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만드는지식과 겨울여행 4. 푸시킨과 대위의 딸
명예는 젊어서부터 지켜라
눈과 얼음의 나라를 찾아가는 우리들의 여행, 네 번째 안내자는 푸시킨과 대위의 딸 마샤다. 때는 1773년 전후, 장소는 볼가강 유역과 남부 우랄 지방. 레퍼토리는 푸가초프 농민 반란이다. 한번 내리기 시작한 눈은 대지 위의 모든 것을 덮는다. 처음에 하늘이 사라지더니 곧 땅도 사라지고 나무와 길과 대기도 사라진다. 멈춰 버린 마차 옆으로 역사가 지나간다. 계몽주의의 모자를 쓴 러시아의 귀족, 가부장적 사회제도, 무지몽매하고 잔인한 참칭 황제 푸가초프와 그 일당, 계몽 전제군주를 자처하는 폭력의 황제 예카테리나 2세 그리고 수없이 나타났다 눈발처럼 사라지는 러시아의 인간과 인간들. ‘명예는 젊어서부터 지켜라’라고 세상은 말하지만 젊어서 지킬 수 있는 명예 따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나의 임지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주변에 언덕과 골짜기로 가로막힌 황량한 황야가 뻗어 있었다. 모든 것이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마차가 좁은 길을 따라, 더 정확히 말해 농부들의 썰매가 낸 자국을 따라가고 있었다. 갑자기 마부가 한쪽을 계속 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모자를 벗은 다음,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나리, 돌아가실까요?”
“왜 그러나?”
“때가 위험합니다요. 바람이 살살 일어나기 시작하네요. 방금 내린 눈을 바람이 쓸어버리는 걸 보세요.”
“뭐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
“그럼 저기에 무엇이 보이세요?” (마부가 채찍으로 동쪽을 가리켰다.)
“하얀 초원과 맑은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아니, 저기, 저쪽에 있습니다요. 그게 구름입니다요.”
하늘 가장자리에 있는 흰 구름이 보였다. 그것은 처음에는 멀리 있는 작은 언덕처럼 보였다. 마부는 작은 구름이 부란1)을 예고하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설명했다.
나는 이 지방의 눈보라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었고, 짐마차들이 눈보라에 파묻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벨리치는 마부의 의견에 동의하고, 돌아가자고 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바람이 센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다음 역참에 일찍 도착하고 싶어서 더 빨리 가라고 지시했다.
마부가 말들을 재촉해 몰았다. 그는 계속 동쪽을 쳐다봤다. 말들은 사이좋게 달리고 있었다. 그 사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람이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작은 구름이 무겁게 일어나다가 성장하더니, 점점 하늘을 덮는 흰 구름 떼로 바뀌었다. 조금씩 눈이 내리다가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울부짖기 시작하더니 눈보라가 일었다. 순식간에 검은 하늘이 눈보라와 뒤범벅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마부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이고, 나리, 큰일 났습니다요. 눈보랍니다!”
나는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천지에 어둠과 회오리바람뿐이었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하듯 바람이 맹렬히 울부짖고 있었다. 눈이 나와 사벨리치를 뒤덮었다. 말들은 천천히 걷다가 이내 서버렸다.
“대체 왜 안 가나?” 나는 참지 못해 마부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갑니까요?” 마부석에서 내리면서 대답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요. 길도 없고, 사방이 캄캄합니다요.” 나는 그놈에게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 사벨리치가 그놈을 편들었다.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 사벨리치가 화를 내며 말했다. “여관으로 되돌아가셔서 차를 마시고 아침까지 주무시면 눈보라가 그치고 더 멀리 가실 수 있을 텐데요.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서둘러서 어딜 가는 거죠? 결혼식에라도 간다면 좋겠지만요!”
사벨리치가 옳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다. 마차 근처에는 쌓인 눈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말들은 고개를 숙인 채 가끔 몸을 덜덜 떨며 서 있었다. 마부는 하릴없이 마구(馬具)를 손보면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사벨리치는 불평을 해대고 있었다. 나는 인가나 길의 흔적이라도 발견하기를 기대하면서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눈보라의 흐릿한 소용돌이 외에는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문득 시커먼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이, 마부!” 하고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저길 보게. 저기 까맣게 보이는 게 대체 뭔가?” 마부는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르겠는데요, 나리” 하고 그는 자기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짐수레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데, 무엇이 조금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요. 늑대 아니면 사람이 틀림없습니다요.”
나는 우리를 향해 방금 움직이기 시작한 미지의 물체 쪽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2분이 지나서 우리는 한 사람을 따라잡았다. “여보시오, 형씨!” 마부가 그에게 소리쳤다. “길이 어디 있는지 모르시오?”
“길이 여기 있잖소. 내가 단단한 땅 위에 서 있소” 하고 길 가는 사람이 대답했다. “그런데 왜 그러시오?”
“이보시오, 농부 양반” 하고 내가 그에게 물었다. “이쪽을 아시오? 우릴 묵을 만한 데로 안내해 줄 수 있겠소?”
“이쪽은 제가 알고 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이 대답했다. “다행히 저는 사방을 걸어 다니고, 말을 타고도 쏘다녔지요. 하지만 보시다시피 날씨가 어떻습니까? 길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여기에 머무르며 기다리는 게 더 낫죠. 아마 눈보라가 그치면 하늘이 갤 겁니다. 그때 별을 보고 길을 찾아봅시다.”
그의 침착함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나는 자신을 신의 뜻에 맡긴 후, 초원 한가운데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길손은 아주 민첩하게 마부석에 앉더니, 마부에게 말했다. “천만 다행히도 근처에 인가가 있소.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시오.”
“왜 내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단 말이오?” 하고 마부가 불만스레 물었다. “길이 어디에 있는지 보인단 말이오? 아마 말들도 남의 것이고, 마구도 자기 것이 아니니까 쉬지 않고 몰아 보자는 모양이군.” 나는 마부가 옳은 것 같았다. “인가가 정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하고 내가 물었다. “바람이 그곳에서부터 불어왔기 때문입니다.” 길 가는 사람이 대답했다. “그리고 소리가 들리고, 연기 냄새가 났기 때문이죠. 분명히 마을이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의 예지와 날카로운 감각이 나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나는 마부에게 가라고 지시했다. 말들이 깊게 쌓인 눈을 헤치고 힘겹게 걸어갔다. 마차가 때로는 눈 언덕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골짜기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이쪽으로, 때로는 저쪽으로 쏠리기도 하면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눈보라 치는 바다를 따라 배가 항해하는 것과 비슷했다. 사벨리치는 계속 내 옆구리를 밀치면서 끙끙 앓는 소리를 해댔다. 나는 마차 덮개를 내리고 모피 외투로 몸을 감쌌다. 그리고 조용히 흔들리는 마차의 진동과 눈보라의 노랫소리를 자장가 삼아 졸기 시작했다.1)부란: 눈보라를 동반한 차가운 강풍의 일종이다. 아주 추운 날씨에 눈가루를 땅위에 날리며 불어서 ‘땅날림눈’이라고도 한다.
<<대위의 딸>>, 알렉산드르 푸시킨 지음, 이영범 옮김, 36~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