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황석우 시선
한국 시, 아나키즘 문학 신간 ≪초판본 황석우 시선≫
시는 쓰레기를 싫어할까?
아이들을 위한 노래라고 하기엔 너무 낯설고 박물학의 교재라고 보기엔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며 유머라고 하기에는 처지에 맞지 않는 과장이 소란하여 우스개에 불과하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고 시집 ≪자연송≫을 본 주요한은 평한다. 황석우는 아나키즘 문학, 곧 모두가 평등하게 자율적인 개성을 발휘하는 시를 쓰려 했다. 어느 쪽이 옳은가?
황석우는 어떤 시인이었나?
아나키즘 사상을 문학으로 구현한 시인이다.
어떻게 살았나?
1895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가난하게 자랐으나, 동경 유학을 다녀오는 행운도 있었다. 여기에는 누이의 뒷바라지가 한몫했다.
누이는 누구인가?
≪자연송≫ 서문에 누이에게 바치는 헌사가 있다. 전문을 옮긴다.
“이 詩集을 眞卿 누이에게.
나에게는 어머니가 둘이 잇엇다. 하나는 나를 나어 주고 임의 고인이 되여 바린 어머니, 하나는 나를 길너 나로 하여금 오늘날의 이 詩集이 잇게 해 준 어머니다. 그는 곳 나의 단 하나의 누이 되는 ‘眞卿’이다. 나는 이 詩集을 나를 길너 주기에 남이 용이히 으지 못할 모든 눈물 겹운 불행한 운명과 싸와 온 眞卿 누이와 는 간난한 생애 가운데 恨 깁게 돌아간 亡母의 고적한 령전에 업대여 밧친다.”
어린 시절은?
가난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비참함을 그리기보다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풍을 보여 주었다.
시작의 계기는?
동경 유학 시절에 일본의 상징주의 시인 미키로후의 가르침을 받으면서부터다.
미키로후는?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동요 작가다. 대표작인 <고추잠자리>는 일본의 국민 동요다.
어떤 영향을 받았나?
초기에 상징시 창작에 주력했고 동요시도 많이 남겼다.
등단은?
1919년부터 ≪태서문예신보≫에 <은자의 가>, <어린 제매에게>를 발표했다.
작품 성향은?
전기에는 상징시가, 후기에는 자연시가 주류를 이룬다.
전기와 후기의 차이는?
전기에 창작된 상징시는 관념적인 한자어와 상징적인 어휘로 시인의 현실 인식을 보여 준다. 자연시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창작되어 자연에 대한 인상과 감상을 표현했다.
어떤 시를 썼나?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시를 썼다.
쉬운 시를 고집한 이유는?
대중의 수준에 맞춘 문학 창작이 아나키즘 사상의 실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 문학의 특징은?
예술을 위한 예술을 거부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문학이다. 이광수 같은 천재의 문학이 아니라 상하 귀천 없이 평등하게 자율적인 개성을 발휘하는 문학을 지향한다.
또 있나?
권구현이 있다.
황석우와 권구현은?
권구현의 시가 비극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면, 황석우는 그것을 조화로운 자연으로 대체한다.
자연시에 주력한 이유는?
자연은 조화와 자율을 완벽하게 실현한 유토피아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자연송≫은 어떤 시집인가?
1920년대에 창작된 시편 중에서 자연시만을 골라 출판한 그의 유일한 시집이다.
주제 의식은?
유토피아 지향성이다. 태양과 달, 별, 지구 등 우주와 지구에서 나타나는 자연현상을 동시적인 감성으로 묘사한다. 우주로부터 지구의 작은 세계로 시인의 시선이 옮겨 가는 인상이다.
평단의 반응은?
주요한은 시 대부분이 ‘트레쉬’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쓰레기라고?
“동요라 하면 넘우 생경하고 불순하며 박물의 교재로는 불완전 부정확하고 순박한 유모어로 보기에는 광고 나팔이 신분에 불부하고 결국 일개의 유희로밧게 볼 수 업다”고 했지만 황석우의 시를 워즈워스의 전원시에 비교한 데 대한 불만도 있었다. 완성도 면에서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김용직은 맹목적으로 “시의 새로움”을 추구하고 자유시의 내재율을 살리지 못했다고 했고, 김윤식은 “한자어와 한글의 과도기적 상태, 원형 투의 어미 처리, 관념적 환상성”을 지적했다. 관념성과 산문적 운율에 대한 비판은 평단의 공통점이었다. 최근 그의 사상과 활동에 주목하는 연구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관점이 제시되고 있다.
새로운 평가의 관점은?
상징시와 자유시로 나누어 보는 것이 아니라 아나키즘이라는 사상적 지반 위에서 통합 해석한다.
시만 썼나?
≪근대사조≫, ≪장미촌≫, ≪대중시대≫를 창간하고 사상운동에 활발했다. ≪대중시대≫는 공산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가 함께 활동한 잡지로, 이후 시인의 사회 활동을 예고한다.
흑도회는?
≪대중시대≫가 창간된 해 9월에 흑도회에 가입한다. 일본인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와 한국인 아나키스트인 박열, 정태신, 김약수 등이 활동하던 조직이었다. 황석우는 1921년 11월 선전문을 배포하다 검거, 총독부의 감시를 받기 시작했고 이듬해 와세다대학에서 제적당한다. 이때 흑도회도 해체되었다.
만주에서는 뭘 했나?
조선문인회 창립을 주도하고, 1927년에는 만주이주조선농민보호연구회에 간여했다. 만주 전역에 거주하는 농민들의 생활 상태를 조사해 대책을 강구하면서 1930년대 초까지 만주 지역 실상에 대해 강연했다.
대표작은?
<사생아>다.
地上의 屈指하는
美人−나희 찬 여름
날날히 粉丹粧하고
香水로 몸 저리고
그 집 동산 속으로
옷 잘 입은 美少年의
새와 나비들을 번갈너 불너들이더니
여름의 색씨는 어느듯 아비 몰을
私生兒−가을바람을 나어 그 애기를
사람들의 世界 地球의 우에 내버리고
밤 逃走하여 地球의 머−ㄴ 國境을 넘어
空中의 어느 곳으로 자최를 숨겨 바렷다
그 애기는 들노 山으로 헤매며
엄마를 불으는 듯히 노래노래 해 가며 운다
나무들은 그 情狀 可憐하여 닙파리 눈물을 어트린다
≪초판본 황석우 시선≫, <私生兒>, 황석우 지음, 김학균 엮음, 148쪽
꼽는 이유는?
겉으로는 자연의 풍경을 읊은 듯하지만 내용은 비참한 현실을 말한다. 이중 메시지다. 자율과 조화의 세계인 자연을 닮아 인간계도 서로 돕고, 각자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학균이다. 서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염상섭 소설의 추리소설적 성격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세종대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시립대 글쓰기센터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