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형제의 시련
박정경이 옮긴 월레 소잉카(Wole Soyinka)의 ≪제로 형제의 시련(The Trials of Brother Jero)≫
영국의 이름과 아프리카의 당대
지배자는 물러갔지만 이름은 남았다. 해방된 현실은 식민지의 언어에 친숙하다. 사기꾼이 목사를 사칭하고 멍청이가 국회의원이 된다. 과거는 사라지고 미래는 오지 않는다. 국민도, 국가도 미아가 된다.
추메제가 한 번만 그녀를 팰 수 있다면, 딱 한 번만….
제로(그의 말을 막고 소리치며) 아버지 하나님,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낮에도 사하소서, 밤에도 사하소서, 아침에도 사하소서, 점심에도 사하소서…. 이 아들은 내 뒤를 잇도록 당신께서 지명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을 온화하게 하소서. 추메 형제여, 자네가 그토록 패고 싶어 하는 여자는 자네의 십자가일세. 잘 견디게나. 그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시련이라네. 그녀에게 손대지 말게. 그녀에게 험한 말조차 하지 말라는 명령을 자네에게 내리겠네. 추메 형제, 이 시련의 시기에 힘을 달라고 기도하게. 강인함과 꿋꿋함을 구하는 기도 말일세.
≪제로 형제의 시련≫, 월레 소잉카 지음, 박정경 옮김, 42∼43쪽
제로가 누구인가?
본명은 제로보암이다. 목회자다. 신도인 추메는 그가 선지자라고 믿는다.
추메가 그토록 패고 싶어 하는 여자는 누구인가?
그의 아내 아모페다. 억척스러운 장사꾼이다.
왜 아내를 때리려 하나?
잘해 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다. 끊임없이 트집을 잡고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불평만 한다. 정말 참기 어려운 점은 아내가 자신을 남과 비교하며 무시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때리나?
때린다. 제로의 허락을 받아 아내를 때린다.
무슨 이유로 제로는 매질을 허락하는가?
그녀가 자신의 빚쟁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외상값을 갚으라고 날마다 찾아와 그를 닦달하고 있다.
목회자가 자기 빚 때문에 폭력을 허락하는가?
제로는 사기꾼일 뿐이다. 신도를 ‘손님’이라 부르고 사제직을 ‘생업’, ‘장사’로 여긴다.
사기꾼의 ‘생업’은 사정이 어떤가?
‘시련’이 찾아온다. 추메가 제로의 실체를 알게 된다. 격분해 그를 뒤쫓는다.
잡히는가?
그렇지 않다. 새로 등장한 연방의회 의원이 제로의 ‘작업’에 넘어간다. 그의 도움으로 제로의 ‘생업’은 아무 지장 없이 계속될 것이다.
당대 아프리카의 현실이 이랬는가?
사회 풍자다. 종교는 그 일부다. 정치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식민주의 잔재는 그대로였다. 부정부패, 탐욕, 분열이 활개를 치고 저개발과 빈곤이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월레 소잉카는 누구인가?
본명은 아킨완데 올루월레 소잉카(Akinwande Oluwole Soyinka)다. 1934년 나이지리아 아베오쿠타에서 태어났다. 1986년 아프리카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어디서 공부했나?
나이지리아 이바단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리즈대학에서 수학했다.
언제 아프리카로 돌아왔나?
1960년이다. 이해 나이지리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귀국한 그는 극단을 조직해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하면서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제로 형제의 시련>도 이 무렵 쓴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사는가?
혼란한 조국의 정치 상황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군사 정부에 저항해 수감되기도 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는 미국과 프랑스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지금은 민정을 회복한 나이지리아로 돌아가 대학 교수로서 강의와 저술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문학의 뿌리는 어디에 있나?
그가 속한 요루바 민족의 고유문화와 서구 교육을 통해 만난 영문학 전통이다.
요루바 문화란 어떤 것인가?
민족 구비 문학이다. 토착 종교를 바탕으로 한 신화, 전설, 찬양시 등 다양한 장르의 구비 문학 형식이 존재한다.
어떤 작품을 썼나?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했지만 특히 희곡 분야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쳤다. 대표작으로 희곡 <숲 속의 춤>, 소설 ≪해설자들≫ 등이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정경이다.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학부 조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