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는 정확했다 천줄읽기
사순옥이 옮긴 하인리히 뵐(Heinrich Böll)의 ≪열차는 정확했다(Der Zug war pünktlich)≫
전쟁의 원인
곧, 인간은 죽을 것이다. 이유는 분명치 않다. 사인도 불분명하다. 의미는 찾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곧 죽는다는 확신, 전쟁의 약속이다. 누가 한 약속인가?
곧, 나는 죽는다. 난 죽을 것이다. 곧. 네 스스로 말했다. 네 안에 있는 누군가가 그리고 네 밖의 누군가가 이 곧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곧은 전쟁 중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적어도 확고한 얘기다. 전쟁은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난 영영 평화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없을 것이고 아무것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음악도… 꽃도… 시도… 인간의 어떤 기쁨도−곧 나는 죽을 것이다.
≪열차는 정확했다≫, 하인리히 뵐 지음, 사순옥 옮김, 21~22쪽
‘나’는 누구인가?
젊은 병사 안드레아스다. 휴가를 마치고 동부전선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타는데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불안의 근원은 무엇인가?
소리다. 그는 이 소리가 전쟁의 발단이고 모든 불행의 근원이며 끔직한 전쟁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모른다.
기차에서 내리지 않는가?
죽음의 환상에 사로잡힌 채 계속 간다. 그러다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병사 빌리와 지벤탈을 만난다.
빌리는 누구인가?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갔으나 아내가 이미 러시아인 전쟁 포로와 함께 사는 것을 목격한다. 차라리 전쟁에서 죽고 싶은 심정으로 전선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지벤탈은 어떤 일을 겪었나?
사디스트인 상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요구를 거절한 병사는 그에게 사살되었다. 지벤탈은 동료들과 함께 병사의 시체를 치운다. 죽은 병사의 부인은 남편의 전사 전보를 받을 것이다. 거짓과 위선의 세상에 저항하지 못하고 추잡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는 생각에 지벤탈은 자신을 증오한다.
세 사람은 어디로 가는가?
열차에서 하차한다. 셋은 폴란드의 한 유곽으로 향한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안드레아스는 슈베르트의 소곡을 듣고 감동을 받는다.
누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인가?
창녀 올리나다. 고국 폴란드의 저항군을 위해 독일군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스파이다. 전쟁 전에는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음악대학을 다녔다.
적을 만난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스물두 살의 청년 안드레아스를 보고 자신이 아무 죄 없는 젊은이들을 죽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죄책감을 느낀다. 자신의 스파이 노릇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인식한다. 두 사람은 육욕이 없는 사랑을 느낀다.
왜 무의미한가?
비록 그것이 조국을 위한 것일지라도 자신이 돕고 있는 고국의 저항군 역시 단순히 사형 집행자들의 하수인밖에 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동시대의 희생자일 뿐이다.
희생자들의 선택은 무엇인가?
올리나는 세 사람과 함께 그녀의 손님인 독일 장교가 보낸 자동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 한다. 그녀는 안드레아스를 죽음의 공포에서 구하려 한다.
공포로부터 탈출하는가?
아니다. 폭탄이 터져 자동차는 동강이 난다. 죄 없는 젊은이들은 ‘형리(刑吏)’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무엇이 ‘형리’인가?
낭랑한 소리이고 실체 없는 힘이다. 이것은 전쟁을 혼자서 조종하며 인간을 죽음으로 내몬다. 전쟁의 메커니즘은 개인의 운명을 무시하기 때문에 탈출은 불가능하다. 전쟁에서는 ‘형리’와 희생자만 존재한다.
뵐에게 전쟁은 무엇인가?
“티푸스와 같은 병”이고 원인은 결코 밝혀지지 않는다. 따라서 ‘형리’는 익명으로 남는다. 작가는 이 익명의 힘을 단지 ‘그들’로 표현한다. 대명사는 파악할 수 없는 힘의 익명성을 더욱 강화한다. 뵐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이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는가가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다.
반전문학인가?
그렇다. 194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하인리히 뵐의 처녀작이며 전쟁문학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쟁문학과는 다르다.
다른 전쟁문학과 무엇이 다른가?
치열한 전투 현장을 그리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사건에 말려든 병사들의 무기력과 공포, 불안만을 묘사한다. 뵐에게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어처구니없이 사라져 가는 개인의 억울한 운명만이 중요하다. 전쟁 테러에 무력한 인간의 실존적 공포만을 세세히 전달할 뿐 전쟁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다.
하인리히 뵐은 누구인가?
독일의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사순옥(사지원)이다. 건국대 자율전공학부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