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선생
대만 문학 특선 1. ≪뱀 선생≫
대만의 루쉰, 라이허를 만나다
낮에는 의사, 밤에는 작가였다.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였고 식민지 대만의 미래를 걱정하는 항일운동가였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뱀 선생≫에는 타이완 신문학의 기수 라이허의 단편 소설 8편이 실렸다. 식민지 통치의 죄악과 타이완 민중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그들의 민족의식은 이런 작품을 통해 인식되고 쌓여 나갔다. 작품을 고르고 옮긴이 가운데 한 사람인 김혜준에게 묻는다.
라이허는 누구인가?
1894년, 그러니까 청나라 광서(光緖) 20년 5월 28일 장화(彰化)에서 태어났다. 일제에 의해 두 차례 투옥되었고 해방 직전 1943년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어떤 사람인가?
한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전통교육과 신교육을 받고 타이완 총독부 의학교를 졸업했다. 1917년 고향 장화에서 개업했다. 평생 고향 사람들에게 헌신했다. 사람들은 그를 삼국지에 나오는 화타처럼 추앙했다. 그의 묘에 난 풀을 뜯어 약으로 쓰면 효험이 있다고 해 그의 묘는 항상 반지르르했다고 한다.
소설은 언제 썼나?
그는 의사 일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겸했다. 낮에는 병원 일에 쫓겨 시간이 없었고 주로 밤에 잠을 설쳐 가며 작품을 썼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1925년부터 1935년 사이 약 10년간 소설과 시를 포함해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뱀 선생≫은 어떤 책인가?
식민자와 피식민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근대화와 그에 따른 부작용, 인간 삶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들을 생동적이고 구체적인 인물과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제기한다.
문학사의 눈으로 보면?
중국 대륙 문학과는 확연하게 다른 문제의식과 표현 방식, 타이완 신문학의 정립, 한국 문학과의 유사성에서 큰 의미가 있다.
왜 이제야 번역이 되었나?
타이완에 대해 소홀했거나 심지어 타이완을 중국 대륙과 동일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워낙 신문학 초기작인데다가 언어 면에서 중국 표준어와 민난(閩南) 방언 및 문언(한문)과 일본어를 혼용하고 있어서 번역하기가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왜 이 작품을 골랐나?
우리는 타이완과 그 문학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타이완 신문학의 출발점인 라이허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 가장 알맞다고 판단했다.
한국 독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타이완의 특수성, 곧 일제의 식민 지배, 국민당 정권의 반공과 독재, 미국의 강력한 영향, 통일 운동과 독립 운동, 급격한 경제 성장은 한국과 유사성이 많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런 모든 상황이 출발되던 시기의 타이완을 다룬다.
번역의 장애물은?
당시 타이완의 특수한 문화적 전통과 관례, 일제 식민 치하라는 억압적 상황, 작가 자신의 창작 경험 부족, 중국 표준어와 민난(閩南) 방언 그리고 문언(한문)과 일본어 혼용, 이러한 다양한 언어 사용, 아직 정규화 되지 못한 문장 표현 방법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번역 전략은?
매끄러운 문장보다 좀 거북하더라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깊이, 내적 연관, 시대적 상황, 문학사적 의미, 작가의 문체를 살리고 싶었다.
문장 선택의 방법은?
약간의 옛날 말투, 일본어식 표현, 생경한 문장 표현이라든가 심지어는 거의 지어 내다시피 한 비표준어까지 사용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국어판 출간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타이완, 타이완인, 타이완 문화, 타이완 문학을 소개하려 한다. 타이완의 특수성을 인식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성찰하는 계기를 얻기 바란다.
뱀 선생(蛇先生)
이 수백 리 안팎에서 뱀 선생은 참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직업은 개구리를 잡는 것이었다. 이는 비록 밑천이 드는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때로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어둡고 깜깜한 밤에 홀로 광막한 소택지에 있어 보라. 요새 신식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바인데 더구나 미신 속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오죽할까? 하지만 뱀 선생은 믿는 바가 있어서 두렵지 않았다. 그가 담력이 큰 까닭은 불에 의지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말했다. 불의 신의 권위는 암흑 속에서 엄청나게 위대해 그 빛이 미치는 곳이라면 모든 마귀가 자취를 감추도록 만들 수 있으며, 그러므로 수중에 불만 있다면 그 어떤 암흑의 세계에서 홀로 행동해도 무섭지 아니하다고. 다만 암흑 속의 형체 없는 두려움은 광명의 위력으로 제거할 수 있다 하더라도 생명의 적이자 실재하는 위험은 시시각각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니 그것은 곧 뱀에 대한 경계였다.
개구리를 언급하자면 뱀을 빼놓을 수 없다. ‘지네, 개구리, 뱀’은 세간에서 세 원수지간이라고 불린다. 뱀의 강적은 지네이고, 지네는 개구리를 무서워하고, 개구리는 또 뱀의 간식이다. 그러니 뱀은 지네의 기습을 경계하면서 놈이 지배하는 개구리로 완충지대를 삼아 뱀 굴의 어귀를 지키도록 만든다. 이런 관계 때문에 개구리를 잡는 사람은 자연히 뱀에 대해 경계를 함과 더불어 연구를 하게 되고, 뱀 잡는 기술이나 뱀 상처 치료 방법 면에서 비방을 갖게 되게 마련인 바, 뱀 선생은 바로 이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뱀 선생은 남들이 문밖으로 나가기를 꺼리는 어둡고 컴컴한 밤중에 홀로 횃불을 들고 개구리 잡기 꼬챙이와 대나무 통발을 가지고서 사람들이 가기 겁내는 외진 곳으로 향하고는 했다. 횃불이 밝혀 주는 몇 자 거리의 빛에 의지해서 그의 일상생활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
≪뱀 선생≫, 라이허 지음, 김혜준·이고은 옮김, 51∼5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