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기관
중국 고전소설 신간, ≪금고기관≫
17세기, 단편소설의 유혹
중국 대륙에 소설이 번져 간다. 경제와 문화가 일어나고 일상이 살찌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육체로부터 마음으로, 현재로부터 과거로 인식의 지향점이 이동을 시작한다. 17세기 중국 소설 네 편을 소개한다. 당대 최고의 출판 기획편집자인 포옹노인의 대중 감각을 만나 보시라.
<<금고기관>>은 어떤 책인가?
풍몽룡이 지은 세 권의 단편소설집 ‘삼언’과 능몽초의 두 권짜리 단편소설집 ‘양박’의 작품 200편 가운데 40편을 뽑은 선집이다.
언제 책인가?
1632년부터 1644년 사이로 추정한다.
책의 탄생 배경은?
당시 인기가 있었던 ‘삼언’과 ‘양박’은 모두 200편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선집본 ≪금고기관≫의 출현은 그 틈새시장을 노린 출판업자의 전략에서 나온 하나의 결과물이다.
‘삼언’ ?
세상을 깨우친다는 ≪유세명언(喩世明言)≫, 세상을 경계한다는 ≪경세통언(警世通言)≫, 세상을 각성시킨다는 ≪성세항언(醒世恒言)≫의 세 권이다. 이를 일러 ‘삼언(三言)’이라 한다.
풍몽룡이 누군가?
과거에 좌절하고 40대 전후에 소설, 희곡, 민가, 역사 책을 쓰고 출판도 했다. 57세에 공생(貢生)으로 선발되어 훈도(訓導), 지현(知縣)을 지냈다.
‘양박’은?
책상을 치며 기이함에 놀란다는 ≪박안경기(拍案驚奇)≫와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 두 권이다. 그래서 ‘양박(兩拍)’이라 한다.
능몽초는?
그의 가문은 채색 인쇄본과 질 좋은 선본(善本)을 내기로 유명한, 대대로 출판업에 종사해 오던 집안이었다. 과거 보러 소주에 왔다가 ‘삼언’ 의 인기에 자극을 받은 한 출판업자가 그에게 작품을 부탁하게 된다. ‘양박’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17세기 중국의 출판 사정은 어떠했을까?
명 대 중엽만 하더라도 출판의 중심지는 복건성 건안(建安)이었다. 당시에는 외진 곳이었다. 17세기에 들면서 절강성 항주, 강소성의 남경과 소주로 중심 이동이 시작된다.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이들 도시가 출판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출판물도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출판물의 품질은?
질 좋은 고가의 소장용 도서에서부터 품질이 떨어지는 소책자 인쇄물에 이르기까지, 인쇄 시장이 넓어졌다.
독자층은?
출판업이 다양한 계층의 독자를 공략하게 되었다.
출판 시장의 확대는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다양한 제재와 편폭을 가진 소설 작품이 출현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금고기관>>의 편집자는?
포옹노인이다.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다 갔는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왜 모르나?
17세기 출판 환경은 필명 사용이 유행이었다. 소설 같은 통속 출판물에 자신의 실명을 쓰지 않으려 했다.
포옹노인은 편집만 했나?
내용을 약간 수정하고 윤색도 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은 원래 모습 그대로다.
능몽초나 풍몽룡과 비교해 그의 역할은?
당시 독자들의 관심과 취향을 읽어 내고 작품의 구조, 주제 의식을 두루 고려해 작품을 골랐다. 포옹노인의 안목과 감각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그의 편집 방침은?
송·원 대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은 배제하고 명 대에 새로 창작된 작품만 골랐다.
내용은?
줄거리가 황당하지 않다. 평범한 내용이지만 곡절이 있다. 신선한 작품을 뽑았다.
주제는?
인과응보의 결말, 해피엔딩의 결말을 좋아했다. 풍속을 교화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선별했다.
이번에 고른 4편은 어떤 작품인가?
≪유세명언≫에서 <등 태수가 재산 문제를 귀신같이 판결하다(滕大尹鬼斷家私)>, ≪경세통언≫에서 <늙은 문하생이 삼대에 걸쳐 은혜를 갚다(老門生三世報恩)>, <당해원이 기발한 계책으로 사람들을 놀리다(唐解元玩世出奇)>, ≪성세항언≫에서 <기름 장수가 최고의 기녀를 차지하다(賣油郎獨占花魁)>를 번역했다.
