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471호 | 2015년 3월 2일 발행
고대 중국, 핫 휴먼 스토리
김장환이 옮긴 은운(殷芸)의 ≪소설(小說)≫
지인소설, 소설 같은 역사
사관이 기록하기엔 위험부담이 큰 이야기들.
은운은 고대 중국을 쥐락펴락하던 명사들의 풍모와 언행과 일화를 전한다.
진시황부터 한고조, 주왕, 개자추, 노자, 공자, 제갈량까지, 한자리에서 만나 보시라.
동방삭이 대답했다.
“신이 듣자오니 현자는 세상에 머물 때 세상의 추이(推移)와 함께하며 외물(外物)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하옵니다. 저들은 어찌하여 주(周)나라의 조당(朝堂)에 올라 주나라의 술을 마시면서 마치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오리처럼 주나라 사람들과 함께 노닐지 않았던 것인지요? 천자께서 거처하시는 도성에서도 은거할 수 있는데, 어찌하여 스스로 수양산(首陽山)에서 고통을 겪은 것인지요?”
朔對曰: “臣聞賢者居世, 與時推移, 不凝滯於物. 彼何不升其堂, 飮其漿, 泛泛如水中之鳧, 與彼俱遊? 天子轂下, 可以隱居, 何自苦於首陽乎?”
≪소설≫, 은운 지음, 김장환 옮김, 117쪽
수양산이라면, ‘저들’은 백이와 숙제를 가리키는가?
그렇다. 동방삭은 그들이 현실을 멀리했다고 비판한다. 시대와 관념의 차이다.
시대와 관념이 어떻게 달랐는가?
동방삭은 전한(前漢) 시대 사람이다. 당대 문사들은 현실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중시했다. 은일을 숭상하는 도가 사상이 유행하던 진(晉)나라 때의 사회 풍조와는 크게 다르다.
≪소설≫은 소설인가?
위진남북조 시대에 유행한 지인소설(志人小說)이다. 문인 명사의 풍모·언행·일화를 기록한 글이다. 길이가 짧고 이야기 구조가 간단하며 구체적 묘사가 부족해 소설의 초기 형태로 분류한다.
역사 기록에 가깝다는 말인가?
역사라고 하기에는 이치에 맞지 않아 사관이 기록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은 글이다. 탄생 배경도 이와 관련된다.
≪소설≫의 탄생 배경이 뭔가?
남조 양(梁)나라의 무제가 통사를 찬할 때였다. 통사에 실을 수 없는 내용을 따로 남기기 위해 은운에게 칙명을 내렸다. 은운은 사서의 기술 형식을 따라 제왕의 일을 맨 처음 싣고, 다른 인물 고사를 시대순으로 배열해 ≪소설≫을 완성했다.
은운이 누군가?
500년을 전후로 살았던 양나라 문사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소한 예절에 구애받지 않았으나 사람들과 함부로 사귀지 않아서 문하에는 잡객(雜客)이 없었다. 학문에 힘써 많은 책을 두루 섭렵했다. 여러 관직을 지냈는데 515년 안우장사(安右長史)가 되었을 때 칙명을 받아 ≪소설≫을 지었다.
그는 이 책에 무엇을 기록했는가?
진(秦)·한(漢)·위(魏)·진(晉)·송(宋)의 제왕, 주진(周秦)에서 남조 송(宋)·제(齊)까지의 인물이다. 예를 들면, 진시황, 한고조, 주왕, 개자추, 노자, 공자, 제갈량 등이다. 그 밖에 민간 전설과 산천 풍물, 심지어 지괴 고사까지 적었다.
이야기 재료는 어디서 가져왔나?
루쉰(魯迅)은 “여러 전적에서 채록했다(采集群書)”고 썼다. 지인소설과 지괴소설을 가리지 않고 전대의 책에서 채록했고 은운이 윤색하기도 했다.
1500여 년이 흐른 오늘, 이 책의 가치는 뭔가?
고사마다 인용한 책 제목을 밝혔다. 그 책이 전하지 않는 것도 있고, 전한다 하더라도 해당 고사가 실려 있지 않는 경우도 있어 자료 가치가 높다.
책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가?
30권을 지었으나 10권만 남아 전하다가 명(明)나라 초에 망실된 것으로 보인다. 유문(遺文)이 ≪태평광기(太平廣記)≫·≪속담조(續談助)≫·≪감주집(紺珠集)≫·≪유설(類說)≫·≪설부(說郛)≫ 등에 주로 실려 있다. 이를 모아 기록한 책이 여럿 있다.
이 책 ≪소설≫은 무엇을 옮긴 것인가?
저우렁자(周楞伽)가 집주해 1984년 출간한 ≪은운소설(殷芸小說)≫이다. 집록된 고사 163조 전체를 우리말로 옮기고 주석을 달았으며 고사마다 제목을 붙였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장환이다.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