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자
김장환이 옮긴 곽징지(郭澄之)의 ≪곽자(郭子)≫
향을 훔치고 옥을 훔치다
사랑한다고 맺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자의 아버지가 버티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인의 향기를 훔친다. 실체는 없지만 후각은 예민하다. 아비가 딸을 이기랴! 남자는 옥을 얻는다.
진건이 한수를 속관으로 삼았는데, 회견할 때마다 그에게서 진기한 향내가 풍겼다. 그 향은 외국에서 바친 것으로 한번 몸에 차면 며칠 동안 향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진건은 곰곰이 생각했다.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께서 오직 나와 가충(賈充)에게만 이 향을 하사하셨으므로 다른 집에는 이 향이 있을 리가 없다.’
≪곽자≫, 곽징지 지음, 김장환 옮김, 27쪽
한수의 향내는 어디서 나는 것인가?
진건의 딸과 사통한 탓이다. 그녀가 한수를 사모했다.
진건은 어떻게 하는가?
딸 신변의 하녀에게 캐물어 사실을 확인한다. 즉시 딸을 한수에게 시집보냈다.
‘투향절옥(偸香竊玉)’의 유래인가?
그렇다. ‘향을 훔치고 옥을 훔치다’는 의미다. 부정한 남녀 관계를 일컫는다.
비슷한 이야기를 다른 데서도 볼 수 있지 않나?
이 이야기는 ≪세설신어(世說新語)≫를 거쳐 당나라 원진(元稹)의 전기(傳奇)소설 ≪앵앵전(鶯鶯傳)≫의 원본이 되었다. 이후 송나라 조령치(趙令畤)의 사(詞) ≪상조접련화(商調蝶戀花)≫, 금(金)나라 동해원(董解元)의 제궁조(諸宮調) ≪서상기제궁조(西廂記諸宮調)≫, 원(元)나라 왕실보(王實甫)의 잡극(雜劇) ≪최앵앵대월서상기(崔鶯鶯待月西廂記)≫로 면면히 개편 발전되었다.
허구인가?
지인소설(志人小說)이다. 실화에 근거했다.
지인소설이 무엇인가?
문인 명사들의 언행·일화·인물 품평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짧은 글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했다. 당시 사회의 여러 측면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반영한다.
언행, 일화, 소문을 기록한 것을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가?
묘사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태도를 그려낸다. 소설의 초기 형태로 분류한다. 완벽한 이야기 구조를 갖추고 있지는 못하고 묘사도 구체성은 떨어진다.
전(傳), 기(記)와는 어떻게 다른가?
전(傳)은 한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일대기로 기록한 것이고, 기(記)는 한 사건의 전말을 종합 기술한 것이다. 지인소설은 특정 인물의 주목할 만한 언행과 풍모, 또는 특정한 사건의 가장 극적 대목을 포착하여 짤막한 편폭에 간결하게 묘사한다. 이것이 차이다.
지인소설에는 어떤 작품이 있는가?
대표작으로 중국 남조(南朝) 송(宋)나라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가 있다. 서한부터 동한, 서진, 동진 등 4조에 걸친 약 200년 동안의 인물 이야기다. 다루는 인물이 정치가, 문인, 사대부, 서민, 승려에 이르기까지 500~600명에 달한다.
≪곽자≫는 어떤 책인가?
위진(魏晉) 시대 명사 청담(淸談)의 산물이다. 동진 말에 지어졌다. 현재 남아 있는 노신(魯迅)의 ≪고소설구침≫본에 총 84조가 집록되어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인물의 정신세계와 성격을 형상화하는 데 뛰어나고 언어가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문장이 청신하다. 위에서 언급한 ≪세설신어≫의 창작에 직접적인 취재 고사를 제공했다. 약 70여 조가 ≪세설신어≫에 채록되어 있다.
어떻게 현재까지 전해지나?
당나라 때까지는 남아 있었으나 송나라 이후에 이미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유문(遺文)이 ≪예문유취(藝文類聚)≫, ≪초학기(初學記)≫, ≪태평어람(太平御覽)≫, ≪태평광기(太平廣記)≫ 등에 실려 전한다.
곽징지는 누구인가?
400년 전후 활동한 동진의 문학가다. 처음에 상서랑(尙書郞)에 임명되었다가 조정을 나와서 남강왕(南康王)의 상국(相國)이 되었다. 노순(盧循)의 반란을 만나 유랑 생활을 하다가 유유를 따라 북벌에 참여했으며, 유유의 상국종사중랑(相國從事中郞)에까지 이르렀다. 남풍후(南豊侯)에 봉해졌다가 죽었다.
그의 이야기는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진서(晉書)≫ 권92 <문원전(文苑傳)>에 그의 전(傳)이 실려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장환이다. 연세대 중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