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트루베츠코이는 ≪유럽과 인류≫에서 쇼비니즘과 코즈모폴리터니즘이 자기중심주의에 기반을 둔 것으로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즉 쇼비니스트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민족은 자기 민족이며 가장 훌륭한 문화는 자기 문화라고 주장하며, 다른 민족들은 그가 속한 민족의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즈모폴리턴은 로마-게르만 민족이 만들어낸 문화를 인류 보편 문명이라고 주장하며, 문명화되지 못한 민족들은 유럽 문명에 참여하여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인류는 민족 간의 차이를 제거하고 세계진보라는 하나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쇼비니즘과 코즈모폴리터니즘은 완전히 상응하며 차이가 있다면 쇼비니스트가 하나의 민족을 택하는 반면 코즈모폴리턴은 몇 개의 민족들이 모인 집단, 즉 로마 게르만 민족을 택한다는 것이다.
또한 트루베츠코이는 유럽학자들이 객관적인 학문적 고찰이 아니라 단순한 자기중심주의에 빠져 진화의 사다리를 만들었음을 지적한다.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는 오늘날의 유럽 문화가 있고, 다음 단계에는 유럽 문화와 유사한 고대 문화들이 위치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유럽 문화와 유사한 정도에 따라 아시아 문화 등이 그 뒤를 따르고 맨 마지막에는 유럽 문화와 가장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미개 문화가 위치한다. 트루베츠코이가 보기에 사다리의 이러한 배치는 순전히 자의적인 것이다. 유럽인이 만든 진보의 사다리에서 각 단계는 현대의 유럽 문화와 유사한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지 해당 문화의 발전 단계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트루베츠코이는 어떤 분야에 있어서는 미개 문화가 유럽 문화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발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미개인 사냥꾼은 동물의 습성에 대해 유럽의 동물학자보다 훨씬 더 상세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종족의 모든 신화와 문학작품과 도덕규범을 기억하고 있다. 미개 문화는 유럽 문화보다 뒤진 것이 아니라 단지 환경과 목표에 따라 발전의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따라서 트루베츠코이는 유럽인이 설치한 진화의 사다리는 무너져야 하며 문화와 민족이 점차 완성된 단계로 이행하는 획일적 진화의 원칙 대신에 지구상의 모든 민족들과 문화들을 질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동등의 원칙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200자평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볼 때 유럽도 아니고, 아시아도 아닌 중간에 위치하여 동양적인 요소와 서양적인 요소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갈팡질팡했던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교육받은 탁월한 지식인의 자기인식이다. 유럽 문명을 인류 문명이라고 주장하는 유럽의 횡포에 맞서 진짜 인류인 비유럽 민족들이 단호히 맞설 것을 호소한다.
지은이
니콜라이 트루베츠코이는 보통 언어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또한 걸출한 사상가였고 민족지학자였으며 역사가였고 철학자였다. 1890년에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모스크바 대학 총장을 지낸 철학자 세르게이 트루베츠코이였다. 이러한 가족환경 속에서 중학교 때부터 민족지학, 언어학, 역사학, 철학 등을 깊이 공부할 수 있었다. 1908년에 모스크바 대학의 역사언어학과에 입학하였고, 1912년에 비교언어학 분과를 졸업하고, 라이프치히로 가서 청년문법학파의 이론을 공부하는 등 언어학자로서 탄탄한 기반을 닦았다.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언어학에 관한 여러 논문들을 발표했고, 또한 모스크바 언어학 서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신화학, 민족지학, 문화사 등을 연구함으로써 유라시아라는 주제에 접근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캅카스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1920년에 마침내 러시아를 떠나 불가리아에 정착해 소피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연구와 강의에 전념했다.
1920년에 ≪유럽과 인류≫를 처음으로 출간했다. 이후 크게 언어학과 문화 사상사라는 두 방향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언어학 연구에서는 1939년에 언어학 3대 고전의 하나로 꼽히는 ≪음운론의 원리≫를 출간했다. 문화 사상사에서는 민족문제와 민족문화에 대해 연구하면서 점점 유라시아 연구로 경사되었으나, 정치적 성향이 짙은 극단적인 유라시아주의를 배격하고 학문적 연구에 몰두했다.
말년에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이주, 빈 대학에서 슬라브학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를 계속하였으나,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후에 나치의 비밀경찰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그의 필사본들 가운데 상당수가 압수당했고, 결국은 소실되었다. 구밀료프(Л. Н. Гумилёв)에 따르면 트루베츠코이가 나치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공후 가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트루베츠코이의 집에서는 여러 차례 난폭한 심문이 진행되었고, 이 때문에 그는 심근경색을 일으켜 결국 1938년 7월25일 향년 48세, 학자로서는 한창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옮긴이
박지배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하고, 러시아 페테르부르크로 유학하여 러시아 사회·경제사 분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교토 산업대학 초청을 받아 초빙교수(visiting fellow) 자격으로 일본 간사이 지방의 경제사 연구자들에게 발트 무역에 관해 특강을 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아주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서양사, 동유럽사, 역사와 신화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러시아 경제사에 관한 것이지만, 점차 러시아 사회사와 문화사 방면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저자의 말
Ⅰ.문제제기(유럽의 자기중심주의)
Ⅱ.유럽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Ⅲ.유럽 문화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이 가능한가?
Ⅳ.유럽 문화에 편입되는 것은 선인가? 악인가?
Ⅴ.전반적인 유럽화는 불가피한 것인가?
VI.어떻게 유럽화의 부정적인 영향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가?
보론 : 슬라브주의와 유라시아주의의 경계에서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유럽의 학문에서 수용되는 민족과 문화의 등급화는 로마-게르만 문명이 다른 민족의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 호밀죽이 자신을 찬양한다고 해서,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죽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47쪽
실제 역사는 지금까지 유럽화된 어떠한 민족도 로마-게르만 문화와 관련하여 맑은 시각을 유지할 수 없었음을 가르쳐준다. 많은 민족들은 유럽 문화를 차용하면서 처음에는 그것으로부터 가장 필요한 것만 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향후 자신의 발전 과정에서 그들은 처음의 의도를 망각하고, 점차 로마-게르만의 자기중심주의의 최면술에 굴복했고, 유럽 문명에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으며 무분별하게 모든 것을 유용하기 시작했다.
-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