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빙실문집 천줄읽기
2443호 | 2015년 2월 10일 발행
망하는 나라의 여섯 방관자
최형욱이 옮긴 량치차오(梁啓超)의 ≪음빙실문집(飮冰室文集) 천줄읽기≫
망국과 여섯 방관자
비웃고 욕만 한다. 아무 생각이 없다.
내 것만 살피면서 그저 죽기만 기다린다.
별볼일없는 내가 뭘 하겠냐고 반문하면서 마냥 때만 기다린다.
국민이 이러니 나라가 망했다.
“저들은 수구(守舊)를 욕하고 또 유신(維新)을 욕한다. 소인배를 욕하고 또 군자도 욕한다. 노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무기력이 이미 깊음을 욕하고 청년들에 대해서는 경솔하게 일을 많이 벌인다고 욕한다. 일이 성공하면 보잘것없는 놈이 요행히 공을 세웠다고 말하고 일이 실패하면 내가 진즉에 알았다고 말한다. 저들은 늘 지적할 수 없는 입장에 스스로 서 있으니 무엇 때문인가? 일을 하지 않는 까닭에 지적할 수 없고 방관하고 있으니 지적할 수 없다. 자기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일을 하는 사람 뒤에 서서 자기와 다른 이를 배척해 비웃고 공격한다. 이것은 가장 교활한 술수로 용기 있는 자로 하여금 기가 꺾이게 하고 겁쟁이로 하여금 절망하게 한다. 단지 사람들로 하여금 절망하게 하고 기가 꺾이게 할 뿐 아니라,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도 저들은 비웃고 욕하고 가로막는다. 이미 이루어진 일에 대해서도 저들은 비웃고 욕하고 망가뜨린다. 그러므로 저들은 세상의 음험한 자들이다.”
<방관자를 꾸짖노라>에서, ≪음빙실문집≫, 량치차오 지음, 최형욱 옮김, 62쪽
저들이 누구인가?
소매파(笑罵派), 곧 비웃고 욕이나 하는 무리다. 량치차오는 당시 중국의 4억 인구를 모두 방관자라고 비난했다. 방관자들을 소매파, 혼돈파, 위아파(爲我派), 오호파(嗚呼派), 포기파, 대시파(待時派)로 나눴다.
소매파는 무엇이 문제인가?
스스로 방관자일 뿐 아니라 비웃고 욕함으로써 남들까지 방관자로 만든다.
혼돈파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자다. 무엇이 근심스러운지도 모르고 무엇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인간 세상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배고프면 먹고 배부르면 놀고 피곤하면 자고 깨면 일어난다.
위아파는?
속담에서 말하는, 벼락이 쳐도 여전히 자기 보따리만 챙기는 사람들이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자기 이익이 없다면 방관한다.
오호파는 어떤가?
탄식하며 한숨 쉬고, 통곡하며 눈물 흘리는 것을 유일무이한 사업으로 삼는 자들이다. 입으로는 나라를 걱정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라는 것이 입버릇이요, “팔짱 끼고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비책이다.
포기파는 누구인가?
스스로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재주 있고 지혜로운 사람도 많고 영웅호걸도 많으니 나 하나쯤은 문제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다.
대시파는 때를 기다리는가?
그렇다. 그러나 때만 기다릴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기다리는 것이 어찌 방관인가?
일하는 사람은 일할 수 없는 때가 없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일해야 할 때가 없다. 뜻있는 사람은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때를 만든다.
방관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뭔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국가의 위기 앞에 국민 모두가 주인의 책임을 포기하고 손님이 되면 중국은 주인 없는 나라가 된다. 망한다.
당시 국가 위기의 요체가 무엇이었나?
안으로는 봉건 체제가 흔들리고 밖으로는 서구 문물이 들이닥쳤다. 청일전쟁에 졌다. 양무운동과 중체서용으로는 부족했다.
량치차오가 찾은 대안은?
근본 개혁이다. 1898년 스승 캉유웨이와 변법유신을 주창했다.
변법유신의 내용은?
사회 진화론·민족주의·계몽주의를 비롯한 근대 서구 사상을 적극 수용해 개혁 운동의 뿌리로 삼고 봉건 왕조의 법제와 사회를 개량하는 것이다.
서양을 따르자는 것인가?
서구 제국을 모델로 과학 기술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모두 개혁해 부강한 민족 국가를 세우려 했다.
성공했나?
실패했다. 무술정변이 일어났고 그는 일본으로 망명했다.
일본에선 뭘 했나?
학술·사상과 문화 전반의 계몽 운동을 펼쳤다.
량치차오는 누구인가?
19세기 말 중국의 대표적인 유신파 계몽주의 지식인이다. 1873년에 태어나 1929년에 죽었다. 자(字)가 탁여(卓如), 호(號)는 임공(任公)이며, 필명(筆名)은 음빙실주인(飮冰室主人)·음빙자(飮冰子)·만수실주인(曼殊室主人)·신민자(新民子)·소년중국지소년(少年中國之少年)을 썼다.
당신은 이 책에 어떤 글을 실었나?
≪음빙실문집≫에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을 골라 맛볼 수 있게 했다. 량치차오가 특히 뛰어났던 정론문의 대표작 <변법에 대해 두루 논의함(變法通義)>·<신민설(新民說)>·<중국이 허약해진 근원을 논함(中國積弱溯源論)>·<남의 나라를 멸망시키는 새로운 법(滅國新法論)>·<과도기론(過渡時代論)>을 실었고 조선을 반면교사로 삼은 <조선 멸망의 원인(朝鮮滅亡之原因)>도 소개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형욱이다. 한양대 중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