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빈 단편집
지식을만드는지식과 겨울 여행 1.
성공의 절정
우리 여행의 첫 번째 안내자는 유리 나기빈이다. 삶과 조우한 경험을 날것 그대로, 바로 드러낸 에세이스트, 삶의 다양성을 문학적 대화로 포착한 시나리오 작가, 냉정하고 꼼꼼한 평론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빛나는 성과를 남긴 단편소설가다. 뛰어난 이성과 폭넓은 관계는 문학의 천재를 무너뜨린다는 속설을 단칼에 베어 버린 북국의 전사다. 그가 전하는 남자와 여자의 결별, 0℃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한 기온 그리고 세상을 할퀴듯이 찾아오는 싸락눈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런 다음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이라기보다는, 악의에 찬 허탈한 상태로부터 그를 순간적으로 구출한, 삶으로, 상냥함으로, 눈물로 되돌아가게 한, 몇 마디 말을 했던 것이었다. 유모가 단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털외투라도 갖다 주었으면. 틀림없이 추울 텐데.”
세상에, 이 말은 얼마나 당연하게 들리는가. 그녀가 춥다! 그녀의 가는 뼈마디가 춥다. 그녀의 누렇고, 어린애같이 매끄러운, 얇은 피부에 소름이 돋고, 그녀의 무릎과 무릎 위의 가장 보드라운 허벅지가 얼 것이다. 그녀는 움츠리면서, 집을 나갈 때 입었던 바바리의 깃을 올리고, 가슴과 목을 목도리로 막는다고 해도, 여전히 그녀는 추울 것이다. 바람은 바바리를 뚫고 불어오고, 하얀 싸라기눈은 옷깃 너머로 흩어져 내려서, 그녀를 차갑게 하면서, 느리게 녹아내리며 등을 따라 흘러내릴 것이다. 그녀는 그녀가 추위에 떨 것이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고 나갔다. 어쩌면, 그녀 자신도 그들의 이별이 추워질 때까지 오래 끌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녀는 완전히 집을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심함에서 물질적인 대상들로 자신의 가출을 심각하게 준비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추워지면, 그가 그녀에 대해서 떠올리고는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리라고 그녀는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비열한 이기주의와 자기의 고통에 둘러싸여 자기애적인 분주함으로 꼼짝도 안 하고 있었다. 늙고, 나이 들어 의식이 흐릿한 유모가, 그런 사람이 추운 사람에 대해서 기억해 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난센스가, 초가을의 그다지 심하지도 않은 이런 추위가, 레나로부터 비현실성의 덮개를 걷어냈고,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려 놓았으며, 그녀는 단지 살아 있고, 일그러져 가는, 추울 수도 있고, 오한이 날 수도 있고, 바람 속에서 떨고 서 있는 것이 불편하고, 감각을 잃은 손가락을 호호 불면서, 따뜻한 방으로 서둘러 가는, 그런 사람이 되게 했다. 가이는 갑자기 완전히 다르게 그가 없는 그녀의 삶 전체를 상상해 보았다. 매일의 작은 걱정들, 음식 준비를 해야만 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해야만 하고, 누군가와 만나야만 하고, 자신의 일도 설계해야만 한다. 그녀는 그에게 신비한 태양빛 속에서 베아트리체처럼 보였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편의시설과 배려 없는 보통 사람의 일반적인 분주한 삶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가난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살아갈 형편은 되었지만, 물론, 다른 털외투에 대해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녀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만 한다. 어떠한 다른 설명들로 이것을 복잡하게 할 필요 없이, 가볍고,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피로 된 털외투와 모피 털모자와 모피가 든 양가죽 부츠를 단지 그녀에게 전해주기만 하면 된다. 그럼 되는 것이다.
<<나기빈 단편집>> <성공의 절정>, 유리 나기빈 지음, 김은희 옮김, 226~2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