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타야 단편집
낮에는 할 수 없는 것들
이수연이 옮긴 타티야나 톨스타야(Татьяна Толстая)의 ≪톨스타야 단편집(Рассказы Т. Толстой)≫
낮에는 없는 것들
세수하면서 물을 흘린다.
종이 상자를 숨긴다.
승강기를 타지 않는다.
돈을 집는다.
여자에게 말 건다.
엄마의 품에 안긴다.
그리고 종이에 적는다.
밤과 밤과 밤.
“알렉세이 페트로비치의 머릿속에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참된 세계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반면, 바깥 세계는 어리석고, 부정하다. 이 세계에서 선과 악을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서로 조건을 만들고 약속을 하며, 너무나도 어려운 규칙을 써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배우고 익힌다. 그들의 엄청난 기억력이 놀라울 뿐이다. 그들의 규칙에 따라 사는 것은 알렉세이 페트로비치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톨스타야 단편집≫, <밤>, 타티야나 톨스타야 지음, 이수연 옮김, 20~21쪽
알렉세이 페트로비치는 누구인가?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남자다. 그는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한다.
그의 하루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일어나서 면도하고 이부터 닦는다. 엄마는 그에게 욕실에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명령한다. 세수를 마치면 엄마는 늘 바닥에 물을 흘리지 않았는지 검사한다.
엄마의 과민인가?
옆방 사람들이 욕하기 때문이다. 공동 주택에 산다. 화장실과, 욕실, 부엌을 함께 사용한다.
그는 하루를 어떻게 사는가?
아침 식사를 한 뒤 마분지를 풀로 붙여 상자를 만든다. 100개를 만들어 약국에 갖다 주면 돈을 받는다. 그는 상자들과 헤어지기 싫어 엄마 몰래 상자를 숨기지만 엄마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빼앗아 간다. 좋아하는 상자들이 길거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진 것을 볼 때마다 그는 거세게 분노한다.
분노의 모습은?
이글거리는 눈을 하고 입가에는 거품이 맺힌다. 당장이라도 한 사람의 목을 비틀어 버릴 기세다. 엄마가 달려와 진정시키고 그에게서 칼이나 망치를 빼앗아야 수습된다.
일을 마치면 그다음엔 무엇이 있는가?
산책한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 숨이 곧 멈출 듯이 답답해져 가벼운 토끼처럼 빽빽 울기 때문이다. 무엇이 자신의 다리를 밑에서 끌어당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를 찾아 복도로 나간다.
복도로 나가면?
잘못해 다른 사람 방에 들어간다. 거기서 돈을 발견한다. 그에게 돈은 아이스크림과 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엄청난 비난과 욕설을 퍼붓는다. 돈을 버린다. 비난과 욕설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신의 세계로 빠져든 그는 길 가는 여자를 희롱했다는 이유로 호된 주먹질을 당한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혼자 남아 울부짖는다.
그 다음은?
엄마가 달려온다. 그를 가슴에 품고 입 맞추며 오열한다. 집으로 데려가 퉁퉁 부어오른 얼굴을 씻어 준다. 평온을 되찾은 그는 엄마에게 종이와 펜을 받아 진하고 굵은 글씨로 지금 막 깨달은 삶의 진실을 서둘러 쓴다.
삶의 진실은 무엇인가?
“밤, 밤, 밤, 밤, 밤, 밤, 밤, 밤, 밤, 밤,”
밤이 뭔가?
그가 가진 동화적 상상력의 세계는 합리와 이성의 세계와 대립한다. 그는 처음으로 엄마와 떨어져 그 세상을 만나지만, 그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암흑과 같다. 밤은 그가 경험한 냉혹한 현실의 실체다.
작가는 왜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나?
주인공은 푸슈킨의 시를 정상인과는 다르지만 자신의 영감대로, 정확한 운율로 읽는다. 작가는 이를 통해 풍부한 감수성을 토대로 한 주인공의 상상력이 얼마나 시적인가를 보여 준다. 주인공은 합리와 이성, 사회적 관습에 익숙한 정상인들이 잃어버린 상상력을 보여 주기 위해 작가가 전략적으로 창조한 인물인 셈이다.
이 단편집에는 어떤 작품이 실렸는가?
<밤> 외에 <백지>, <새와의 만남>, <매머드 사냥>이다.
<백지>는 어떤 작품인가?
인간과 인격이 사물화되는 현대의 인간 소외 현상을 첨예하게 보여 준다. 삶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의 최고 가치인 ‘양심’을 제거하는 주인공의 선택은 독자에게 비인간적 사회로 치닫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새와의 만남>은 어떤 작품인가?
순진무구한 아이의 눈을 통해 현실에 대한 환상과 꿈을 빼앗는 어른들의 비속함이 통렬하게 드러난다.
<매머드 사냥>은 어떤 작품인가?
삶의 의미를 남자를 통해서만 찾으려는 의존적인 여성들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담는다. 매머드는 거대한 힘을 가진 남성을 상징하지만 이미 멸종한 존재다. 이를 통해 작가는 불가능한 사냥에 매달리는 여성들의 어리석음과 함께 남성 우월주의 사회의 종식까지 환기한다.
타티야나 톨스타야는 누구인가?
러시아의 대표적인 여류 소설가다. 현대 러시아 여성 문학의 1세대로 꼽힌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작가 알렉세이 톨스토이고 외할아버지는 번역가로 활동한 미하일 로진스키다.
어떤 작품들을 썼나?
여성의 현실을 문제 삼는 작품을 많이 썼다. 하지만 여성 작가들의 작품 소재가 지극히 일상적인 미시 담론에 한정되어 있다는 일반적인 편견을 깨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에 드러난 일상성은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이며 소외된 삶을 반영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수연이다. 경희대에서 러시아어를 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