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노 신이치 단편집
2510호 | 2015년 3월 26일 발행
이상이 말한 천재는 누구였을까?
김명주가 옮긴 마키노 신이치의 ≪마키노 신이치 단편집≫
박제된 천재의 이름
1936년 <날개>가 발표된다.
박제된 천재를 아느냐고 묻는다.
누구였을까, 그는?
그 몇 달 전에 마키노가 죽었다.
이상은 이렇게 썼다.
“마키노가 죽었다고 그리오. 참 부럽소.”
“언제부턴가, 나는 자신을 세 개의 개성으로 나누어 그 인물들을 가공의 세계에서 활동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고는 얼마간 휴식을 취했다. 아니 휴식을 취했다기보다, 망상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그 부칠 데 없는 정열 때문에 이 몸은 고무풍선처럼 파열했을 것이 틀림없다.”
<엘리베이터와 달빛>, ≪마키노 신이치 단편집≫, 마키노 신이치 지음, 김명주 옮김, 171쪽
세 인물은 누구인가?
A는 태평스러운 예술가다. B는 스토아학파를 신봉하는 이성적 인물이다. C는 같은 실험을 반복하지만 위대한 발견을 하지 못해 서글퍼하는 과학자다.
셋의 관계는?
늘 티격태격한다.
‘나’는 누구인가?
다중 인격을 가진 인물이다. 세 가지 정체성이 공존한다. 작가 마키노 신이치다.
마키노 신이치가 누구인가?
1920∼1930년대 활동한 일본 작가다. 17년이라는 짧은 작가 생활 동안 단편 194편(미정고 4편 포함)을 남겼다. 그의 소설은 ‘변형 사소설(私小說)’로 분류된다.
‘변형 사소설’이 뭔가?
‘사소설’은 작가가 체험한 것만 쓰는 것을 말한다. ‘변형 사소설’은 다소 허구가 들어갔다는 말이다.
이 책, ≪마키노 신이치 단편집≫에 어떤 작품을 실었나?
마키노 문학 전기·중기·후기의 대표작 여섯 편이다. 작가 자신과 가족사를 그렸다. 죽음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젊은 작가의 내면 풍경을 담은 애처로운 파노라마다.
내면 풍경은 어떻게 흘러가나?
전기는 신변잡기의 시기다. <손톱>, <아비를 파는 자식>, <악의 동의어>가 있다. ‘육친 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중기에는 <엘리베이터와 달빛>처럼 밝은 환상성의 세계를 그렸다. 만년에는 다시 사소설 작풍으로 회귀한다. 대신 신경증적 색채가 강해진다. <박제>가 대표작이다.
작품에 나타나는 그의 표정은?
육친 혐오, 위악성과 자조성, 광기의 모습이다. 창백한 자의식에서 반사되는 신경증적 양상과 비애감이 그의 문학 미학의 본질이다.
가족사는?
두 살도 채 안 된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 두고 아버지는 미국으로 가 버렸다.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고 훈육이 엄했다. 아버지를 닮아 틀에 매이기 싫어하던 마키노의 유년 시절에 어머니는 큰 상처를 남겼다.
소설의 형식은 어떤가?
문장이 아주 독특하다. 난해한 한자를 자의적으로 운용하며, 영어를 중심으로 한 외래어를 멋이라도 부리듯이 남용한다.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당대 문단의 특징이지만 그는 특히 강했다. 내적 독백풍의 급박한 서술 전환도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문단의 평가는?
자연주의의 대가였던 시마자키 도손이 그의 첫 작품 <손톱>(1919)을 극찬한다. 미시마 유키오는 그의 본질을 직관했다. “일본인으로서 일본 풍토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 이것을 서구적 교양으로 치환해 바라보고 서구적 환상으로 장식해 (…) 신비한 지적 감각 체험에 독자를 이끌고 가는 하이칼라의 작가”라고 평했다.
당신이 마키노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이상이 그를 문학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이 그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육친 혐오나 환상성, 신경증의 양상이 서로 비슷하다. 이상의 어두운 내면 풍경과 예민하게 얽혀 있는 신경 분포, 분열하는 듯한 감각적 문체가 마키노 문학에서 고스란히 발견된다.
연관의 증거는?
마키노는 예술과 생활 사이에 끼여 불안과 공포로 신경증을 앓다가 1936년 자살했다. 식민지 조선의 이상은 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몇 개월 후에 <날개>를 발표했다. 이상의 <날개> 속 “박제된 천재를 아시오!”의 ‘천재’는 누구일까? 과연 정설처럼 ‘아쿠타가와가 맞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정작 이상은 뭐라고 말했는가?
1936년 말 김기림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것은 참 濟度할 수 없는 悲劇이오! 芥川나 牧野 같은 사람들이 맛보았을 성싶은 最後한 刹那의 心境은 나 亦 어느 瞬間 電光같이 짧게 그러나 참 똑똑하게 맛보는 것이 이즈음 한두 번이 아니오.” 윤태영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마키노가 죽었다고 그리오. 참 부럽소.”
마키노와 이상의 공통점은?
예술을 뜨겁게 열망했지만 생활에는 무력했다. 생전에 삶도 작품도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명주다. 경상대학교 일어교육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