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 자유 확장의 판결
커뮤니케이션 연구 현장 5. 충남대학교와 헌법재판소
이승선과 대전의 봄
이승선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연구한다. ≪표현 자유 확장 판결≫은 그의 최근작이다. “선생이라는 외피와 강단에 오래 몸 담았다는 기록에 기대어 게으르게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다짐이 삼월의 하늘처럼 투명하다.
거목이 사라집니다. 캠퍼스에서 가장 큰 나무 두 그루입니다. 학교 당국은 교수들에게 이 미루나무 두 그루를 베어내면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강의실 인접한 곳에 형제처럼 나란히 서 있어 혹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학생들이 다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강의실 창문을 가린다거나 이웃한 작은 나무들의 성장에 지장을 준다는 것도 이들이 사라져야 할 명분이 되었습니다. 봄날이면 여기저기 주책없이 흩날리는 꽃가루도 한 원인인 것 같습니다. 오래된 거목들이 스무 살 청년들의 일상에 장애물로 여겨지고 있는 셈입니다.
대학의 선생이 되려고 작정했을 때 마음속에 두려움 하나가 자리 잡았습니다. 제가 연구하고 강의하는 내용들이 ‘선생의 가르침’이란 그릇된 외경 속에 외려 배우는 사람들의 시야를 흐리게 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이었습니다. 두려움과 시행착오를 줄여보기 위한 방편으로 언론학 학위과정을 마친 뒤 법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방송법제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준비하던 때부터 따지자면 스무 해, 법대 신입생 시절부터는 대략 열다섯 해 동안 ‘언론과 표현의 자유’ 문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올해 봄부터는 일 년간 헌법재판소의 방문연구교수 승인을 받아 공부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방대한 판례 중에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사례들을 찾아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중에서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 분들의 삶과 언론사상의 특성을 정리해 보려는 장기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최근 언론자유의 퇴행을 경험하면서 ≪나는 고발한다≫를 꺼내 읽습니다. 헌법적 가치와 명예훼손 소송, 증거 조작과 인격 살인, 거짓과 진실, 언론과 여론전 등 100여 년 전 프랑스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문제들이 작금의 우리 사회에서 재현되는 듯해 언론법을 공부하는 선생으로서 몹시 안타깝습니다. 크고 오래된 두 그루의 나무들이 순식간에 잘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선생이라는 외피와 강단에 오래 몸담았다는 기록에 기대어 게으르게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이승선
충남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다. 연세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면서 국문학과 법학도 공부했다. 방송법제와 관련된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0년 한국방송대학교 법학과 1학년에 입학해 4년간 공부했다. 2006년 충남대학교에서 “언론소송과 당사자 적격”이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공적인물의 통신비밀보호와 공적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연구해 2008년 한국언론정보학회 우수 논문상, 방송서비스의 재판 관할권과 관련된 쟁점을 연구ㆍ발표하여 2010년 한국언론법학회 철우언론법상을 받았다. 언론의 취재보도와 위법, 명예훼손 연구에 관심이 많다. 요즘 한국의 언론자유를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한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의 ‘언론사상’을 탐구한다.
≪표현 자유 확장의 판결≫
국가보안법의 ‘명백한 위험’ 원칙은 무엇으로 바뀌어야 하나?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다. ‘미네르바 사건’에 적용된 법 조항은 왜 위헌인가? ‘공익’ 개념의 불명확성 때문이다. 명예훼손성 언론보도의 면책 사유는? ‘진실오신의 상당성’이다. 20년간 언론법제 연구에 천착해 온 이승선이 기념비적 판례 10개로 표현 자유의 법리적 쟁점을 정리했다. 쉽지 않던 표현 자유 문제가 명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