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데시 언너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함께 떠나는 유럽여행 11.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틸러 거리 238번지
코스톨라니 데죄가 안내하는 헝가리는 1919년 7월 31일이다. 이 해의 부다페스트는 소란했다. 3월 21일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더니 곧 무너지고 8월부터는 다시 로마 가톨릭의 나라가 된다. 거리는 소란했지만 어틸러 거리 238번지는 고요했다. 그곳에 에데시 언너가 있었다. 그녀는 저명했다. 어느 집에서나 그녀처럼 완벽한 가정부를 원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사건 전날까지는.
어틸러 거리 238번지에 있는 집이 눈에 들어오면, 그녀는 이상하게 소름이 끼쳤다. 비지 코르넬 씨네 집은 사실 아주 근사한 집이었다. 말하자면 작은 저택으로 대궐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벽은 석회로 들장미를 만들어 장식했고, 발코니는 앞으로 멋지게 나와 있어 마치 제비가 집을 지어놓은 듯이 근사했다. 위층 드루머와 모비스테르의 집은 발코니가 밖으로 터져 있었지만, 이 집의 발코니는 네모 형태이고 유리로 막아서 저녁이면 함께 앉아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위에는 물론 전등에 갓을 씌워 장식까지 해놓았다. 이 건물에는 세 가족이 산다. 그들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다. 집 문 앞에는 문패가 두 개 붙어 있다. ‘실라르드 드루머, 법학박사, 공증인’, ‘미클로시 모비스테르, 의학박사, 진료 시간: 11∼2시, 3∼7시.’
언제인가 언너는 심부름으로 모비스테르 씨의 집에 간 일이 있었다. 계란을 꿔 오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그녀는 비로소 피아노를 보았다. 피아노 소리는 그 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미인인 의사 선생님의 사모님은 넓게 파인 옷을 입고,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반지를 여러 개 낀 손은 건반 위를 미끄러지고 입에서는 더욱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언너는 그러는 사이 다른 집에 사는 가정부를 사귀게 되었다.
두 가정부는 언너를 자기들의 모임에 끼워주었다. 그들은 집에서 무슨 요리를 하는지 묻기도 하고, 자기 집의 전화가 고장이 나면 언너의 집으로 와서 전화를 하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 그들은 언너를 초대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함께 모여 그들은 카드놀이도 하고, 그러면서 콩이나 호두를 함께 먹기도 했다.
언너는 자기 주인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다. 그들은 비지 부인을 탐욕스러운 여자라고 말했다. 절반은 정신이 돈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죽은 사람의 영혼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언너더러 그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언너는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녀는 날이면 날마다 싫고 소름이 끼치지만, 왜 그런지 무엇 때문인지 그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 그녀는 이 집에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전깃불에는 그녀가 금방 익숙해졌다. 비지 부인은 어떻게 전기를 켜고 끄는지를 알려주었다. 이것을 그녀도 금방 주인집 식구들처럼 그대로 이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기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 지식이 없었다. 그 점은 주인도 마찬가지였다. 전등의 스위치를 짤깍 켜고 난 다음 그녀는 늘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밝아지기는 했지만, 정말도 전등불이 천장에서 타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기는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그녀는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말을 하는 쪽과 듣는 쪽을 여러 번 혼동하고, 귀에 대어야 할 곳에 말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도 익숙해졌다. 그녀는 푸스타에서 훨씬 더 경이로운 것들을 경험했다. 그러기에 그녀는 여기에는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은 이것 말고도 또 있었다. 별 의미도 없는 것이면서도,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생소하게 되는 것들.
한 예로 어느 날 아침 그녀는 주인의 이름이 코르넬이라고 들었다. 그 이름을 듣는 순간 그녀는 이 집에서 도저히 오래 머무를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가구들도 그녀의 마음을 공포로 가득 채웠다. 물론 그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었다.
예를 들어 난로를 보면 초록색이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하얀색으로 되어 있었다. 응접실 방은 반대로 벽이 초록색이었다. 탁자는 둥그런 것이 정상일 듯싶으나 육각형인데다 높이도 이상하게 낮았다. 집의 문도 하나는 밖으로 열리고 다른 것은 안으로 열리는 것이 이상했다. 이러한 것들은 물론 사소한 것이지만 여러 번 그것으로 신경이 쓰이면서, 마침내 마음속을 온통 뒤집어놓았다. 마른 꽃다발 사이에 공작새의 털이 많이 있다. 이것을 볼 때마다 그녀는 깜짝깜짝 놀란다. 공작의 눈이 모조리 다 그녀를 바라보는 듯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옆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의 눈은 모르는 사이에 다른 쪽을 향하거나, 아니면 눈을 감는다.
그녀가 아침에 일찍 눈을 뜰 때마다, 부인은 이미 침실에서 나와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면, 머리끝마다 온통 화가 나서 솟아 있는 듯이 보였다. 언너에게 화가 나 있는 모습. 마룻바닥이 삐걱거리기 때문에 부인은 그녀가 발을 움직이는 소리를 다 들었다. 집은 문을 잘 닫아야 했다. 주의를 하지 않아 바람이 새어 들어오면 이가 아프거나 아니면 귓병이 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또 문을 잘못 닫아 햇빛이 안으로 들어오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단다. 비지 부인은 그러니까 늘 그녀의 뒤를 따라다녔다.
부인은 지나치리만치 호의적으로 언너를 가르쳤다. “아가야! 이렇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이것은 이렇게… 이것은 탁자에 올려놓아야지요. 그러나 모서리에 놓아서는 안 돼요. 한가운데에 놓아야 하는 거예요. 그래야 땅에 떨어지지 않겠지요?” 이때부터 언너는 무슨 물건이든지 늘 탁자의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늘 가운데에 세워놓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늘 물건의 주위를 맴돌았다. 잘못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다 자기의 권리를 놓치지 않으려는 생각도 있었다. 부인은 어떤 것 하나 만족하는 것이 없었다. 언너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왜 말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어쩌다가 자기는 버르토시 네 집에서는 이리이리 했노라고 말을 하면, 부인은 갑자기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그 집에서는 그렇게 했건 말건, 하여간 여기서는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늘 머리를 들고 고집을 부리려 하지 말라고, 자기가 더 아는 것이 많으니 자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화가 난 소리로 말했다.
언너에게 가장 서운한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그녀가 아끼는 움직이는 노리개이자 작은 친구였다. 지금까지 그녀는 아이와 함께 노는 일로 밥을 벌어먹었다. 그녀는 이 집에서도 어머니 노릇을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옛날이야기도 들려주고, 시를 낭송하기도 하는 일을 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이 집에는 어른들만 있으니, 이들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이들은 자기들의 일에 완전히 몰입해 있고, 언너의 옆을 지나갈 때에도 늘 엄숙한 표정만 하고 있으니.
<<에데시 언너>>, 코스톨라니 데죄, 정방규 옮김, 113~1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