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한국문학 신간소개, ≪2012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우리 문학, 지금 몇 시야?
지난해 우리 문학을 이끌었던 문제의식과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매년 신진 평론가의 활동을 평가하고 열 명을 골라 겨룬 뒤 한 명을 골라 ‘젊은평론가상’을 수여한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은 2009년부터 이들 평론을 실은 평론집을 출판했다. 올해의 수상 작품집에는 젊은 평론가들이 엄선한 2011년 최고의 문제작을 감상하는 기회도 추가되었다. 심사위원장 김종회에게 오늘의 한국 문학평론과 평론가의 현주소를 묻는다.
올해는 누가 겨뤘나?
<사랑의 영도(零度), 만짐의 현상학>(강동호), <낭만주의·낭만성·낭만화>(고봉준), <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백지연), <이지러진 시간, 나르시시즘의 유토피아>(오창은), <고요한 정신의 깊이들>(오태호), <환갑 지난 문학청년의 영구혁명>(이경재), <‘미래파’와 ‘정치시’ 그 이후, 우리 시대 시의 아포리아>(이찬), <노동시의 새로운 가능성‘들’>(장성규), <생성변형문법으로부터 시계 세공으로>(조강석), <구조적 폭력시대의 타나톨로지>(조연정)가 출전했다.
수록 작품 중 시론의 경향은 어떤가?
‘압도적인 감각의 제국 속에서 더욱더 언어의 디테일에 집착’하는 최근의 시편들을 ‘사랑의 영도’ 혹은 ‘만짐의 현상학’으로 탐색한 글에서부터, ‘낭만성이 삭제된 자리에 낭만화라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음각하고 있는 오늘의 시적 경향, ‘미래파’와 ‘정치시’ 이후의 우리 시대 시의 방향성, 2000년대를 횡단하며 가장 주목받았던 ‘미래파 논쟁 너머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원로들의 시 세계,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시적 리얼리티의 긴장을 복원’함으로써 ‘새로운 노동시의 미학’을 모색하는 경향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 책에 실린 시론은 ‘지금 여기’의 서정이 지닌 가능성과 한계를 진단하는 척도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설 쪽은?
문학사회학을 펼쳐 보였다.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감지되는 ‘민주주의의 위기 양상과 경제체제의 심화’를 배경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 ‘근대문학의 종언’, ‘장편 서사의 확장’이라는 현상, 환갑이 지나서도 문학청년의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영구 혁명’의 문학, ‘주관적 폭력’을 호들갑스럽게 노출하지 않으면서 우리 시대의 ‘구조적 폭력’과 대면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진지한 작업을 분석했다. 휴머니즘의 가치가 비인간화되는 시대의 냉혹함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오태호가 결정된 이유는?
문화적 환경 변화가 점차 빨라진다. 그것에 현혹되지 않고 역설적으로 ‘고요한 응시’를 주장했다. 느린 걸음과 긴 호흡으로 우리 문학의 방향을 가늠한다. 그의 비평은 디지털 환경의 변화 가운데 벌어지는 기존 문학 규범의 일탈을 하나하나 지켜본다. 끝내 그것이 문학적 상상력의 강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냈다.
이번 평론에서 주목한 것은?
세계에 대한 깊은 인식, 그와 결합된 문학 인식의 진정성은 오태호의 자산이다. 수상작 <고요한 정신의 깊이들>은 평소 그의 자세가 정신적 세계로까지 고양되고 확대되는 노정을 드러낸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젊은평론가상이란?
2000년에 시작됐다. 올해로 13회째다. 역대 수상자들은 한국문학평론계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면서 2000년 이후 우리 문학의 흐름을 주도했다.
선정 방법은?
한 해 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되었던 평론 작품들 중에서 동시대의 문학작품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우리 비평 작업의 현장성과 생명력을 보여 주는 작품을 고른다.
지금까지 누가 상을 받았나?
