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5.폴리티컬 코렉트니스, 정의롭게 말하기
2012년, 왜 이 책이었나? 4. 문화관광부 언어부문 최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정의롭게 말하기>>
니 맘대로 말하면 안 돼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말할 수 있다. 누구도 이것을 막을 수 없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흑인을 깜둥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떤가? 장애인 친구를 다리병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유일까? 사회주의자를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은 언론의 자유인가? 물론 자유가 아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르고 바르지 못함은 어디서 어떻게 나뉘는가? 이 책이 올해의 언어부문 최우수 교양도서로 선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롭게 말하기를 위해 고군분투해 온 박금자에게 말의 올바름과 그 척도를 물었다.
“단어는 정치적 힘을 갖는다. 누가 정의하는가?” 로빈 레이코프, 캘리포니아대학교 언어학 교수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무슨 말인가?
아이들도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 친구를 ‘다리 병신’이라고 놀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남을 놀리지 말라는 뜻인가?
다른 사람을 나 좋은 대로, 내 편견으로 폄하하고 차별하고 멋대로 부르고 규정하지 말자는 문화 운동 또는 문화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좋은 얘긴데 왜 이렇게 낯선가?
폴리티컬 코렉트니스가 우리 사회에 본격 소개되지 않았으니 용어가 낯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신은 언제부터 이 말을 알게 되었나?
1990년대 기자 생활을 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이 말이 어젠다였다.
철 지난 논의 아닌가?
출발점을 1970년대에 두면 40여 년이 지났다. 그러나 논의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날 수 없다. 주장이 실현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논의가 끝나겠는가?
논의는 언제 완료되는가?
차별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논의도 계속될 것이다. 논쟁은 언제나 재점화될 수 있다.
서구 사회에서 이 논의의 현 좌표는 어디인가?
폴리티컬 코렉트니스가 내면화되었다. 이제 상식이 되었다는 설명이 보다 정확하다.
차별에 대한 저항이 핵심인가?
그렇다. 번역하면 ‘정치적 올바름’인데, 쉽게 말하면 정의롭게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말하는 것이 정의롭게 말하는 것인가?
성별, 인종,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차별과 편견, 증오가 실린 단어와 표현을 공정한 단어와 표현으로 바꿔 쓰면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나?
흑인의 권리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1970년대에는 미국에서 여성주의자들이 남성 중심의 성차별적인 단어를 바꿔 쓰자고 주장했다.
남녀 평등 운동이 시발점인가?
미스와 미시즈 대신 여성 통칭어인 미즈로 바꿔 부르자는 주장이었다. 여성주의자들의 활동이 도드라지긴 하나, 이들만의 운동은 아니었다.
왜 언어에 초점을 두는가?
사회생활의 모든 관계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언어가 없으면 협상도, 논쟁도 없다. 언어가 소통과 협상의 출발점이다.
언어의 권력 속성을 말하는 것인가?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면 할수록 언어에 민감하다. 언어를 장악하려 하고 더 잘 구사하려 하고 사용언어를 관통하는 프레임을 미리 구축하려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가?
“총을 잡은 자가 권력을 잡는다”고 말한 모택동도 소련 공산당의 명제, 곧 “언어가 무기다”에 경도되었다. 총만이 아니라 언어를 잡은 자가 권력을 확실히, 지속적으로 잡는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의 정치 발전 수준과 인종 구조에서도 폴리티컬 코렉트니스가 필요한가?
개발과 발전만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성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결혼 이주 여성 10만 명, 외국인 100만 명 시대다. 다양성과 다문화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기 힘들다.
한국 사회가 정의와 공정성을 중시하는 사회인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서 독서 열풍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대중은 지금 정의와 공정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 시스템이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에서 언어를 통해 무엇을 보았는가?
경제민주화, 통합, 상생이 자주 등장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반증이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수성이 더욱 중요한 시기가 아니겠는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언어부문 최우수도서로 선정된 이유를 어떻게 짐작하는가?
시대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이 요청되고 있지만 연구나 실천은 모자라다. 여성계에서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지만 확대되지 못했고 정치적 올바름의 논의도 확산되지 못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외로운 노력을 인정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나?
기자들이 봤으면 좋겠다. 언론이 정치적 올바름에 민감해야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박금자다. 서울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고, 국어국문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 한국일보, 뉴시스 등 언론사에서 20여 년간 일했다.
