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인근 작품집
임정연이 엮은 ≪초판본 방인근 작품집≫
1920년대 조선에서 돈의 문제
봉건 사회관계를 자본 계약관계가 침윤한다. 양반 상놈은 부자와 빈자가 되고 남자와 여자는 직업과 재력으로 이름을 바꾼다. 돈은 자본의 혈액이다. 한번 수혈되면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당쟝 신녀쟈와 제법 훌늉하게 혼인할 처지가 못 되고 그러한 자격이 나의게는 업다. 나 개인으로는 훌늉한 쳥년인지 모르지만은 녀쟈가 보는 눈은 그러케 너그럽지 못하다. 현대 혼인 조건의 쳣재는 이러니 뎌러니 하여도 돈이다. 황금이다. 돈 업는 사나희는 제 아모리 쇽에 육조배관을 하엿드래도 혼인하기는 좀 어렵다.
<어머니>, ≪초판본 방인근 작품집≫, 방인근 지음, 임정연 엮음, 70쪽
주인공은 누구인가?
몽득이다. 여름 방학이 되어 1년 만에야 겨우 시골집에 돌아가는 가난한 고학생이다.
얼마나 가난한가?
밥값이 밀려 방학 때 한 달 동안 노동을 해 갚았다. 남은 돈으로 고향에 가는 차표를 사려고 했는데 두 정거장 차비가 모자랐다. 주막집마다 들러 물 한 대접씩 신세를 지며 80리를 걸어 집에 도착했다.
집 형편은 어떤가?
어머니가 빨래품, 바느질품을 팔며 겨우 입에 풀칠한다. 1년 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차려 준 밥상은 쌀 한 톨 섞이지 않은 보리밥과 된장, 간장, 고추장과 나물, 열무국이 전부였다.
밥상머리에서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는가?
오랜만에 만난 모자간 대화다. 어머니는 이제 살면 몇 해나 더 살겠냐며 며느리나 보고 죽어야겠다고 하소연한다.
몽득의 답은 무엇인가?
혼인 얘기가 나올 줄은 짐작했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그의 현실은 무엇인가?
“일 잘하고 튼튼한 촌색시”에게 장가들어야 한다. 어머니의 외로움을 달래고 일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편에는 무엇이 서 있는가?
몽득의 이상은 이랬다.
“연애니 리상적 가졍이니 신녀쟈이니” 하는 이야기들을 익히 들어 왔는데 “가갸 뒷다리도 모르는” 무식한 구여성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는 감졍과 공상과 욕망이 여간 굉쟝치를 안이하엿다.”
방황의 원인은 돈인가?
그렇다. 혼인 조건의 첫째가 돈이었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니 구두 신고 머리 튼 신여성과 혼인하지 못할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주인공 몽득은 이 부조리한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현대사회가 원하는 ‘돈’을 갖지 못한 자신의 처지 탓으로 돌린다. 자신을 설득한다.
그가 선택한 탈출구는 무엇인가?
배움이다. 사회에, 가정에, 돈에 얽매이지 않고 참사람이 되어 하루라도 참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배움이 돈을 해결할 수 있었는가?
지식은 1920년대 당시 청년의 현실적 결핍과 열패감을 상쇄하는 자원이자 무기였다. 방인근의 또 다른 작품 <마지막 편지>에서도 이런 사고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편지>는 어떤 내용인가?
‘나’는 애인과 사랑을 속삭이던 끝에 청혼까지 하지만 우연히 그녀가 ‘조형식’에게 쓴 연애편지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나’는 ‘거지 문사’로 표현되었고 연애 소문을 부인하면서 조형식과 혼인까지 약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차로 시골집으로 내려간다. 며칠간 마음을 정리한 후 마지막 편지를 쓴다.
편지에 뭐라고 쓰나?
연적인 조형식을 돈밖에 가진 것이 없는 인물로 치부하고 애인에 대해서도 원래 성에 대해 불순한 욕망을 지닌 여성이므로 언제든지 또 다른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사회와 세상을 위해 일하는 “큰 의무와 사명”이 부여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방인근이 돈과 사랑을 주요 소재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당시 시대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청년의 감상과 고민, 그리고 시대 인식을 담아낸 결과다.
1920년대 조선 청년의 주된 관심사가 돈과 사랑이었나?
그렇다. 일제의 수탈로 농촌이 황폐해지고 빈곤이 극에 달한 1920년대 조선에서 돈은 민중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었다. 그 돈이 연애와 결혼이라는 영역에 침투해 조선 사회에 새로운 위계질서를 형성했다.
방인근에 대한 당시 문단의 평은 무엇이었나?
<조선문단>에서 마련한 작품 평가회인 ‘합평회(合評會)’에서, 흥미는 인정받았지만 일관성과 개연성 면에서는 용두사미라는 평가를 받았다. 본인도 1925년 <조선문단> 지면에서 “自信 있고 定評이 잇는 出世作”을 처녀작이라고 할 때 자신의 문학에서 “處女作이라 할 만한 것이 아직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출세작은 언제 나왔나?
1930년대 들어 신문에 대중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뒤다. <마도(魔都)의 향불>, <방랑의 가인>, <쌍홍무(雙紅舞)>가 대표적이다. 해방 후에도 통속대중소설에 몰두해 인기를 얻었다.
문학 역량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인가?
대중문학 작가라는 수식어에 갇혀 그의 문학적 이력이 평가절하되었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이라는 이분법이 견고하게 작동하는 우리 문학 연구의 병폐로 인한 결과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정연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