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크 시선
러시아에서 그리스도가 걸은 길
러시아 문학 2. 최종술이 옮긴 알렉산드르 블로크(Александр А. Блок)의 ≪블로크 시선(А. А. Блок. Избранная лирика)≫
혁명, 현재의 질문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생이 거짓되고 추악하고 무료하기 때문이다.
정의롭고 아름다운 생을 찾아 일어섰다.
천둥과 번개가 지나갔고 모든 소리는 죽어 버렸다.
러시아
황금 세기처럼 다시
닳고 닳은 세 개의 말 가슴걸이가 펄럭인다.
채색된 바퀴살들이
헐거운 홈에 끼워져 있다….
러시아, 궁핍한 러시아.
내게 네 잿빛 이즈바*는
내게 네 바람의 노래는
첫사랑의 눈물 같구나!
나는 널 불쌍히 여길 줄 모르고
제 십자가를 소중히 나른다….
어떤 마법사든 네 마음에 들면
약탈의 미를 내주어라!
꾀어내어 속이게 해라.
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근심이
네 아름다운 모습에 어둠을 드리울 뿐….
그래 뭐? 근심 하나로 더 아프고,
눈물 한 방울로 강은 더 소란스럽다.
하지만 넌 여전하다. 숲과 들판,
눈썹까지 두른 무늬 스카프.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다.
긴 길이 가볍다.
길 저 멀리 스카프 아래에서
순간적인 시선이 번뜩일 때,
마부의 황량한 노래가
감옥의 애수가 되어 울릴 때!
*이즈바: 통나무를 수평으로 쌓아 올린 집이다. 시골에서 볼 수 있다.
≪블로크 시선≫, 알렉산드르 블로크 지음, 최종술 옮김, 212∼213쪽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나’는 시인이고 ‘너’는 조국 러시아다.
시인에게 조국은 무엇인가?
인간적 형상의 살아 있는 존재다. 그는 가족과 연인을 향한 내밀한 사랑으로 조국을 대한다.
이 시에서 러시아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환희에 찬 사랑이 끝 모를 길을 질주하는 ‘트로이카’의 형상과 결부되며 시를 관류한다. 그에게 러시아는 순종하며 지고 가야 할 고통과 시련의 “십자가”다.
러시아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20세기 러시아인의 비극적 실재가 전율에 찬 예언의 시구에서 연상된다. 하지만 그는 고난에 처한 변혁기의 조국에 대한 연민을 거부한다. 러시아는 “사라지지도 몰락하지도 않을 것”이라 믿는다.
블로크는 누구인가?
러시아 상징주의 대표 시인이다. 안나 아흐마토바는 “블로크는 20세기 첫 사분기의 위대한 시인일 뿐 아니라 시대적 인간이고 가장 선명한 시대의 대변자다”라고 평했다.
위의 시는 그의 시 세계에서 어디쯤 있는 작품인가?
이 시는 ‘성육신의 3부작’ 중 3부에 속한다.
‘성육신의 3부작’이 무엇인가?
그는 “개별 시는 저마다 장의 형성을 위한 필수 요인이다. 여러 장이 모여 책을 이룬다. 각 권은 3부작의 부분이다. 3부작 전체를 나는 ‘시 소설(роман в стихах)’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체가 ‘성육신의 3부작(трилогия вочеловечения)’이다.
‘성육신’은 성서의 의미인가?
그렇다. 인간의 모습으로 육화해 인류를 위해 죽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가 걸은 지상의 길을 의미한다.
작품은 어디를 향해 가는가?
‘성육신의 3부작’은 세상과 삶에 대한 이해를 향해 가는 길이다. 이성과 학문의 이해가 아니라, 고행과 환멸, 의심과 고통의 길이다.
그 길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나’로부터 ‘우리’를 향해 나아간다. 1부에서 그는 온전히 자기 내면에 침잠해 있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형상들이 시인의 영혼을 물결치게 한다. 1부는 1898∼1904년 사이에 쓴 시가 창작 연대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1부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순결한 어린아이’, ‘현명한 사제’, 성스러운 존재인 연인에게 헌신하기 위해 세속적 가치와 절연한 ‘기사도적 인간’이다.
2부의 길은 어떤가?
‘집 없는 곤궁한 부랑아’, ‘생의 무게에 신음하는 소시민’, ‘한밤 선술집의 취객’이다. 2부는 파국과 비극에 대한 예감과 파멸적인 정열로 점철되어 있다. 2부에는 1904∼1908년 사이에 창작된 시가 실려 있다.
1부와 2부 사이의 변곡점은 어디인가?
1905년 1차 혁명기의 사회상이다. 모순적인 삶의 체험이 시에 침투한다. 시인은 젊은 시절의 추상적인 염원을 대신하는 다른 지상의 가치를 추구한다.
3부는 어디를 향하는가?
1907∼1916년에 걸쳐 창작한 3부의 작품에서는 ‘예술가 인간(Человек-артист)’의 이상이 등장한다. 예술가 인간은 모순과 어둠 속에 잠재된 조화와 빛을 포착한다. 3부는 현실에 맞서는 몸짓 속에서 미래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는 삶의 기록이다.
3부작 이후에는 뭘 썼나?
1917년 혁명 당시 시인은 더 이상 음악을 들을 수 없었고, 시를 쓸 수 없었다. 그러다 10월 혁명 이후 잠시 정신적 소생을 맞이한다. 혁명에서 러시아가 영적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실현된 예감은 그의 가슴에 희열이 들끓게 했다. 하지만 마지막 불꽃은 이내 시들었다.
10월 혁명은 그에게 무엇이었나?
진정한 낭만주의자였기에 그는 혁명이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거짓되고 추악하고 무료한 우리의 생이 정의롭고 순결하고 즐거우며 아름다운 생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위대한 뇌우가 그치고 삶이 더 잔혹하고 쓰라리게 되었을 때, 무시무시한 애수가 그를 덮쳤다. “소리들이 죽었다”라고 그는 말했다.
블로크의 삶은 어떤 궤적을 그렸는가?
188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텔리겐치아 집안에서 태어났다. 1903년 시인이자 비평가로 등단했다. 1904년 첫 시집 ≪아름다운 여인에 관한 시(Стихи о Прекрасной Даме)≫가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들에게 열렬히 환영받았다. 1921년부터 혁명정부 산하의 문화 기구에서 일하며 강연에 몰두한다. 그러나 혁명의 이상과 전체주의적인 소비에트 관료 정권의 실상 사이에서 괴리를 인식하며 환멸을 느낀다. 말년의 우울은 심장병을 동반한 정신착란으로 심해졌다. 1921년 영면했다.
당신은 이 책에 어떤 시를 골라 옮겼나?
서사시를 제외한 3부작 762편에서 각 장의 시적 사색과 정념의 핵심을 구현하는 서정시 73편을 선별하고, ‘3부작 시집’에 수록되지 않은 시 한 편을 더 골랐다. 생애 마지막 해에 쓴 <푸시킨스키 돔에게(Пушкинскому дому)>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종술이다. 상명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