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스와 아우기아스의 외양간
지식을만드는지식과 겨울여행 13. 올림포스 산 기슭에서
헤라클레스와 설산을 등반하며
오늘은 등산 여행이다. 등반 가이드는 뒤렌마트, 얼음에 덮인 올림포스산으로 우리를 잡아끈다. 알프스의 눈보라 속에서 사자가죽을 두른 채 숨을 허덕이는 남자의 이름은 헤라클레스, 그 옆에서 추위를 이기지 못해 이빨을 딱딱 부딪히는 또 한 사람은 종복이자 동업자 폴리비오스다. 지금은 1980년, 신화의 구름이 걷히고 문명이 세상을 비춘다. 지상 최고의 남자는 일상을 걱정하는 프티브루주아지로 전락했다. 세상은 냉담하고 인생을 포기할 수 없는 신의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잔머리 굴리기다. 죽음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부재가 두려운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눈에 뒤덮여 있는 암멧돼지 옆에서 눈을 맞으며 앉아 있다.
헤라클레스
춥구나.
폴리비오스
추워요.
헤라클레스
공기가 부족하구나.
폴리비오스
알프스 고산지역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두 손을 호호 불고 팔과 몸을 비벼서 어떻게든지 따뜻하게 해보려고 몸을 움직이고 있다.)
헤라클레스
앉아라. 네가 안절부절못하니 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폴리비오스
알겠습니다.
(연단 위로 올라가서 암멧돼지 왼편에 앉는다.)
(침묵. 그들은 추위에 떨고 있다.)
헤라클레스
북풍이 부는군.
(폴리비오스는 오른쪽 집게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나서 그 손을 높이 올린다.)
폴리비오스
북서풍인데요.
헤라클레스
다행히도 나는 사자 가죽 옷을 입었어.
폴리비오스
유감스럽게도 저는 완전히 여름옷을 입었습니다.
헤라클레스
안개가 짙어진다.
폴리비오스
열 발자국 앞도 볼 수가 없습니다.
헤라클레스
눈도 다시 내리고.
폴리비오스
폭풍도 불어요.
헤라클레스
얼음 덮인 산에서 그리스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겠구나.
(천둥소리)
폴리비오스
눈사태가 나려나 봐요.
헤라클레스
우리는 등산을 좋아하는 민족이 아니야.
폴리비오스
올림포스 산을 맨 먼저 등반한 민족으로서 우린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헤라클레스
맨 먼저는 멧돼지다.
폴리비오스
신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헤라클레스
그렇긴 해.
폴리비오스
당신의 아버지 제우스께서는−
헤라클레스
내 어머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라.
(천둥소리)
폴리비오스
암석이 굴러 떨어지네요.
헤라클레스
산봉우리 절반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군.
폴리비오스
올림포스 산이 원래 견고한 산이었나요?
헤라클레스
나도 몰라.
(침묵, 눈보라)
헤라클레스
폴리비오스.
폴리비오스
존경하는 주인님,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
이를 덜덜 떠는 거 그만 좀 해라.
폴리비오스
그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헤라클레스
내가 좀 심각해지기 시작하네.
폴리비오스
추워서 그런가 봅니다.
헤라클레스
나는 애를 쓰고 있다. 나는 그리스의 들판을 짓밟고 다니던 선사시대의 괴물들을 때려눕혔고, 행인들을 위협하던 도적 떼를 나무에 묶어놓았지. 그러나 내가 너를 고용한 이래로 통신왕래는 제대로 되지만 내 사업은 쇠락하고 있어. 반대였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폴리비오스
정말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주인님. 제가 주선한 세 가지 일들은 벌이가 시원찮았지요. 몸무게에 따라 값이 매겨지는 네메아1)의 사자는 발칸의 난쟁이 산의 사자로 판명 났지요. 거대한 뱀 히드라2)도 레르네의 늪으로 떨어졌고, 케리네이아의 암사슴도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나 버렸지요. 에리만토스의 수퇘지−인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들의 산까지 쫓아가서 한 몰이사냥이었는데 말입니다.
헤라클레스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지.
폴리비오스
그 대신 우리는 무지하게 큰 수퇘지를 잡으려고 덫을 놓았지요.
헤라클레스
여전히 눈이 내리는군.
폴리비오스
세상에 숨통이 좀 트이겠네요.
헤라클레스
우리에겐 좋을 게 없어.
폴리비오스
우리에게 무진장 도움이 되지요. 에리만토스의 수퇘지가 눈 속에 지쳐서 우리 곁에 누워 있으니까요. 수퇘지가 있는 곳에 돈도 있습니다.
헤라클레스
우리 옆에 누워 있는 건 에리만토스의 수퇘지가 아니라 눈 속에 묻힌 야생 암퇘지야.
(폴리비오스가 살펴본다.)
폴리비오스
정말이네. 암멧돼지네.
(침묵)
폴리비오스
이 암퇘지가 수퇘지를 뒤쫓아 온 모양이네요.
헤라클레스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폴리비오스
지금 우리는 정신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천둥소리)
헤라클레스
또다시 눈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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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네메아: 제우스의 사원이 있었던 고대 아르골리스의 골짜기.
2)히드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괴물로 레르네의 늪지에 살았다.
<<헤라클레스와 아우기아스의 외양간>>,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황혜인 옮김, 26~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