몇 년 뒤 매독균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해 시력장애를 겪는다. 1891년 시력장애가 심해지며 환영에 시달렸다. 이듬해 휴양을 위해 니스에 있는 동안 자살을 시도해 파리에 있는 블랑슈 박사의 병원에 입원했다. 이 병원에서 1893년 사망했다.
≪모파상 환상 단편집≫에는 어떤 작품을 실었는가?
<어느 미치광이의 편지>, <오를라>의 ≪질 블라스≫ 발표본과 출판본, <물 위에서>, <유령>, <마드무아젤 코코트>, <머리카락>, <그 남자?> 등 모파상의 대표 환상 단편 여덟 편을 엮었다.
모파상 환상 단편의 특징은 뭔가?
귀신이나 뱀파이어, 악마 같은 것들이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안과 공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모파상은 집 잃은 개, 머리카락, 자기 집 거실 등 평범하고 익숙한 대상들을 활용했다. 평범한 일상이 불안과 공포의 근원지로 바뀔 때 독자는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두려움을 느낀다.
당신은 누구인가?
노영란이다. 서울여자대학교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