부록.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정의롭게 말하기>> 머리말
정의롭게 말하기에 대하여
우리는 ‘말’로 그저 말만 하지 않는다. ‘말’에 대하여, ‘말’을 대상으로, 자주 많이 열정적으로 말하고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더 배우고 알려고 한다. 대중음악·대중문학이 있는 것처럼 대중문화가 작동하여 만들어지는 대중 언어·대중의 언어학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철자·띄어쓰기·표준어·특이한 단어들에는 강박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정의롭고 바르게 말하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맞춤법과 표준어규정 해설서·특이 단어집·바른말 고운 말 안내서 등은 연이어 발간되지만, 정의롭고 바르게 말하기를 이야기하는 책은 보기 어렵다.
이 책은 정의롭고 바르게 말하기에 대해 독자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쓰인 책이다. 이 책은 한글맞춤법이나 표준어규정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 언어생활에서 그런 사항들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보 시절부터 방명록을 썼다 하면 어김없이맞춤법이 틀리던 이명박 대통령을 ‘각하’ 아닌 ‘가카’라고 풍자하는 세태에 하하 웃을 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꼼수>가 배설물 토해내듯 희화적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단어 ‘가카새끼짬뽕’·‘눈 찢어진 아이’ 등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가카’ 지지파가 아니지만, 그런 단어 사용에 절대 박수 치지 않는다. 더 강하게, 더 자극적으로, 더 욕설을 섞어 사용하는 말장난이라는 점과 현실정치 지향적이라는 점에서 박수 칠 수 없다. 이런 말들은 정치인들이 목청 높여 서로를 헐뜯는 배설과 욕설의 정치적 발언과 도대체 차이가 없다.
작은 차이라고는 ‘힘’을 덜 가진 사람들이 ‘힘센’ 대통령을 상대로 한다는 점일 뿐, 말장난을 넘어선 저항 정신의 발로로 보이지도 않으며, 정의롭고 바르게 말하기와 철저히 어긋난다.
특히 ‘눈 찢어진 아이’는 사실 여부를 두고 실화인가, 야담인가 하며 호기심 속에 사용되고 있지만, 한번 되짚어 보자.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한 아이가 실존하든, 아니든, 그에 관계없이 영미에서 수십 년 전부터 오늘까지도 중국인·한국인·한국계 미국인이 ‘찢어진 눈을chinky eyes 가진 사람boy, lady’이라고 불리며 조롱받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눈찢어진 아이’를 편견에 가득 찬 영·미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웃으며 사용하는 일은 잘못이다.
우리 사회는 이전의 사회와는 달라졌다. 개발과 발전만을 중시하던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성도 중시하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 한韓민족은 단일민족’이라면서 순혈주의를 자랑했던 사회에서 다양성과 다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사회가 되기도 했다. 국제결혼 인구가 10만명, 외국인 근로자 수가 100만 명이 넘었고 수많은 국민과 외국인이 나라를 수시로 넘나든다.
한쪽으로는 정의와 공정성, 다른 한쪽으로는 다양성과 다문화가 중요해진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정의롭고 바르게 말하기가 정말 필요해졌다. 정의롭고 바르게 말하기는 어떤 말하기인가? 1970년대에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 제안하는 말하기가 그중 하나다.
