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질 사선
2425호 | 2015년 1월 29일 발행
이치수가 옮긴 남송의 우국지정
이치수가 옮긴 ≪신기질 사선≫
평생 북쪽을 바라보며
금이 침략해 중원을 빼앗겼다.
평생 변방과 강남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북벌의 과업을 잊지 않았다.
우국의 정으로 사를 썼고 애국사파의 시조가 되었다.
淸平樂
−獨宿博山王氏菴
遶牀飢鼠.
蝙蝠翻燈舞.
屋上松風吹急雨.
破紙窗間自語.
平生塞北江南.
歸來華髮蒼顔.
布被秋宵夢覺,
眼前萬里江山.
청평악
−홀로 박산의 왕씨 초가집에 묵으면서
침상을 맴도는 굶주린 쥐들
박쥐는 날아다니며 등불 앞에서 춤춘다.
지붕 위 소나무 사이로 바람은 급한 빗발 뿌리고
찢어진 창호지는 창문에서 홀로 중얼거린다.
평생토록 북쪽 변방과 강남 땅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니 흰머리 생기고 얼굴엔 노쇠한 빛 가득하네.
베 이불 덮고 가을밤 꿈에서 깨어나니
눈앞에 조국의 만 리 강산 펼쳐져 있네.
≪신기질 사선≫, 이치수 옮김, 84~85쪽
청평악이 무슨 뜻인가?
곡조의 이름일 뿐 별 뜻은 없다. 사를 노래할 때 사용하는 곡조 이름을 사패라 하며 사 내용과는 아무 관련도 없다. 같은 사패로 전혀 다른 사를 여러 편 지을 수도 있다. 이 책에도 <청평악> 사패로 지은 사가 세 편이나 된다.
제목은 없나?
사패 뒤에 부제를 달기도 하고 서문으로 사를 짓게 된 경위나 중심 내용을 밝히기도 한다. 같은 사패의 작품을 구분할 때는 사의 첫 구절을 함께 밝힌다.
사란 무엇인가?
곡조에 맞춰 지어 부르는 ‘가사(歌辭)’다. 시(詩)와 함께 중국 운문 문학을 대표하는 장르다.
언제부터 나타났나?
당대에 시작해 송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수대(隋代) 이래로 중국에 외국 음악이 대량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음악인 연악(燕樂)이 성행했다. 이 새로운 곡조에 사람들이 가사를 지어 불렀다.
누가 지었나?
처음에는 민간에서 유행했다. 점차 문인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새로운 문학 장르로 발전했다.
시와는 무엇이 다른가?
제목을 달지 않고 대신 사패를 쓴다. 악곡 규정에 따라 단락이 나뉘기도 한다. 각 구의 글자 수가 들쭉날쭉해 일정하지 않으며 평측 규정이 복잡하고 엄격하다.
신기질은 누구인가?
송사의 대표 작가다. 1140년에 태어나 1207년 사망했다. 소식과 함께 호방사(豪放詞)의 대가로 불린다.
호방사가 무엇인가?
사는 풍격에 따라 호방사와 완약사(婉約詞)로 나눈다. 호방사는 남성적이고 웅건하며 완약사는 여성적이고 섬세하다. 신기질의 사는 호방사 중에서도 특히 비장함이 두드러진다.
신기질의 비장미는 어디서 비롯한 것인가?
우국(憂國)의 정(情) 때문이다. 그의 사는 애국사(愛國詞), 또는 영웅사(英雄詞)로 불린다. 북벌에 대한 염원과 조국의 현실에 대한 비탄을 드러낸 작품이 많다. 이 때문에 그를 ‘애국사파’의 시조로 꼽기도 한다.
조국의 현실이란?
당시 송나라는 금나라의 침략으로 중원 땅을 빼앗기고 강남으로 쫓겨 왔다. 신기질은 금나라가 통치한 산동성에서 태어나 저항 활동을 하다 23세에 남송으로 내려왔다. 인용시에서 “평생토록 북쪽 변방과 강남 땅 돌아다”녔다고 한 것처럼 죽을 때까지 북벌을 위해 문무 양면에서 노력했다.
그는 애국사만 쓴 것인가?
다양한 내용과 제재를 다뤘다. 산수 경치를 묘사하고 농촌 생활과 풍경을 노래했다. 전통 주제인 남녀 간의 정을 읊은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의 작품에 창화(唱和)하고 다른 사람에게 수증(酬贈)한 것도 있다. 꽃과 달, 바위 등 여러 사물을 노래한 작품도 있다.
표현의 특징은?
산문화 작법을 사용해 표현 수법이 풍부하고 내용과 제재가 폭넓어졌다.
산문화 작법이란?
산문으로 쓰던 내용을 사로 표현하고, 산문의 장법(章法), 구식(句式), 어휘, 표현 수법을 그대로 사에서 사용했다. 문답체를 사용하기도 하고 경서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굴원(屈原)의 <천문(天問)>체를 본떠 쓴 사도 있다.
작품 수는 얼마나 되나?
현전하는 송사 2만여 수 중 629수가 신기질의 작품이다. 그가 누구보다도 사를 좋아하고 여기에 전념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 외에도 시 145수, 산문 17편이 전한다.
후인에 미친 영향은?
남송의 육유(陸游)와 유과(劉過), 유극장(劉克莊) 등이 그의 뒤를 이어 애국사파를 이루었다. 진유숭(陳維崧, 1625∼1682)을 대표로 하는 청대의 양선파(陽羨派)는 신기질의 사를 학습의 전범(典範)으로 삼으며 그의 사를 계승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치수다. 경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