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장벽
2358호 | 2014년 13월 12일 발행
민중의 입과 ≪중국의 장벽≫
김창화가 옮긴 막스 프리슈(Max Frisch)의 ≪중국의 장벽(Die Chinesische Mauer)≫
민꿔는 누구인가?
백성의 소리가 이름의 뜻이다.
아무도 그를 보지 못했다.
황제는 용의자를 잡아 심문한다.
그는 자신을 부정한다.
고문이 시작된다.
현대인은 바라만 본다.
폭도가 닥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현대인: 그만하십시오, 각하, 더 이상은 안 됩니다!
나폴레옹: …유럽의 주인은 지금 누군가?
현대인: 각하…!
나폴레옹: 시민이여, 그대는 왜 대답을 하지 않는 거요?
현대인: 각하…. 원자는 쪼개질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 그게 무슨 소리요?
현대인: 대홍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각하가 명령을 내리신다면. 다시 말씀드리면, 이제 우리는 인간이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와 있습니다. 각하, 누가 이 선택을 해야 합니까? 인간 스스로 결정해야 하나요? 아니면 당신이?
나폴레옹: 당신은 민주당인가?
≪중국의 장벽≫, 막스 프리슈 지음, 김창화 옮김, 21∼22쪽
가상현실인가?
요즘 말로 표현하면 그렇다. 다른 시대의 역사 인물들이 만나 다른 관점과 시각을 표현한다. ‘경계를 넘는’ 극작술이다.
누가 등장하는가?
나폴레옹과 진시황제, 빌라도, 브루투스, 펠리페 왕이다. 현재를 대표하는 인물은 ‘현대인’이다.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진시황제가 만리장성 축조 계획을 발표하기 위해 이들을 초대한다. 축제가 벌어지는 한편에선 황제를 반대하는 백성들의 목소리가 높다. 그는 무력으로 목소리를 억압하고 있다.
무력이 목소리를 막아 내는가?
유일한 반대자가 남는다. ‘백성의 목소리’라는 뜻의 ‘민꿔(民口)’다. 그러나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곧 그마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심문이 시작된다.
‘민꿔’는 누구인가?
정체를 밝히기 위한 어떤 질문에도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민꿔가 맞느냐’는 질문에는 세차게 고개만 젓는다. 그는 벙어리다. 공주 미란과 현대인은 그의 무죄를 알아차린다.
심문의 방향은?
끔찍한 고문이 시작된다. 현대인은 지켜만 본다. 무력하다. 미란은 현대인을 비난한다. 폭도가 궁에 들이닥친다. 그 가운데 벙어리의 어머니가 있다. 아들이 바로 ‘민꿔’였다고 거짓말한다.
거짓말의 효과는?
벙어리는 순식간에 반역자에서 영웅이 된다.
‘경계를 넘는 극작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여러 세기에 걸친 인물을 동시에 마주치게 함으로써 희극성을 확보한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면 뭔가 숨겨진 것, 즉 비인간적 지배 방식이 폭로되리라 기대했다.
‘비인간적 지배 방식’이 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곧 대량 살상 무기의 위협이다.
그것이 이 작품의 문제의식인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기술의 시대’의 위협성, 일인 독재 권력에서 발생되는 인류 공멸의 위기를 지적하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다.
브레히트와 뒤렌마트도 다뤘던 주제 아닌가?
그렇다.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에서, 뒤렌마트는 <물리학자들>에서 대량 살상 무기에 의한 인류 멸망을 이야기했다.
프리슈와 그들의 차이는?
브레히트처럼 역사적 인물을 등장시키되 뒤렌마트가 사용한 방법, 곧 현재 사건과 인물로 희극적 세계관을 구축하는 기법을 취했다.
이 번역본의 원전은 1973년 파리에서 출간한 최종본인가?
그렇다. 초판본은 1945년과 1946년 사이에 완성되었고 1946년 취리히에서 초연했다. 최종본이 나오기까지 세 차례 수정을 거쳤다.
세 차례나 수정한 이유는 뭔가?
원자폭탄과 대량 살상이라는 위협 앞에서 지식인이자 시인인 ‘현대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초판본에서는 ‘벙어리’가 지식인이었다. 그는 다가올 ‘위협’을 알고 스스로 진실을 대변할 수 있었다.
최종본에서 현대인은 어떤 모습인가?
독재자와 민중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벙어리’가 부당하게 고문당하는 걸 알면서도 소극적으로 행동한다. 지식인의 비겁함을 보여 준다.
막스 프리슈는 누구인가?
1958년 게오르크 뷔히너상, 1986년 노이슈타트 국제문학상 등을 수상한 스위스 극작가다.
어떻게 살다 갔나?
1911년 5월 취리히 부근 빌더무트에서 태어났다. 1931년부터 3년간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스위스와 독일에서 발행하는 여러 잡지에 여행기, 문학비평, 수필을 기고했다. 1936년 다시 대학에 들어가 건축학을 전공했다. 1959년 아내와 이혼한 뒤로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1991년, 80세에 죽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창화다. 상명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