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의 편지
지만지가 부치는 편지 1 : 고독을 사랑하라
고독을 사랑하라
12월, 한 해를 마감하는 달, 다섯 편의 편지를 띄웁니다. 첫 편지의 발신인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입니다. 스스로 “편지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진솔한 교제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구식 인간”이라고 밝힌 그는 1만 통이 넘는 편지로 수많은 사람들과 영혼을 교류했습니다. 오늘 편지는 시인을 꿈꾸는 한 청년 육사생도에게 부친 것입니다. 릴케도 어린 시절 군사학교를 다녔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에게 그는 고독을 사랑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충고합니다. 그 조언은 또한 삶과 예술에 대한 릴케 자신의 엄격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고독한 사람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언젠가 할 수 있을지 모를 그 모든 일들을 바로 지금 준비할 수 있고, 남보다 과오가 적은 그의 두 손으로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친애하는 카푸스 씨, 당신의 고독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 고독이 당신에게 가져다주는 고통을 견뎌 내어 아름다운 울림을 지닌 탄식으로 바꾸십시오. 당신에게 가까운 것들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당신은 말합니다. 그것은 이제 당신의 주변이 넓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가까운 것이 멀리 있다면, 당신의 넓이는 벌써 별들에게 가 닿을 만큼 아주 큽니다. 당신의 성장을 기뻐하십시오. 그 안으로 아무도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할지언정. 그리고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착한 마음을 가지시고, 그들 앞에서 안심하고 태연하십시오. 당신의 절망으로 그들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이해 못하는 당신의 신뢰나 기쁨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 자신이 다르거나 달라질지라도 꼭 바꿀 필요가 없이 소박하고 충실한 그들과의 공통점을 찾으십시오. 그들이 살아가는 낯선 형태의 삶을 사랑하시고, 혼자라는 것을 두려워하는 늙어 가는 사람들을 배려하십시오. 당신은 그 혼자 있음을 신뢰하더라도. 부모와 자식 간에 언제나 벌어지고 있는 그 소동에 소재를 제공하게 되는 경우를 피하십시오. 그것은 자식들의 힘을 많이 소모시킬 뿐 아니라, 이해는 못하더라도 따뜻한 정을 베푸는 노인들의 사랑을 쇠진하게 만듭니다. 그분들에게 어떤 충고를 요구하지도 마시고, 그분들의 이해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마치 유산처럼 당신을 위해 보관된 사랑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이 사랑 속에 힘과 축복이 들어 있음을 신뢰하십시오. 아주 멀리 가기 위해 그 축복에서 빠져나올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우선 당신이 당신을 자립시키고, 모든 의미에서 당신을 스스로에게 내맡기는 그런 직업에 들어서서 좋습니다. 이 직업의 형식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가장 내밀한 삶이 제한된다고 느껴질지 어떨지, 참을성 있게 기다려 보십시오. 나는 이 직업이 매우 어렵고 요구 수준도 매우 높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직업은 아주 큰 인습의 부담을 지고 있으며, 이 직업이 부과하는 과제를 개인적으로 이해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고독은 낯선 상황의 한가운데서도 당신에게 의지와 고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당신은 그 고독으로부터 당신의 길을 찾아낼 것입니다. 나의 모든 소원은 당신과 동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신뢰도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 1903년 7월 16일, 브레멘 근교 보릅스베데에서 카푸스에게 부친 편지 중에서
사랑을 만드는 고독
릴케의 편지 중에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었다. 이 아름다운 시인은 느린 소통 방식을 사용해 고독과 사랑의 변증법을 설명한다. 두 사람이 자신과 상대의 고독을 서로 보호하고, 경계 짓고, 환영하는 그런 사랑을 하게 될 때 그들은 각자의 내면이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느낀다.
≪릴케의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안문영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