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승세 작품집
지식을만드는지식과 겨울여행 9. 서울 북쪽 우이동의 겨울
1978년 천승세의 겨울
오늘 우리 여행의 길잡이는 천승세다. 김동리가 우리에게 “무서운 재능이요 비상한 천재”라고 소개한, 또 백낙청이 “우리 사회의 본질적 모순을 가장 투철하게 의식”한 사람으로 천거한 그 사람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1978년 겨울 우이동 골짜기, 그의 삭월셋방 근처다. 그해 겨울은 가난하고 추웠다. 눈이 많이 내렸고 쌓였으며 노랑색 눈꽃도 보였다. 혜자는 그 꽃을 어떻게 피웠던 것일까?
탐스러운 눈송이들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어지러운 눈발 속에서 여인의 글썽한 눈이 보였다. 여인의 해들거리는 웃음을 봄 삼아 폈을, 어쩌면 그보다 먼저 힘겨운 목숨의 곁가지 위에 안쓰럽게 펴났을, 그 노랑색 꽃술의 눈꽃들은 이제 더는 피어나지 못할 것이었다.
눈물처럼 아리고 매운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혜자 할머니는 무슨 뜻으로 여인의 발걸음 뒤에다 꽃잎을 새겨주면서까지 여인의 힘겨운 나들이를 용서해 버렸는지모른다.
그해 겨울의 인동(忍冬)은 음울함을 넘어 사뭇 슬프기까지 했었다.
그때 나는 삼동의 추위 속에서 이사를 해야 했을 정도로 삶의 옥죄이는 허기에 탈진되며 눅눅한 가난을 체험해 봤던 것이다. 보증금 없이 월 이천 원 삭월세의 셋방이라는 명목대로, 그해 그 눈 많던 겨울의 내 거처가 돼주었던 다행스러운 판자집은, 우이동의 산자락을 비집는 황량한 공터에 달랑 앉아 있었다.
산언덕 위로는 요란스러운 고급 호텔이 늘펀하게 앉아 있었고 산길을 겸한 좁은 길목이 또아리를 튼 처량한 한길이 나의 판자집을 싸안으면서 산속으로 올라 뻗고 있었다.
담도 없이 한길과 맞트인 마당(마당이라기보다는 사람의 손질이 미칠 새 없는 버려진 땅이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안으로는 보기 힘든 경색의 노송들이 울울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 노송의 숲과 호텔이 앉아 있는 산언덕 발치께로 도봉동 한천으로 흐르고 있을 법한 시린 개울이 가만가만 달리고있었던 거였다. 말하자면, 내 삭월셋방의 마당 구실을 하고 있는 그 노송 밭은 그 어느 땐가는 청청한 심곡 속이었을 것이나 개울이 패이면서 덩달아 한길 쪽으로 밀려난 허진 풍치로 가늠해야 옳을 것이었다.
훈기 하나 없는 방에서 인동의 눌눌한 잠을 보채이다가 선뜩해서 깨어나면, 노송들은 가지가 휘는 겨운 설화들을 얹고 있었고, 그 설화들의 밀밀한 틈새에서 다시 태어나는 눈부신 햇살들이 스물대는 솔잎 그늘을 올올이 적시며 눈밭에와 닿아 있곤 했다.
나는 이 노송 밭의 설화들과 시리디 시린 아침 햇살에 취해 가슴 저리는 가난도 잊고 있었다. 이런 경치에다가 굳이 하나를 더 보탠다면, 나의 판자집 뒷 봉창께로 바짝 잇대어 뻗는 산길도 무척 좋았다.
<<천승세 작품집>> <혜자의 눈꽃>, 천승세 지음, 고명철 엮음, 129~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