정치적 올바름,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는 그 용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발음도, 의미도 어렵고 생소할지 모른다. 그러나 두어 번만 주의를 기울여 발음해 보면 입에 착 달라붙는다. 그 정치적 올바름은 도덕적으로 공정하게 타자의 이름을 부르자는 진보적인 언어 운동이다. ‘정치적’, ‘political’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 혹 야당과 여당이 치고받는 정치적 담화·<나꼼수>식의 희화적인 말장난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현실 정치와 전혀 관련이 없다. 간단한 예를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불구자’란 단어 대신 ‘장애인’을 사용하고, ‘고령자, 노인네’란 단어보다는 ‘어르신’을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또, 생존 수단으로 상행위를 도리 없이 선택한 우리 사회 저 피라미드 밑의 상인들을 ‘잡상인’이라 몰아붙이듯이 부르지 말고, 늘어 가는 다문화 가족 2세를 ‘혼혈’, ‘잡종’, ‘하프코리안’이라 비하하지 말자는 운동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여성주의자들이 남성 중심의 성차별적인 단어들을 중립적인 단어들로 바꾸어 쓰자고 외치면서 출발했다. 결혼 여부에 따라 여성을 ‘미스Miss’와 ‘미시즈Mrs’로 구분해 부르지 말고 남성 통칭어 ‘미스터Mr’와 수평적으로 여성도 여성 통칭어 ‘미즈Ms’로 부르자는 그 첫출발 때문에 정치적 올바름을 여성주의운동이라고 간혹 오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40년의 역사가 실린 정치적 올바름은 성별gender에서만이 아니라 인종·장애·성적 지향·나이·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차별과 편견과 증오가 실린 단어와 표현들을 공정한 단어와 표현들로 바꾸어 쓰자고 제안한다. 최근에는 환경·식민지 역사·동물 권리 등과 관련해서도 언어를 바꿔 쓰기 하자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환경이 중요한 이슈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온실효과 greenhouse effect’, ‘탄소제로배출zero emission’, ‘간접흡연passive smoking’ 같은 단어가 통용되고 있다. 동물 권리가 부각되면서 ‘애완동물, 애완견pet’ 대신 ‘동반자companion, 동반견’이란 말이 등장했다. 이런 단어들도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서 주도적으로 만들어 쓰기 시작한 용어들이고 해당 국어중 상당수가 해당 영어를 직역하거나 참고하여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이 책은 정의롭고 바르게 말하기를 제안하는 폴리티컬 코렉트니스를 전체적으로, 그리고 자세히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둔다. 공정한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려면 정치적 올바름의 온전한 모습을 찬찬히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정치적 올바름은 왜 차별과 편견 없는 단어와 표현을 제안하는가의 이유부터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란 어떤 단어와 어구를 가리키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단어와 어구의 구성이며 의미는 어떠한가를 이 책에서 다루는 까닭은 정치적 올바름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다. 제시되는 사례에는 국어도 들어 있지만 영어가 다수 포함된다. 정치적 올바름, 폴리티컬 코렉트니스의 정신이며 용어가 미국과 영국에서 비롯되었고 진전되어 온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심각하게 논의조차 진행된 적이 없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모쪼록 독자의 이해를 구한다.
정치적 올바름이 제안하는 단어와 표현과 어구 중에는 부자연스러운 용례가 있다. 바라건대, 독자들은 그런 용례의 비판에 너무 시간을 들이지 말았으면 한다. 설거지를 하다 보면 접시가 깨지는 수가 있다.
부자연스러운 용례는 정치적 올바름의 깨진 접시다. 그러니 몇몇 용례 보다는, 정치적 올바름이 언어 바꿔 쓰기를 주장하는 이유와 정치적 올바름의 주장이 언어학적으로도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을 할애하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에 더 많은 독자와 관련자들이 주의를 집중하여, 앞으로 논의를 했으면 한다.
1. 정치적 올바름 이전에는 소수자들과 타자들에 대한 이름 붙이기가 얼마나 다수자 중심적이었던가.
2. 언어 문제는 과연 사소한 문제인가.
3. 말로 상처를 입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언어는 그저 언어가 아니라 행위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가.
4. 언어 변화는 자연스럽게 저절로 일어나는 변화만이 좋은 것인가.
이 책은 폴리티컬 코렉트니스를 국어로는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해 사용한다. ‘Political Correctness’, 짧게 줄여 ‘PC’는 ‘정치적 타당성’, ‘정치적 적합성’, ‘정치적 공정성’, ‘도의적 공정성’ 등으로도 번역되어 사용되어 왔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원래 의미하는 바에 충실한 용어인 데다 그간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다.1) 또 하나, 이 책은 정치적 올바름을 주로 언어 문제로 국한시킨다. 언어학 공부를 조금 한 필자의 선택이다. 폴리티컬 코렉트니스는 영·미에서는 언어 문제만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지적 전통·행동·교과과정 개편 문제까지를 아울러 가리키기도 한다.
이 책은 대중서이지만 각주를 붙였다. 보통의 독자는 본문만 읽어도 좋을 것이다. 각주는 본문에 나온 이야기에 대해 더 상세한 배경을 알기 원하는 분들을 위한 것이다(각주나 본문 안의 참고문헌 아래 표시된 ‘loc’은 책의 페이지와 비슷한, 전자책 킨들Kindle의 ‘location’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