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즈모 시선
2438호 | 2015년 2월 6일 발행
쉬즈모, 꿈속에서 사랑과 자유.
이경하가 옮긴 쉬즈모(徐志摩)의 ≪쉬즈모 시선(徐志摩 詩選)≫
사랑과 자유, 그리고 아름다움
쉬즈모에게는 신앙이 있었다.
매우 단순한 믿음이었다.
사랑과 자유와 아름다움이다.
낭만적 사랑을 자신의 이상으로 삼았고
한 여인을 좇아 사회를 버렸으나
사랑은 실패했고 일상은 독사가 되었다.
我不知道風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是在哪一個方向吹 ―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我是在夢中, 꿈속에서,
在夢的輕波裏依洄。 꿈의 찰랑이는 물결 속에 휘돌아 흐릅니다.
我不知道風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是在哪一個方向吹 ―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
我是在夢中, 꿈속에서,
她的溫存, 我的迷醉。 그녀의 부드러움에, 도취되었습니다.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쉬즈모 시선≫, 쉬즈모 지음, 이경하 옮김, 113~114쪽
쉬즈모는 어떤 시인인가?
사랑과 이별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한 중국 현대 시인으로 지목된다. 젊은 독자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1931년 비행기 사고로 급사한 것도 그의 삶을 드라마틱하게 보이는 데 일조했다. 1999년에는 그의 사랑과 시를 토대로 타이완에서 <세상의 사월 하늘(人間四月天)>이란 드라마가 만들어져 방영되었다. 쉬즈모의 시는 1980년대 이후 중국에서 대중가요로 재탄생해 사랑받았다.
쉬즈모 시의 생명력은 어디서 오는가?
이데올로기는 시대에 따라 바뀌지만 사랑의 감정과 이별의 아픔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는 풍부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수성으로 삶의 깊은 곳을 볼 수 있었다.
위에 인용한 <“나는 모릅니다.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루샤오만과의 연애에서 느낀 아픔이다. 그녀는 당시 쉬즈모의 선배 부인이었다. 지인과 가족들의 비난과 반대가 터져나왔고 사회적 파장도 컸다.
그래서 결혼했나?
루샤오만이 이혼하고 쉬즈모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 뒤 두 사람의 생활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쉬즈모의 부모는 아들에게 실망해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 그림과 춤에 뛰어났던 루샤오만은 마작과 아편, 사치에 빠져들었다. 쉬즈모는 생활을 “독사”로 묘사한 시 <생활(生活)>을 쓴다. 이상과 희망이 좌절된 상황을 전하는 시 여러 편을 짓는다.
인생의 좌절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그의 작품 세계는 192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초기 작품에서는 이상 추구에 대한 열정과 희망이 넘쳤다. 하지만 현실 세계가 너무 참혹했기에 그의 이상주의는 실패로 귀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상은 무엇이었나?
량스추(梁實秋)에 따르면 그에게는 ‘단순 신앙’이 있었다. 사랑과 자유,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조건이 함께 섞인 하나의 이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낭만적 사랑’이었다.
낭만적 사랑이란 무엇인가?
한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추구였다. 그의 삶과 인격은 사랑의 완벽한 구현체였다. 예술 자체의 순수성을 옹호했다. 예술이 사상이나 이념에 지배되는 것을 거부했다.
완전한 이상주의자였다는 말인가?
현실에 대한 감각이 살아 있었다. 문학이 삶과 유리될 수 없다고 여겼다. 삶과 예술 사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 <빌어먹어도 싸지>에서는 빈부 격차를 고민하고 <독약>에서는 도시 문명에 대해 성찰한다.
현대 중국은 쉬즈모를 어떻게 수용했는가?
대중은 열렬히 호응했으나 좌익 작가 진영은 그렇지 않았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선 뒤부터 쉬즈모는 ‘부르주아 시인’으로 낙인찍혔다. 1978년 개혁개방 이후에 다시 살아났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경하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