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저울추
지식을만드는지식과 겨울여행 8.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국경지대, 츨로토그로트
저울추, 인간을 측량하는 쇳덩이
오늘 우리의 여행지는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국경지대, 츨로토그로트(Zlotogrod)다. 요제프 로트는 이 지역의 실력자, 도량형기 검정관 안젤름 아이벤쉬츠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그는 모든 상인들이 사용하는 도량형기의 치수와 무게를 점검한다. 쉽게 말하면 자와 저울눈을 속이는 양심 불량범을 검색, 처벌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저울은 순수하고 평등하며 검색과 처벌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하여 우리는 기억한다. 아리아인의 순수 혈통과 인민의 평등을 간단 명료하게 실현하려는 노력들과 그 결과를. 강철의 표준은 우리의 심장마저 주물해 버린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가 시내에서, 지역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고 혼자 있는 지금, 가정에서 사랑과 신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것이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한밤중에 침대에 일어나 앉아 아내를 바라보았다. 위쪽의 옷상자에 매달려 어둠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방 안에 반짝이는 밤의 중심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침실용 스탠드의 노르스름한 불빛 아래 비친 잠든 아내는 그에게 꼭 바짝 마른 과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아내의 모습을 꼼꼼하게 뜯어보았다. 오래 쳐다보면 볼수록 더 외롭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초리가 유독 그에게 외로움을 안겨 주는 것처럼 여겨졌다. 예쁜 가슴과 아이처럼 평온한 얼굴에 대담하게 굽이치는 눈썹과 반쯤 열린 사랑스러운 입을 가진 그녀, 암적색의 입술 사이로 조그마하게 살짝 빛나는 치아를 지니고 누워 있는 그녀는 아이벤쉬츠의 여자가 전혀 아니었다. 예전의 많은 밤에 그의 몸을 그녀에게로 잡아당겼던 성적욕구가 이젠 없었다. 그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나? 그는 아직도 그녀에게 성욕을 느끼는가? 도량형기 검정관 안젤름 아이벤쉬츠, 그는 매우 외로웠다. 낮에도 밤에도 외로웠다.
<<엉터리 저울추>>, 요제프 로트 지음, 주경식 옮김, 15~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