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연
2517호 | 2015년 3월 31일 발행
이종훈 교수의 초대, 모두 함께 마시는 자리.
이종훈이 옮긴 플라톤(Platon)의 ≪향연(Symposium)≫
인간의 길
제우스가 그를 반쪽으로 갈라 버린 이후 에로스는 그가 잃은 나머지 반쪽을 찾는다.
낮은 밤을 찾고 육체는 정신을 찾고 미움은 사랑을 찾는다.
그 자체로 완전한 이데아는 언제나 불완전한 에로스에 의해서만 인간의 것이 된다.
“그 자신이 혹은 지도자가 인도해 사랑의 신비에 올바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은 이런 것입니다. 즉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에서 시작해 저 아름다움 자체를 향해 사다리를 타고 계속 올라가듯, 하나의 아름다운 육체로부터 둘의 아름다운 육체로, 모든 아름다운 육체로, 또 아름다운 행동으로, 이어서 아름다운 학문으로, 그리고 아름다움 자체를 인식해, 결국 아름다움 자체의 본성을 직관하게 됩니다.”
≪향연≫, 플라톤 지음, 이종훈 옮김, 99쪽
지금 누가 말하고 있나?
소크라테스다.
아름다움 자체의 본성이란 뭘 말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고, 순수하며, 관점·시간·장소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것, 곧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가리킨다.
인간이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에로스의 사다리’를 이용하면 가능하다.
에로스의 사다리는 어떻게 오르는가?
우선 아름다운 육체 하나를 사랑하라. 온전히 사랑한다면 한 육체의 아름다움은 다른 육체의 아름다움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아름다운 육체를 사랑하게 된 사람은 어느 한 육체만 격렬하게 사랑하는 걸 하찮게 여기게 된다. 그러고 나면 제각기 다른 모든 육체의 아름다움에 빠짐없이 존재하는 것, 곧 영혼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된다. 영혼의 아름다움을 만나게 되면 육체의 아름다움보다 이것이 더욱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인간은 육체에서 정신으로, 개별에서 보편으로 올라간다. 인간이 거쳐 가는 사랑의 단계, 곧 에로스의 사다리를 오르면 그곳에서 아름다움 그 자체, 곧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만나게 된다.
이런 방법을 누가 알아낸 것인가?
만티네이아의 디오티마다. 소크라테스에게 사랑, 곧 에로스의 모든 것을 가르쳐 준 여인이다. 그는 그녀와 나눈 대화를 향연에 참석한 자들에게 들려준다.
누가 그곳에 있었는가?
소크라테스의 제자 파이드로스, 수사학자 파우사니아스, 의사 에릭시마코스,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비극 작가 아가톤, 소크라테스, 뒤늦게 등장한 알키비아데스 등이다.
왜 그곳에 있는가?
아가톤이 비극 경연 대회에서 우승했다. 한턱내려고 향연, 곧 symposium, 함께(sym) 먹고 마시는(posium) 잔치를 열었다. 그러나 모두들 전날 과음했기 때문에 술을 마다한다.
잔칫집에서 맨 정신에 그들은 무엇을 하는가?
에릭시마코스는 주제를 정해 이야기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파이드로스가 자신에게 한 말을 전한다. “시인들이 많은 신들을 위해 찬가나 송가를 짓지만, 그토록 오래된 위대한 사랑의 신인 에로스(Eros)에 대해서는 누구도 찬가를 짓지 않았다는 건 대체 있을 법한 일인가!” 파이드로스부터 에로스를 찬양하기 시작한다.
파이드로스의 에로스 찬양은?
출생과 업적을 찬양한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고, 그다음 가이아와 에로스가 생겼으므로 에로스야말로 가장 오래된 신이다. 또한 인간이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길잡이이자 원동력이다.
에로스의 부모는 누구인가?
소크라테스는 에로스가 가난의 신 페니아와 풍요의 신 포로스의 자식이라고 말한다.
그가 인간의 길잡이라는 주장은 옳은가?
파우사니아스가 반박한다.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천상의 에로스와 추한 지상의 에로스를 구별하며 천상의 에로스만을 칭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의를 에릭시마코스가 발전시킨다. 에로스는 의술·음악·요리·농사·종교의식처럼 대립 요소를 조화시키는 우주론적 존재임을 설명한다.
에릭시마코스의 설명은 타당한가?
아리스토파네스는 그가 에로스의 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에로스는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는 위대한 힘이라고 소개한다.
에로스가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는가?
아주 먼 옛날 인간의 성은 세 가지였다. 남성·남성, 여성·여성, 남성·여성이 한 몸이었다. 둥근 목 위에 똑같이 생긴 얼굴이 반대 방향으로 둘, 팔다리도 넷씩 있었다. 그들이 강력한 힘을 갖고 신들을 위협하자 제우스는 그들을 둘로 나눴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 상태대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자신의 반편을 항상 그리워한다. 인간의 반편을 만나게 해 주는 신이 바로 에로스라는 설명이다.
주최자 아가톤은 무엇을 이야기하나?
에로스의 아름다움과 덕을 이야기한다. 에로스는 언제나 젊고 부드러우며 유연하기 때문에 아름답다. 정의롭고 절제심이 많으며 용감한 신조차 장악했기 때문에 덕이 있다. 누구나 시인으로 만들며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고 인간을 아름답고 훌륭하게 이끈다.
에로스가 그렇게 완벽한 신이었나?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주장을 비판하고 교정한다. 그에게 질문을 던져 에로스가 ‘자기에게 없는 어떤 것에 대한 사랑’이라는 전제에 동의를 얻는다. 에로스는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아름다움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아름답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에로스가 추하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주장인가?
아름답지 않다고 반드시 추한 것은 아니다. 에로스는 미와 추, 풍요와 가난, 지혜와 무지, 불사(不死)와 가사(可死) 사이에 존재한다. 디오티마는 “다이몬(daimon)”이라고 정의했다.
다이몬이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이다. 죽지 않는 신적인 것과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적인 것의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 불멸성에 대한 에로스의 갈망이 인간에게 전해져 출산과 교육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영원히 살기를 바란다. 자신의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을 낳고 훌륭하게 키우며, 사랑하는 이를 교육한다.
소크라테스의 에로스 찬미는 어떻게 끝나는가?
에로스의 사다리를 이야기한 뒤 인간이 미와 덕을 얻는 데 에로스보다 더 훌륭한 안내자는 없다고 결론짓는다.
≪향연≫은 어떤 책인가?
≪국가≫와 더불어 플라톤의 가장 탁월한 작품이다. 진·선·미의 인간이 인간다움을 깨닫고 실현할 수 있는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우리를 그 길로 강력하게 이끈다.
플라톤 철학에서 에로스는 무엇인가?
창조하는 열정이다. 에로스가 없는 이데아는 공허한 화석에 지나지 않는다. 에로스 자체는 맹목 충동이다. 그러나 지성이 올바른 목표, 곧 이데아를 제시하면 에로스의 충동이 그것을 찾는다. 이처럼 인간을 이데아로 이끄는 에로스가 있기 때문에 플라톤의 철학은 실천의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무엇을 어떻게 옮겼나?
1978년 프린스턴대학 출판사에서 나온 ≪플라톤 선집≫과 1971년 시카고대학 출판사에서 나온 ≪플라톤의 대화편≫을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책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구어체로 옮겼다. “말했다”, “대답했다” 등 전달하는 방식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대화의 생생함을 드러내기 위해 직접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바꾸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종훈이다. 춘천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