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정공채 시선
한국 시 신간, <<초판본 정공채 시선>>
조선 땅에서 그늘 빛으로
미8군의 차가 질주하는 조선 땅에서 그가 본 것이 빛인지 그늘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자를 통해 태양을 바라보는 방법을 익힌 것만은 분명하다. 하여 시간은 공간의 그림자가 되고 욕망은 존재를 반사하는 물질, 항아리가 되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확 돌았다고는 하지만 빛의 감수성은 언제나 그림자로 남는다.
정공채는 어떤 인간인가?
낭만적 자유주의자다. 빛의 무늬와 바다의 자유를 노래했다.
빛과 색에 집착?
색채 대비를 통해 대상 세계의 양면성을 해석한다.
그에게 빛은?
‘텅 빈 실체’다. 실재적 세계 인식의 도구다.
어디에 도달하는가?
‘그늘 빛’의 양면적 세계가 자아의 내면 공간에도 자리함을 확인한다.
시로 설명한다면?
<자화상>에서 “시간의 그림자가 수면에 어려/ 물그림자도 짙게 비”출 때 자신의 고독을 깊고 맑게 느끼는 것으로 드러난다. 빛의 선험성을 알기에 “그림자의 진실”을 체감하고 “시간의 그림자 속에 조용”히 자신의 존재를 정화한 이후 “그늘 빛으로/ 혼자 어둡고 반짝”대고 싶어 함으로써 낭만적 개인주의자의 표정을 보여 준다.
왜 개인주의인가?
인간은 누구나 계몽의 빛 앞에서 그림자처럼 고독한 단독자로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유는?
낭만적 자유, 해방적 자유, 이미지의 자유다.
이미지의 자유는?
인간의 오감을 일깨우는 냄새로서의 자유로 변주된다. 자유는 자유라는 추상화된 기표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밀감처럼 향기로운 실체를 동반하면서 구체적 실상을 드러내는 까닭이다.
자유와 바다는 어떻게 연결되나?
그는 다도해 인근 하동 출신이다. 바다는 유년 이래 “무변의 공간”이다. 대타자이자 자유의 물리적·상상적 실체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자유를 지향하는 욕망은 어떻게 드러나나?
항아리를 통해서다. 항아리를 응시하고 항아리를 빚는 대상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빚는다. 항아리를 빚는 욕망을 시로 길어 내서는 자신의 욕망의 표정을 검토한다.
욕망의 표정을 읽으면 무엇이 보이는가?
욕망을 해소하는 시적 투쟁이다.
항아리와 욕망은 어떤 관계인가?
항아리는 여인의 엉덩이이자 신체 전부이며, 빛으로 빚어지는 부드러운 감각의 종합이자 욕망의 밑동을 송두리째 흔들어 대는 자극의 실체다.
현실적인가?
낭만주의자에게 현실은 모순덩어리일 뿐이다.
욕망은 충족되는가?
영원히 불가능하다.
증거는?
시인의 노년 풍경에서 추측할 수 있다. 노년의 작품에 드러난 시인의 표정은 욕망이 지나간 뒤 쓸쓸한 폐허의 자리에 남겨진 자의 허허로움을 보여 준다.
정공채는 어떻게 시인이 되었나?
24세였던 1957년,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이 완료된다.
첫 시집이 늦은 이유는?
생업인 기자 생활과 함께 1963년 ≪현대문학≫에 <미8군의 차>를 전재하면서 반공법 위반 사건으로 필화에 연루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욕망에 집중하게 된 것은 필화의 영향인가?
그럴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미8군의 차>에서도 이후의 주요 모티프인 ‘자유’와 ‘항아리’의 이미지가 포착되고 있다.
문단의 평가는?
미미한 형편이다. ‘순수시’ 계열의 낭만적 상징주의자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40대 중반이 되어 첫 시집을 상재했고 문단 중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시작 활동은?
1980년대에 왕성하게 시 창작 활동을 했다. 2000년 제6시집에 이르기까지 총 6권의 시집을 상재하는 등 말년에 이르기까지 시적 영혼을 끊임없이 어루만지며 항구와 세계의 이미지를 집적하려는 주지주의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다.
직업이 시에 영향을 미쳤나?
미치지 않았다고 파악된다. 시인의 영토와 기자의 역할을 다르게 본 것 같다.
≪초판본 정공채 시선≫의 작품 선택 기준은?
초판본과 전집을 대조하면서 문학적 수월성을 기준으로 선별했다.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징주의 시의 다양성에 일조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한 편의 시를 고른다면?
<미8군의 차>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시다.
어떤 작품인가?
‘대장시(大長詩)’라는 소제목으로 쓰여진 서사시다. 1945년 해방 이후 1963년까지 18년 동안 주한 미군의 차바퀴가 매일 질주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결핍과 자유’의 양가성으로 상징화하고 있다.
당신은 누군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 오태호다.
2012년 ‘젊은평론가상’을 받았나?
그렇다.
美八軍의 車
1
駐屯
버드나무에 말을 맨
駐屯.
十八 年의 江河와 그
日月.
옛날에는 힘센 장수가
무딘 손으로
말고삐를 매었다.
버드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우리 朝鮮 땅에.
큰 사발에 가득한 술
단숨에 마시고
주먹으로 수염을 닦음.
털어 버리는 戰塵
그리고
노오란 黃土가
煙氣처럼 흩어진다.
겁을 먹은 朝鮮 땅의 바람 속에서.
겁을 먹은 朝鮮 땅의 바람 속에서.
…. 오늘
와서 생각해 보면
옛날의 일은 絶對로 아니다.
바로
들떠 버린 歡喜 가운데
철없는 어린 아가같이
방긋거리며
어리석기 때문에
좋은 사람같이
처음부터 門을 활짝 열고
자리 오세요!
반갑게도 기쁜 마중을
두 손까지 높이 치켜울리고
아까 그 옛날의 버드나무에
우리들 손수
말을 매어 준 事實.
* 이 시는 매우 길다. 70쪽이 넘기 때문에 첫 연만 옮겼다.
≪초판본 정공채 시선≫, <美八軍의 車>에서. 정공채 지음, 오태호 옮김, 105∼1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