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르 시선
분명 누군가 있다
한대균이 옮긴 안 에베르(Anne Hébert)의 ≪에베르 시선(Les poèmes choisis d’Anne Hébert)≫
죽어도 죽지 못하고
나는 살해당했고 선 채로 묶여 있다.
죽었지만 죽지 못하고 끝나지 않는 삶의 고통을 목격한다.
영국 속의 프랑스, 남성 속의 여성, 나는 퀘벡의 역사다.
분명 누군가 있다
날 죽이고
발끝으로
완벽한 춤을 끊임없이 추며
가 버린 누군가가 있다.
날 눕히는 걸 잊었는지
세워 둔 채로
가는 길에
완전히 묶어 놓았다,
심장은 그자의 옛 보석함에 담겨 있고
눈동자는 가장 맑은 물 이미지와 닮아 있는데
그자는 내 주변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었고
갈망하는 내 두 눈 감기는 것 잊어
그 상실된 욕망을 허용했다
≪에베르 시선≫, 안 에베르 지음, 한대균 옮김, 48∼49쪽
이 시 속의 나는 누구인가?
프랑스어 문법으로 볼 때 여성이다. 이 시는 에베르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고통받는 퀘벡 여성을 그렸다.
‘나’의 상황은 무엇인가?
살해당했고 선 채로 묶여 있다.
죽고 나서 뭘 하는 것인가?
계속되는 삶의 고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나’의 죽음은 영원히 종결되지 않는다. 시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없다. 끝나지 않은 것이다. 초판에는 구두점이 있었으나 재판본부터 사라졌다.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자는 내 주변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었고 갈망하는 내 두 눈 감기는 것”을 잊어 “그 상실된 욕망을 허용했다”. 절망 가운데도 희망은 남아 있다.
누가 ‘나’를 죽였나?
여성을 탄압하고 학대해 온 퀘벡 전통 사회다.
캐나다의 퀘벡 말인가?
맞다. 캐나다 연방 퀘벡 주다. “누벨 프랑스”라고도 한다. 주민 대부분이 프랑스계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영어권 한가운데 어떻게 프랑스어 지역이 생겼나?
원래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이후 영국에 할양되었다. 영국계 이민자들과 프랑스계 주민들 사이에 차별, 빈부 격차의 갈등이 계속되었고 퀘벡 주 정부는 분리 독립을 원하고 있다.
퀘벡의 시에 퀘벡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생드니 가르노는 퀘벡의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순수시의 존재에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가스통 미롱은 풍자와 언어 파괴를 통해 퀘벡인의 정체성을 회복하려 노력했다.
에베르는 미롱과 무엇이 다른가?
미롱이 정치적 억압에 주목했다면 에베르는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굴종에 주목했다.
왜 여성인가?
퀘벡 여성은 가난하고 차별 받는 프랑스계 주민 중에서도 더욱 억압받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특히 가톨릭과 농촌 사회는 여성에게 정숙과 순종, 희생을 강요했다.
그의 다른 시에서는 여성은 어떤 모습인가?
<낚시꾼들>을 보자. 이상은 사로잡히고 삶의 억압과 인간성에 대한 모욕만 남아 있다.
낚시꾼들은
그들의 젖은 투망으로
새를 낚는다.
…
앉은 이 여인은,
한 땀 한 땀,
세상의 모욕을 수놓는다.
안 에베르는 누구인가?
현대 퀘벡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소설가다. 1916년 태어나 2000년에 사망했다. 알랭 그랑부아 문학상과 페미나상을 수상했다.
어떤 작품을 썼나?
시집으로 ≪왕들의 무덤≫, ≪언어의 신비≫, ≪낮은 밤 외에 비길 만한 것이 없다≫, ≪왼손을 위한 시편들≫이 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소설 ≪카무라스카≫와 ≪가마우지 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시의 특징은 무엇인가?
문체가 극단적일 만큼 간결하고 단어의 반복으로 리듬을 추구한다. 사촌인 생드니 가르노의 영향일 것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특히 랭보 시학의 영향을 받았지만 단어 자체가 아니라 형상에 대한 연금술을 시도했다.
그녀에게 시란 무엇인가?
억압받는 존재의 고독과 소외에 대해 항거하고 분노하는 언어이자 고통스런 내면 체험을 발로하는 표현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한대균이다. 청주대학교 불문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