홍용희, 권명아, 오형엽, 김춘식, 이재복, 이상숙, 고인환, 홍기돈, 김문주, 이성천, 허혜정, 고명철이다. 올해는 오태호가 선정되었다.
오늘날 문학 평론가의 자세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티 에스 엘리엇 식으로 말하자면, ‘작품의 해명과 취미의 교정’을 넘어서 ‘문학의 이해와 향유의 조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대의 변환이 너무도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오늘, 비평에게 요구되는 것은 순발력 있는 대응력과 그것을 값있게 하는 정확성이다.
독자가 맛볼 만한 평론 한 조각을 추천해 다오.
수상작인 오태호의 <고요한 정신의 깊이들> 중 ‘아름다운 본성의 집적물, 종이’가 좋겠다.
신달자의 ≪종이≫는 ‘시인의 말’에서 종이라는 상징적 집적물을 통해 미적 본성으로서의 영원회귀를 지향하는 시인의 의도가 잘 녹아 있다. 즉,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진선미를 종합하려는 의지가 ‘종이’로 집약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인간의 선한 본성”과 “그 아름다움”을 종이에 대면시켜 보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따뜻함, 영원함, 영성적 노동, 가득함, 화합, 평화, 사랑, 모성, 순수, 고향, 우직함” 등의 “충돌 없이 잘 섞이는 감정의 물질들을 하나의 원소로 종합한 것”을 ‘종이’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이≫가 “인간의 따뜻한 본성을 그리워하고 그 본성을 되찾아 보려는 한 톨의 씨앗이자, 한 시인의 종이에 대한 사랑”의 헌사임을 전한다. 결국 ‘종이’란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을 혼합한 원소의 집적물에 해당한다.
그렇다. 시인의 고백과 다짐과 의도대로 ≪종이≫는 천지만물과 인간의 오욕칠정을 담은, 백 년의 고독이 녹아든 한 권의 양피지(마르케스)이자 시인이 동서고금으로부터 수용한 존재론과 인식론과 관계론을 담아낸 하나의 파피루스에 해당하는 것이다. ‘종이’에 대한 헌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시>에서 ‘종이의 사라짐’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종이의 멸실에 대한 걱정이 시인으로 하여금 빈 들에 나가 “적막 한 페이지”를 펴 보게 만들고 종이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이 담기는 그릇임을 재삼 다짐하게 한다. <서시>에서 드러나듯 ‘종이’는 시인에게 인간이 이루어 낸 맑고 깨끗한 정신세계의 다른 이름이자 “극세공의 예술혼”(<예술혼>)이 새겨진 매개물에 해당한다. 심지어 시인은 인터넷 공간에 진입하는 영혼들에게도 “부적처럼 종이 한 장”(<부적>)을 소지할 것을 당부한다. 그것은 허망한 가상의 세계에서 현실감을 상실하지 않을 부적의 역할을 물리적 실재로서의 종이가 감당할 수 있음을 시인이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형상하는 ‘종이’는 천변만화하는 세계의 삼라만상으로 변신하는 변형체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종소리가 되어 세상에 울려 퍼지기도 하고(<종소리>), 깊은 겨울의 중심을 건너는 노숙자에게 따뜻한 이불로 변신하기도 하며(<종이 이불>), 세상의 비의와 아름다움을 압축한 신비의 목련 빛깔로 변이하기도 하고(<그윽한 빛>), “검은 시인의 마을”에 쏟아지는 하얀 폭설로 기억되기도 하며(<폭설>), 진한 여름 나뭇잎으로 변형되기도 하고(<진초록 종이>), 생각과 창조와 미래의 젖을 소유한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며(<젖>), “정신의 정신”을 만나고 싶어 백지의 황홀경을 노래하게 하는 매개체도 된다(<백지 1>). 