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추석 특집 가족 4. 굉장한 노력으로 만든 가족
김현정이 옮긴 세르게이 도블라토프(Сергей Д. Довлатов)의 ≪우리들의(Наши)≫
도블라토프의 유머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난다. 독자는 첫 문장부터 웃기 시작한다. 책을 덮으면 진한 여운이 남는다. 눈물이 통과하는 웃음. 가족의 일생이 꼭 그렇다.
그 후 유쾌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사방에서 나를 내쫓았다. 진짜 몇 푼 안 되는 일자리도 앗아갔다.
나는 어떤 바보 같은 화물선 경비로 취직했다. 그리고 거기서도 쫓겨났다.
나는 술을 엄청 마시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아이는 서유럽으로 떠났다. 우리 두 사람만 남았다. 더 정확히는 셋. 엄마, 나 그리고 개 글라샤.
노골적인 박해가 시작되었다. 나는 형법 세 항목에 저촉되었다. 놀고먹는 것, 권력 도전, ‘다른 형태의 무기 소지’
세 죄명 모두 위조된 것이었다.
경찰이 거의 매일같이 나타났다.
그러나 나도 이에 대한 방어 수단을 구축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에 살았다. 반대편 창문에서 게나 사흐노가 항상 불쑥 얼굴을 내밀곤 했다. 그는 술고래 기자로, 많은 모주망태들이 그렇듯, 눈부실 정도로 고매한 사람이었다. 온종일 창가에서 포트와인을 마셔 댔다.
우리 현관 쪽으로 경찰이 오면, 게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더러운 년들이 온다.” 그는 간결하게 보도했다.
그러면 나는 바로 빗장 문을 걸어 잠갔다.
경찰은 빈손으로 떠나갔다. 게나 사흐노는 정직하게 일하고 1루블을 받았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우리들의≫,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215쪽
‘나’는 누구인가?
소련의 작가다.
유쾌하지 않은 일의 발생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의 작품 세 편이 서구에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당국은 그의 작품에 체제 비판 내용이 들어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사는가?
구치소에서 며칠을 살다가 나온 뒤 결국 어머니, 개 글라샤와 함께 뉴욕으로 이민 간다.
도블라토프 자신의 이야기인가?
그렇게 봐도 된다. 실제로 그는 소련에서 책을 낼 수 없었다. 출판사가 출간을 거부했다. 한 번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원고를 최종 수정한 상태에서 국가안보국의 개입으로 출간은 물거품이 된다.
그의 작품이 서구에 알려진 경로는 어떤 것이었나?
지하에서 돌던 그의 작품 몇 편이 1976년 러시아 이민 잡지에 게재된다. 이 때문에 탄압을 받자 1978년에 이민 길에 오른다.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뉴욕에 정착한다.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작가의 이야기가 섞여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픽션이다. 한 러시아인 작가가 할아버지, 외삼촌, 이모 등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족 열세 명을 주인공으로 삼은 일종의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이다. 그 가운데 작가 이야기도 등장한다.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인가?
한 가족 4대에 걸친 ‘우리들의’ 삶이다. 러시아 제정 말기에 살았던 조부들의 삶부터 소비에트 시절 부모와 작가 세대, 그리고 이민 후 미국에 정착해 사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다. 자신과 소비에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 주려 했다.
도블라토프는 어떤 작가인가?
러시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현재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언제 고국에서 출간되는가?
안타깝게도 탄생 50주년을 기념해 고국에 내놓을 첫 단편집을 보지 못하고 1990년 생일을 일주일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났다. 소련 해체 뒤 1993년에 그의 첫 번째 전집이 러시아에서 발간됐다. 현재까지 매년 재발행될 정도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자랑한다.
그의 대중성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재미다. 그의 작품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두세 시간 눈을 뗄 수가 없다. 하지만 그의 유머는 단순한 우스개를 넘어선다.
어떤 유머인가?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서술과 등장인물의 언행으로 독자를 배꼽 빠지게 한다.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은 첫 문장부터 웃기 시작한다. 실컷 웃은 독자는 책을 덮고 나면 가벼운 웃음 속에서 진한 여운을 느낀다. 이것이 도블라토프식 유머다. “눈물이 통과하는 웃음.” 그런데도 그가 지향하는 유머는 가볍다.
잘 읽히는 이유는 뭔가?
평이한 단어와 구어체로 된 짧은 문장이다. 주변에서 작품의 소재를 찾는다. 그래서 작품 내용은 지극히 평범하다. 하지만 이 평범한 일상의 소재를 언어로 표현하는 데 도블라토프가 들이는 노력은 굉장하다.
주변의 일을 어떻게 끌고 오는가?
실재 인물의 이름이나 직업, 사건들을 작품 속에 집어넣는다. 작품 속 이야기가 사실보다 더 그럴싸해진다.
‘굉장한 노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한 문장마다 수백 번씩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다고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렇게 다듬고 또 다듬어서 탄생한 몇 단어로 이루어진 짤막한 문장에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압축적이면서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언어의 마술사라고 불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정확하면서도 쉬운 도블라토프의 문체는 러시아어의 진수를 보여 주기에 충분하다.
이런 압축된 문장을 당신은 어떻게 옮겼는가?
구어체를 가능한 한 활용하면서도 재미와 가볍지만은 않은 여운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사실과 작가의 상상력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도블라토프의 삶과 작품을 비교해 보면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라 픽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가 모호해 구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 역시 도블라토프 특유의 창작 방법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현정이다. 부산대 노문학과에서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