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씨남정기 천줄읽기
2521호 | 2015년 4월 2일 발행
사씨남정기에 담긴 김만중의 전략
이복규가 옮긴 김만중의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조선 소설의 전략
김만중은 당대의 거물 지식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소설을, 그것도 국문으로 지었다.
삼강과 오륜을 알지만 인간은 지식으로는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흔드는, 소설이라야 공감과 의지를 부를 수 있었다.
사씨는 붓을 들어 정자 기둥 위에 크게 글씨를 썼다.
‘모년 모월 모일, 사씨정옥투수사(謝氏貞玉投水死).’
이윽고 붓을 던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푸른 하늘이여! 어찌하여 나로 하여금 이렇게 혹독한 지경에 이르게 하시는가? 옛사람이 이른 바 복선화음(福善禍淫)이라는 말도 부질없는 소리가 아닌가?”
≪사씨남정기≫, 김만중 지음, 이복규 옮김, 135∼136쪽
죽으려 하는가?
그렇다. 남편 유 한림의 첩 교씨의 모함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남편의 선산이 있는 곳으로 갔으나 그곳에서도 교씨의 흉계에 휘말린다. 결국 자살을 마음먹고 물에 몸을 던지려는 순간이다.
사씨는 어쩌다 교씨를 보게 되는가?
유 한림 부부가 성혼한 지 10년 가까이 되도록 자녀가 없었다. 사씨는 체질이 허약해 자녀를 생육할 수 없다 생각한다. 매파를 통해 교씨를 소실로 들인다.
교씨는 어떤 인물인가?
“자태가 화려하고 행동이 경첩해 마치 해당화 한 가지가 이슬을 머금은 채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다. 유 한림의 고모인 두 부인은 절색가인인 교씨의 성행이 착하지 않아 보여 걱정한다.
갈등의 씨앗은?
처음에 교씨는 사씨에게 순종한다. 그러다 사씨에게 태기가 있자 상황이 달라진다. 집안 모두 기뻐하나 교씨만은 홀로 앙앙거린다. 적통 아들이 나오면 자신과 아들 장주의 존재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교씨의 음해는 어떻게 진행되나?
낙태하는 약을 몰래 먹인다. 사씨가 토해 버려 실패했다. 사 부인의 필적으로 자신과 아들 장주를 저주하는 글을 적어 한림의 손에 들어가게 한다. 한림은 부인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남자를 고혹하는 방술을 행하는 교씨에게 점점 빠져든다.
사씨가 쫓겨난 사단은?
옥가락지 사건이 유 한림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인다. 객점에서 만난 소년이 자기 집안에서 세전(世傳)하는 구물(舊物) 옥환을 애인의 정표라며 소지한 것을 본다. 교씨가 빼돌린 것이었다. 사씨가 축출당한다.
그래서 사씨는 자살하는가?
죽으려는 순간 의식을 잃고 꿈을 꾼다. 요임금의 딸이자 순임금의 두 비인 아황과 여영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뜻을 거둔다.
사씨가 없는 유 한림 집안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교씨가 사씨의 아들 인아를 물에 던져 죽이라 한다. 갈대숲에 버려진 인아를 임씨 처자가 보호한다. 유 한림이 사씨의 일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하자 교씨는 조정에 유 한림을 고발해 귀양 가게 만든다. 죽음의 위기에 닥친 순간 유 한림이 극적으로 사씨를 재회한다.
사필귀정인가?
그렇다. ‘복선화음’, 선한 이에게는 복이, 악한 이에게는 화가 따른다. 임씨 처자를 첩으로 들이면서 유 한림 부부는 인아와 재회한다. 유 한림은 기녀가 되어 있던 교씨를 찾아 목을 매게 한다. 상서와 부인은 해로한다.
≪사씨남정기≫의 당대 영향력은?
이후 ≪장학사전≫, ≪소씨전≫ 등 처첩의 갈등을 그린 수많은 작품이 나왔다. 숙종이 궁녀가 읽어 주는 ≪사씨남정기≫를 듣다가, 유 한림이 무죄한 사씨를 축출하는 대목에 이르러 “천하의 고약한 놈”이라고 했으며, 그 뒤 장 희빈을 내쫓고 인현왕후를 다시 맞아들였다는 기록도 있다.
김만중은 왜 소설을 썼나?
소설의 힘을 믿었다. 그는 ≪서포만필≫에서 말한다. 사람들이 역사책인 진수의 ≪삼국지≫를 읽을 때에는 감동하지 않지만,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에는 주인공이 좌절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승리하는 대목에서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고 말이다.
조선의 거물 지식인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지식인 대부분이 소설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때였다. 김만중은 대제학을 여러 번 지냈다. 당대의 거물이었다. 그가 소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실제로 작품을 썼다. 이로써 당대에 소설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사씨남정기≫를 국문으로 지은 목적은 뭔가?
한문을 모르는 일반 부녀자들이 감동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종손자 김춘택의 기록에 의하면, “김만중이 이 작품을 국문으로 지은 이유는, 일반 부녀자들로 하여금 다 읽고 외어 감동하며 볼 수 있게 한 것이었으니, 어쩌다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당신은 어떤 판본으로 이 작품을 옮겼나?
≪사씨남정기≫의 친필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이본이 80여 종 있다. 한문본과 국문본이 거의 같은 비중이다. 김만중의 국문 원작을 보고 이를 몇 가지 원칙을 세워 충실하게 한문으로 번역한 김춘택의 ≪번언남정기≫가 믿을 만한 텍스트이므로 해당 이본을 옮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복규다. 서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