이렇듯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온 세계로 스며들어 따뜻한 이불이나 봄날의 목련 빛깔, 하얀 폭설과 진한 초록을 내장한 아름다움 속에 창조적 모성 등의 메타포를 포괄하는 메타 정신의 황홀경을 표상하는 것이 종이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인이 겪어 낸 순결한 통증을 기록하는 채집의 공간이 종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초경의 흔적을 기억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며(<꽃 비친다 하였으나>), 성장통을 겪을 때마다 글자를 새겨 넣었던 모든 글쓰는 매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성장통>), “식물성의 순결한 정신”이 담긴 해초 종이로 변주되기도 하며(<해초 종이>), “지금도 뜨뜻하고 물컹하게” “액자 속의 유서”로 살아 있는 “어머니의 비릿한 각혈 한 덩어리”가 새겨진 공간이기도 하고(<각혈>), “마음 상한 사람들의 마지막” 위안으로서의 섬과 등가적 개념으로 인식되기도 한다(<섬>). 이렇듯 종이는 상처와 통증을 기록함으로써 치유의 매개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 공간에 들어서면 초경과 성장통과 각혈의 고통이 함께 순정한 위로를 받으며 생채기 난 흉터가 새살로 거듭나는 위로와 안식을 제공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끊임없이 종이와 더불어 성장한다. 종이는 70 평생의 세월을 담았지만 “아직 바닥도 채우지 못한” 한 장의 대우주 같은 공간으로 변주되기도 하고(<대우주>), “극도로 예민해진” 고요를 담은 ‘가을 들’의 풍경이 되기도 하며(<가을 들>), “인간의 입질에/ 생명을 넣어 주는/ 지구의 자궁”인 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뻘>), 인간의 모든 감각을 상실케 하는 ‘고요’의 변형체이기도 하며(<이고 늪>), 하늘이 빚어낸 가을 하늘(<가을 하늘>)이나 시인이 묻히고 싶은 ‘원고지 납골당’(<원고지 납골당>)으로 변이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종이란 시인이 응시하는 대상 텍스트가 그 무엇이든 그 전부로 변신이 가능한 존재다. 즉 자연의 고요를 담은 우주적 영성을 내포한 공간이 종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추억 전체와 맞먹는, 그리하여 우주적 자연의 생기가 생장 소멸하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자 비유가 된다.
‘종이’라는 열쇠어로 세계를 읽어 낸 시인에게 ‘종이책’은 “영원히/ 제 몸을 헐어/ 정신의 날을 가는/ 숫돌의 힘”(<종이책>)에 비유된다. 자신을 태워 주위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나 주변을 따뜻한 공간으로 인도하는 연탄 난로 같은 이미지가 시인에게는 종이가 된다. 그러니 정신의 날선 내공을 함유하기 위해 ‘종이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더불어 유년 시절부터 띄워 보낸 ‘종이배’는 시인이 언제나 미지에 살면서, “백 개의 종이배를 만들어 여자의 꿈을 띄워”(<종이배>) 보낸 매개물로 기능한다. 시인의 미래와 사랑과 꿈과 상상이 담겨 있는 종이배이기에 시인에게 그보다 큰 배는 없다. 심지어 시인은 종이로 죽을 끓여 내놓는다. 자신이 “영성적 침묵과 묵상”으로 “순수와 사람의 본성을 이겨 반죽하여/ 천 도의 무쇠솥에 끓여/ 한 잔의 고요”(<종이 죽>)를 ‘정신’이라는 “종이 죽 한 그릇”에 담고 싶은 욕망을 천형처럼 짊어진 시인이기 때문이다.
시인의 ‘종이 예찬’은 막연히 ‘과거는 아름다워’ 식의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의 ‘종이’를 향한 감각은 아날로그적이지만 그 변이적 상상력은 무한 변형이 가능한 디지털 시대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시인은 ≪종이≫를 통해 디지털의 세상에서 디지로그의 혼종물들이 확장되는 시대에도 ‘종이’의 영혼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고양해 줄 중요한 매개체임을 고집하고 확신하면서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2012 젊은평론가상 수상 작품집≫, <고요한 정신의 깊이들>, 오태호, 15~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