선정 기준은?
구조와 완성도를 기준으로 뽑았다. 지금까지 완역되지 않은 작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주제는?
‘문인’, ‘과거(科擧)’, ‘재판’, ‘사랑’이라는 네 개의 키워드를 통해서 17세기를 조망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4편은 너무 적지 않나?
비록 네 편이지만 각 작품의 키워드를 염두에 두고 읽기 바란다. 당시 중국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깊이 있고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키워드를 생각했나?
전통 시기 중국 지식인들에게 과거는 거의 유일한 신분 상승의 문이었다. 치열해진 경쟁으로 양산된 잉여 지식인들은 사회적 병폐를 낳기도 했지만, 대중적인 문화의 생산과 전파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그래서 키워드가 뭔가?
과거와 문인이다.
재판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중국에서 소송 사건을 다루는 소설은 공안(公案)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나눈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어떤 작품이 있는가?
≪팽공안(彭公案)≫, ≪시공안(施公案)≫, ≪포공안(包公案)≫, ≪삼협오의(三俠五義)≫가 있다. <판관 포청천>과 같은 유의 작품을 가리킨다.
어떤 의미가 있나?
당시 사법 처리 관행과 계급 구조를 짐작할 수 있다.
사랑은?
재자(才子)와 가인(佳人)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소설 장르도 있고, ≪홍루몽(紅樓夢)≫도 무관하지 않다. ≪서상기(西廂記)≫와 ≪모란정(牡丹亭)≫은 희곡에서 사랑을 다룬 대표작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형섭이다. 중문학을 강의한다.
한 대목 맛을 본다면?
아래 글을 보라.
“얘야, 네가 기녀의 신분에서 벗어나 양민이 되겠다는 건 멋진 꿈인데 내가 왜 안 된다고 하겠니? 그렇지만 기녀가 양민이 되는 데도 차이가 있단다.”
“기녀가 양민이 되는 데 무슨 차이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진짜 양민이 되는 경우도 있고 가짜 양민이 되는 경우도 있지. 고통스럽게 양민이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즐겁게 양민이 되는 경우도 있단다. 적당한 시기에 양민이 되는 경우도 있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양민이 되는 경우도 있지. 완전히 양민이 되는 경우도 있고 불완전하게 양민이 되는 경우도 있단다. 얘야, 인내심을 가지고 내 말을 들어 보렴. 어떤 걸 진짜 양민이 된다고 하는 걸까? 무릇 재주 있는 남자는 아름다운 여자를 원하고 아름다운 여자는 재주 있는 남자를 원하니, 이들이 맺어지면 좋은 배필이 되는 거지. 하지만 좋은 일에는 시련이 많이 따른다는 말이 있듯이 종종 이런 만남을 원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단다. 운 좋게도 이런 두 사람이 만나 끔찍이 서로를 사랑해서 차마 떨어질 수 없어 결혼하기를 원하지. 그들은 마치 짝을 이룬 누에나방처럼 죽어도 서로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데 이런 걸 진짜 양민이 되었다고 하는 거란다.
그럼 뭘 가짜 양민이 되었다고 하는 것일까?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아. 여자의 본심은 그에게 시집가는 것을 원치 않지만, ‘결혼’하겠다는 것으로 그를 속여 그의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만든 후 돈을 물 쓰듯 하게 하지. 하지만 결혼이 성사될 때가 되면 핑계를 대면서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또 사랑에 빠진 남자는 여자가 속으로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어이 그녀를 집으로 맞아들이려 하지. 그래서 큰돈을 들이고 기생 어미를 화나게 하면서 여자가 원치 않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아. 여자는 억지로 그 집에 들어왔기에 진심으로 남편을 따르지도 않고 일부러 가법(家法)을 지키지 않는 거야. 작게는 억지떼를 쓰고 소란을 피우며 제멋대로 행동하고, 크게는 대놓고 서방질을 하기도 하지. 사람들은 그녀를 용납할 수 없어 길면 1년, 짧으면 반년 있다가 그녀를 쫓아내고 그녀는 예전처럼 다시 손님을 받는 창기가 되지. 이런 경우 그 여자가 양민이 되려 한 것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명분일 뿐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걸 가짜 양민이 된다고 하는 거야.
≪금고기관≫, 포옹노인 엮음, 최형섭 옮김, 84~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