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 시선
2482호 | 2015년 3월 9일 발행
토머스 하디의 시, 사라진 것들의 귀환
윤명옥이 옮긴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하디 시선(Selected Poems of Thomas Hardy)≫
사라진 것들의 귀환
유한의 존재는 죽음으로 사라지고 남은 존재는 망각을 얻는다.
흔적, 조상, 유전, 기념비 같은 것들. 죽은 자들은 갇혀 있지 않다.
추억과 회상은 그들을 귀환시킨다.
그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 나의 86번째 생일의 회고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기약하지는 못한단다,
얘야, 너무 많은 것을 기약하지는 못해,
그저 중간 색조의 우연 같은 정도지.”
그대는 나 같은 성향의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지.
그대의 신용을 지키는 현명한 경고였지!
그 경고를 받아들인 덕택에 나는
해마다 할당되는 고통과 아픔을
견딜 수 있었지.
≪하디 시선≫, 토머스 하디 지음, 윤명옥 옮김, 148~149쪽
‘해마다 할당되는 고통과 아픔’이 뭔가?
시인의 개인사다. 하디는 소설가로 명망을 날리다가 ≪무명의 주드≫가 신랄한 악평을 받자 낙담한다. 소설을 단념하고 58세부터는 시 쓰기에 몰두했다.
고통과 아픔은 어떤 시를 만드나?
염세주의가 보인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슬프고 우울하며 비극적이고 운명적인 분위기가 흐른다.
운명적인 분위기란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의 조그마한 행위 뒤에는 이해할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 또는 절대자가 있다는 성찰을 말한다. 그것이 무관심한 우주 속의 인간 상황이다. 하디는 그것을 적나라하게 응시한다.
응시하여 무엇을 보았는가?
우주를 여러 가닥을 섞어 짠 거대한 조직망으로 묘사한다. 직물이나 그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그 속에 인간 드라마를 설정하고 인간이 가진 순수한 요소를 그린다. 운명의 내재 의지를 본 것이다.
운명의 내재 의지란 어떤 모습인가?
만물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초도덕적인 의지로 나타난다.
운명은 그의 시에서 어떤 모습인가?
일화들, 재난이나 아이러니를 조명한다. 다양성과 모순을 지닌 다채로운 언어와 운율이 매력적으로 통합된다. 인간의 슬픔이나 상실, 좌절을 특수한 상황으로 제시하면서 개념의 일반성을 획득한다.
표현의 태도는 어떤가?
조심스럽고 진솔하다. 때로는 독설적이고 냉소적이다.
하디 시의 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상상력의 구심으로 기억을 활용한다. 기억은 내면의 언어가 풀려나올 수 있도록 심성을 자극하는 원동력이다. 기억은 죽음과 연결된다. 유한의 존재는 죽음으로 사라지고 남은 존재는 망각을 얻는다.
기억과 망각은 어떤 관계인가?
망각의 세계로부터 기억이 일어난다. 하디는 이런 기억들, 즉 현존하는 사물에 남겨진 죽은 자의 흔적, 조상, 유전, 기념비 같은 것에 주목한다. 죽은 자들은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추억과 회상에 의해 귀환하는 존재다.
그는 무엇을 추억하나?
죽은 첫째 부인 에마다. 생전에는 소원했지만 그녀가 갑자기 죽자 하디는 시 창작의 르네상스를 맞는다. 회한과 후회로 충만한 연애시를 쓰기 시작한다. 죽음이 불멸하는 영원의 형식으로 승화된다.
하디 시의 특징이 뭔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자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평범한 개인사에서 인간의 가장 감동적인 모습이 발견되지 않는가? 이것이 하디 시의 개성이고 매력이다.
그는 어떤 시인이었나?
≪더버빌가의 테스≫, ≪무명의 주드≫ 같은 소설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시인으로서는 과소평가되다가 최근에 와서야 그 위상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생전에 1000편도 넘는 많은 시를 남겼다. 소박하고 겸손한 정신으로 사소한 것을 면밀히 검토하는 한편, 우주적인 규모로 사색하며 양면적인 감수성을 드러내기도 하는 현대적인 시인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명옥이다. 인천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