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제
늦었지만 고맙다, 지만지 국내 최초 출간 고전 13.≪관료제≫
왜 정부는 경제를 말하면 안 되는가?
미제스의 주장은 간단하다. 모든 인간이 이윤의 동기로 움직일 때 경제는 살아나고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정부의 경제 개입은 곧 관료제를 낳고 관료제는 다시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화한다. 개입은 문제를 낳고 문제는 개입을 부른다. 정부의 부채는 쌓여 가고 그것이 민간으로 이전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때 체제는 정지한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과 일본과 또 다른 모든 국가 주도 경제체제의 나라들이 보여 주는 모습이다. <<관료제>>는 이런 일련의 현상을 투명하게 분석한다. 옮긴이 황수연에게 관료제와 정부 개입 그리고 포퓰리즘에 대해 듣는다.
<<관료제>>는 무엇인가?
관료제의 문제점, 즉 관료제화, 관료주의의 원인을 분석한 책이다.
특징은?
보통 관료제를 다룬 책들은 관료제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관료제화의 원인 분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정부의 경제 개입이 관료제화를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분석의 높이와 폭에서 차이가 분명하다.
얼마나 중요한 책인가?
오늘날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국가적 난제는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면서 발생된 것이다. 그것은 “병 주고 약 주기”다. 정부의 경제 개입으로 병이 생기고 그 병을 고친답시고 또 다른 경제 개입이라는 약을 처방한다. 그러나 그것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된다. 이 책은 이런 현상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직접 관계가 있는가?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극심한 포퓰리즘에 휩싸여 있다. 경제도 불황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미제스의 <<관료제>>는 이런 문제들이 왜 일어나고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제시한다.
경제가 나쁜데 정부가 가만 있으란 말인가?
미제스는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경제에 개입하면 해결은커녕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점을 <<관료제>>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럼 정부의 역할은?
국방, 외교, 치안, 사법, 자국민 보호가 정부의 역할이다.
경제는 누가 책임지나?
경제 문제는 시장, 민간 기업에 넘겨 자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공기업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 사기업의 운영을 규제하거나 보호하는 모든 행위는 경제를 망가뜨리는 지름길이다.
왜 지금까지 번역되지 못했나?
오스트리아학파의 거장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다른 저작들은 자유주의 학자들이 꽤 번역을 해 놓았다. <<관료제>>가 여태 번역 출판되지 못한 까닭은 이 책이 다루는 분야 때문인 듯하다.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경제학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당신 번역의 특징은?
나는 번역의 정확성을 제일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 결과 종종 문제가 일어난다. 예를 들면, 강조 동사 “do”를 “정말 ..하다”는 식으로 꼭 써 주는데, 이것이 번역된 문장을 어색하게 하는 때가 있다. 영어의 복수 단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는 복수로 옮겨 적는데, 이 때문에 표현이 어색해진다. <<관료제>>에서는 복수는 복수로 옮겼다.
1962년판 서문
인간 사회 체제 내에서의 업무 운영, 곧 사람들 사이의 평화적 협동을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관료적 관리(bureaucratic management)이고 다른 하나는 이윤 관리(profit management)다.
이윤 관리는 우리 시대에는 크게 인기가 없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시장경제에서 작용하는 소비자 주권을 중앙 당국에 의한 전반적인 계획−즉, 사회주의(socialism)−으로 대체하고자 안달이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 사람들이 관료주의의 폐단을 심하게 비난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윤 관리의 억제를 극성스럽게 요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더욱더 많은 관료제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심지어는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영역의 완전한 관료제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한다.
이윤 관리가 불가능하고 관료적 관리가 지배적이지 않을 수 없는 인간 활동 영역들이 있다. 경찰서는 영리 기업을 운영할 때 의존하는 방법들에 따라 운영될 수 없다. 제과점은 자기가 생산한 것을 하나씩 팔 때 한정된 사람들−자기의 고객들−에게 봉사한다. 제과점 영업에 사회적 정당성−수익성(profitability)−을 부여하는 것은 제과점 고객들의 애호(愛好)다. 반면 경찰서는 자신의 ‘제품(products)’을 판매할 수 없다. 경찰서의 업적은, 설사 아무리 가치가 있고 심지어 필수불가결하다고 할지라도, 시장에서 가격을 가지고 있지 않고, 따라서 그것을 탄생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총지출과 대비될 수 없다.
이 소론은 관료제를 매도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관료적 업무 관리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점에서 이윤 관리와 다른가를 지적하려고 한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관료적 관리가 어떤 분야에서 가능한 유일한 업무 운영 방식인가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오늘날의 정부들과 정당들이 민간사업을 정부 행동으로 대체하려고 한 시도들이 지금까지 야기해 왔고 미래에도 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효과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러한 쟁점에 대한 검토는 사회의 경제 조직의 두 가지 체제−시장경제(market economy)와 사회주의−를 충분히 평가하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것은 “전(全) 국가 경제를 우편 제도처럼 조직하고”, 사회 전체를 “하나의 사무실과 하나의 공장(one office and one factory)”으로 만들며, 모든 국민들을 “국가의 고용인들로(into hired employees of the state)” 전환시키려는 레닌의 프로그램이 지닌 의미를 드러낸다.
이 소론은 1944년에 써서 그해 처음 출판되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는 그 시기의 상황들과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 상황들의 외관적 모습은 어떤 면들에서는 변화되었고 1944년의 몇몇 우상들은 그 후광을 잃었다. 그러나 해당 정치 문제들의 본질적 특징들은 바뀌지 않았다.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사이의 큰 역사적 갈등은 18년 전에 그랬듯이 지금도 인류를 두 개의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누고 있다. 그러므로 관료적 관리와 사업 관리 사이의 대조를 탐구하는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1962년 1월
뉴욕 시에서
<<관료제>>, 루트비히 폰 미제스 지음, 황수연 옮김, 1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