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
설을 맞는 마음 2. 설날이 상서로운 까닭 ≪낙인≫
새해는 거저 오지 않는다
땀흘린 365일이 있고서야 온다.
그런 준비의 시간이 없다면
오더라도 달콤하지 않고 상서롭지 않다.
여기저기 거꾸로 써 붙인 축문도
서로 나누는 한마디 축원도 소용없다.
1930년대 청년 짱커자는 걱정스런 얼굴로
수상한 세월의 새해를 마주한다.
옛 성현이 이날은감히 일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뜻을
지금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었기 때문이다.
정말 쉽지 않네. 360일을 고생하고서야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이 있어야
360일의 고생이 전부 달콤하게 숙성되노니!
빈부를 나눌 것도 없이, 아주 상서로운 말로
새빨갛게 봄을 맞는 새 대련(對聯)을 쓴다.
예스럽고 소박한 산촌에선 종종 대련을 거꾸로도 걸지만
무슨 상관인가, 새해에는 어찌하든 상서로운 것을.
길조를 위해 ‘유(有)’ 자는 전부 거꾸로 붙이고
외양간과 돼지우리에도 길한 글자를 가득 붙이고
새해맞이 준비로 사람들은 밤낮을 연속으로
남녀가 함께 섞여, 손이 바쁘건만
입속의 이야기는 얼마나 한가로운지
할머니들은 가장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늘에 기도한다.
한 가지, 한 가지 기도하는데
소리가 낮아 하늘만 들을 수 있으리라.
섣달 그믐날 밤 몸을 일으킨 방향과
입을 뗀 첫말을
먼저 마음 깊이 새기며
회피해야만 하는 것을 적절히 처리하고
휴지로 아이의 입을 한 번 닦고
다시 신에게 고한다.
아이의 무지한 말은 방귀 소리거니 하십시오.
밤에 터진 폭죽이 모든 사람 마음에 울려
(이때 모든 신이 일제히 세상에 내려오니
엄숙하지 않은 사람 하나 없었다!)
모든 불운을 떨쳐 버리며
설날에 솟아오르는 태양을 맞이한다.
세배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한 무리, 한 무리 도처에 보이니
새로 차려입은 모습에 사람들 얼굴을 알아보고
멀리서도 한마디 축복을 보낸다.
깊은 규방 속의 아가씨도 오늘은 얼굴을 봄바람에 드러내고
가문의 원수도 미소로 맞으며
거리에선 눈깔사탕 막대기를 나무에 끼우고
아이들이 골목을 포위하고
도박장에는 한 줄 머리들이 들렸다 숙여졌다 하며
돈이 물처럼 흘러 책상 위에 소리가 났다.
옛 성현이 금기들을 정하셨으니
고생하는 사람도 이날은 감히 일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마다 마음에 물이 새는 것처럼
천천히 상쾌한 편안함이 흘러내린다.
몇 세기를 이렇게 내려오며
1년의 고생을 이날로 보답받았다.
올해는 세월이 이상해서,
신년에도 예전의 풍경은 전부 사라지고
낡은 형식을 사용하더라도
형식 안에 달콤한 속은 다 벗겨 냈구나!
할머니의 축사(祝辭)에는 믿음이 없고
어린아이의 손도 예전처럼 대범하지 않고
어른들은 고개 떨구고 흥 하는 소리가 축복인 셈,
이어지는 것은 기다란 탄식뿐!
무엇이 천하의 인심을 붙잡아 갔는가?
보아라! 모두들 걱정스런 얼굴로 새해를 마주하고 있구나.
≪낙인≫, 짱커자 지음, 박남용 옮김, 145∼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