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아
2479호 | 2015년 3월 6일 발행
이봉지가 옮긴 볼테르의 ≪중국 고아≫
이봉지가 옮긴 볼테르(Voltaire)의 ≪중국 고아(Orphelin de la Chine)≫
사랑보다 큰 사랑
칭기즈칸은 이다메를 사랑했다.
이다메는 잠티와 결혼한다.
부부는 죽음 앞에 선다.
남편을 배신하면 부부는 산다.
그러나 사랑을 선택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큰 사랑은 작은 사랑을 이긴다.
잠티: 아! 나와 함께 웁시다.
또 나와 함께 황자를 구할 방도를 생각해 봅시다.
이다메: 내 아들을 죽이고!
잠티: 얄궂은 운명이오.
하지만 당신도 어미이기 이전에 백성이잖소.
이다메: 당신은 천륜도 모르시나요?
잠티: 그럴 리가 있겠소. 하지만 도의가 먼저요.
내가 낳은 미천한 아기보다 주군의 혈육이 먼저요.
불쌍한 황제의 혈육을 지킬 의무가 내게 있소.
이다메: 아니요, 저는 그 같은 도의는 모릅니다.
성은 불타고, 왕좌는 부서졌습니다.
저 역시 주군께 닥친 끔찍한 불행 때문에 울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철천지원수 사이라고
놈들이 원하지도 않는 우리 아들 목숨을 바치려 하십니까?
≪중국 고아≫,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34∼35쪽
볼테르가 중국 고아를 주제로 희곡을 썼는가?
그렇다. 볼테르는 1755년 파리에서 출판한 <중국 고아>의 서문에서 “얼마 전, 뒤알드 신부가 출판한 선집에 포함된 프레메르 신부 번역의 중국 비극인 <조씨 고아>를 읽다가 이 비극을 착상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기군상의 <조씨 고아>가 원작인가?
그렇게 봐야 할 것이다. ≪사기(史記)≫에 나오는 춘추(春秋) 진(晉)나라 영공 때의 간신 도안고와 충신 조순에 관한 비극적인 이야기를 극화한 것이다.
원작을 어떻게 변주했는가?
원작에는 없는 ‘이다메’를 등장시킨다. 은인의 자식을 희생시킨다는 원작에 비해 자기 자식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상황 설정은 작품의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주제의 변주는 없는가?
이다메를 사랑하는 칭기즈칸을 통해 남녀의 사랑과 지배자의 덕목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도입했다.
작품의 시대 배경은 어디로 이동하는가?
역사 배경이 칭기즈칸 생존 당시인 13세기 초로 이동되었다. 특히 이 작품에는 한국에 관한 언급이 등장한다.
한국이라면 고려를 말하나?
그렇다. 고려군과 고려가 칭기즈칸이라는 막강한 세력에 맞서 황자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원군이자 피난처로 제시된다. 하지만 무대에 고려인은 등장하지는 않는다.
볼테르가 어디서 고려에 대한 정보를 얻었는가?
분명치 않다.
위 인용문에서 잠티가 자식을 죽이려는 이유가 뭔가?
황제와의 약속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공격으로 나라가 패망했다. 황족들도 죽임을 당했다. 황제는 죽기 전에 잠티에게 자신의 막내아들 목숨만이라도 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잠티는 어떻게 할 셈인가?
자기 아들과 황자를 바꿀 생각이다. 고려에서 원군이 오면 그편에 황자를 맡기려 한다. 하인을 시켜 아들을 데려오게 한다.
잠티의 부인, 이다메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다메는 아들이 처형되려는 순간에 나타나 정복자 칭기즈칸을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 아이가 황자가 아니라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그라면 죄 없는 아이를 지켜 줄 거라고 믿는다.
그녀가 칭기스칸을 그렇게 믿는 이유가 뭔가?
지금은 이름만 들어도 산천초목이 벌벌 떠는 왕 중의 왕 칭기즈칸이지만 그녀는 그의 청년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용맹함이 드러난 칭기즈칸의 얼굴에서 위대함을 보았다. 이민족인 그를 백성으로 받아들여 교화했다면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인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젊은 시절, 칭기즈칸은 이다메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했다. 이다메의 부모는 그가 이민족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다. 그 뒤 이다메는 유학자인 잠티와 혼인했다.
칭기즈칸의 판단은?
그녀에게 선택권을 준다. 자신을 선택하든지 잠티와 황자, 아들까지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든지.
이다메의 선택은?
충절을 지키고 황자도 살리기로 한다. 감시가 소홀한 틈에 숨겨 두었던 황자를 고려군이 마련한 비밀 통로로 빼돌리려다 발각된다. 칭기즈칸은 호의를 배신한 이다메에게 분노한다.
그들은 모두 죽는가?
잠티는 사형, 그러나 이다메는 살리려 한다. 이다메가 잠티와 이혼하고 자신의 아내가 되면 잠티도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이다메는 마지막으로 남편을 만나게 해 달라고 한다.
이별인가?
아니다. 남편과 함께 죽으려는 거다. 잠티가 단도로 이다메를 찌르려는 순간 칭기즈칸이 나타나 만류한다. 부부의 충절은 그를 감동시키고 모두는 죽음을 벗어난다. 칭기스칸은 법과 도덕으로 백성을 다스리겠다고 다짐한다.
볼테르가 희곡도 썼나?
이 작품 외에도 <오이디푸스>, <자이르>, <이렌> 등의 희곡을 썼다. 그의 마지막 비극 작품인 <이렌>은 코미디 프랑세즈 극장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어떻게 살다 갔나?
1694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볼테르’는 필명이다. 영국 자유주의를 소개하는 도시에 프랑스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철학 편지≫를 출판해 프랑스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750년 파리를 떠난 뒤 1758년에는 스위스 국경 근처에 있는 프랑스 영토인 페르네에 정착해 20년간 농사를 짓고 주민들을 돌보며 생활했다. 1778년 파리로 돌아왔으나 무리한 활동 때문에 건강을 해쳐 그해 5월 30일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봉지다. 배재대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