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케냐의 신학자 존 음비티가 1969년에 출간한 아프리카 종교에 대한 개괄서다. 이 책은 동부 아프리카의 스와힐리 문화권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수집한 민족지와 신화 등을 분석해 아프리카인의 일상에 녹아 있는 민간신앙의 구조와 행위, 사고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본 번역본에서는 본문 중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3장 ‘아프리카인의 시간에 대한 개념’(14쪽), 8장 ‘영적 존재, 스피릿과 살아 있는-죽은 존재’(16쪽), 16장 ‘신비한 힘, 마술, 주술과 사술’(10쪽), 17장 ‘악마와 윤리, 정의의 개념’(12쪽) 총 네 장을 번역했다. 3장 ‘아프리카인의 시간에 대한 개념’을 선택한 이유는, 본 저서를 통해 가장 중요한 시간 개념인 사사(sasa)와 자마니(zamani)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음비티는 아프리카인이 인식하고 있는 영적 개념이 사사와 자마니라는 시간 개념을 통해 이해 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8장 ‘영적 존재, 스피릿과 살아 있는-죽은 존재’는 아프리카 민간신앙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내용이다. 아프리카의 신앙 형태는 다양하지만 이들을 함께 묶을 수 있는 공통분모를 꼽으라면 단연코 ‘살아 있는-죽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8장에서는 아프리카인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살아 있는-죽은 존재 이외에도 아프리카 사회에 현존하는 다양한 형태의 신적인 존재와 스피릿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들 신적인 존재와 스피릿, 살아 있는-죽은 존재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아프리카인의 독특한 시간 개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종교와 철학≫의 핵심 내용인 8장과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바탕이 되는 3장은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6장과 17장은 아프리카인들이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면서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신비한 힘의 종류와 기능(16장),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아프리카인들의 독특한 윤리관(17장)을 설명하고 있다. 마술과 주술, 사술 등 신비한 힘은 아프리카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초자연적 힘으로, 이들 사이의 구분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이들 신비한 힘은 긍정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가 아니면 부정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가에 따라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으로 갈린다. 엄격한 구분은 될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마술과 주술은 긍정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반면 사술은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프리카인은 이들 신비한 힘이 개인과 사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사용되는가 아니면 해로운 방향으로 사용되는가 하는 데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여기에서 아프리카인의 독특한 윤리관이 등장한다.
음비티 스스로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고백했던 윤리관의 논리는 사실 외부인의 관점에서 볼 때 당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음비티에 따르면 아프리카인에게 선과 악의 기준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선과 악을 가르는 어떤 윤리적, 도덕적 절대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신이나 스피릿에 의해) 처벌을 받을 경우 그것을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악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무런 영적 처벌 없이 지나간다면 그것은 악한 행동이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간음을 했어도 결과적으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어떤 영적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면 간음 행위는 ‘악한’ 행동이 아닌 것이다. 음비티에 따르면 아프리카인에게 있어 유일한 선과 악의 윤리적 기준은 공동체의 질서 유무이다. 아프리카인은 공동체의 질서를 깨트리는 행위를 악한 행위로 인식하고 있는 반면, 질서가 유지되는 한 어떤 행동도 용납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고 설명한다.
200자평
아프리카 신앙과 사고 체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아프리카 종교에 대한 입문서. 아프리카인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시간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아프리카인의 사사와 자마니라는 시간 개념에는 현재를 중시하는 아프리카인의 사상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인의 시간, 스피릿, 마술, 악 등에 대한 기본 개념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존 음비티는 케냐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자 영국 성공회 목사다. 1931년 케냐에서 태어나고 우간다의 마케레레 대학교에서 종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의 뉴잉글랜드에 있는 배링턴 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아프리카의 신 개념(Concepts of god in Africa)>이란 논문으로 1963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10년간 우간다의 마케레레 대학교에서 종교와 신학 등을 가르쳤고 스위스에 있는 세계 교회연합 위원회(world council of churches’ ecumenical institute)의 소장 직을 역임했다. 이후 세계 각국을 돌며 유수의 대학교에서 아프리카 종교와 신학, 철학 등을 강의하는 한편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부터 스위스의 베른 대학교(University of Bern)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부르크도르프의 한 교구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옮긴이
장용규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 있는 나탈 대학교(University of Natal, 현 KwaZulu-Natal University)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논문 <The Business of Divining: A Study of Healing specialists at Work in a Culturally Plural Border Community of KwaZulu-Natal>는 줄루 사회 민간신앙의 핵인 점술가와, 자본주의 사회인 남아공에서의 이들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장용규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민간 신앙 기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프리카 소수민족과 국경 넘나들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춤추는 상고마≫(2003, 한길사), ≪남아프리카 민담≫(2003, 황금가지)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아프리카인의 시간에 대한 개념
잠재적 시간과 실제적 시간
시간 계산과 연대기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개념
역사와 선사의 개념
시간과 관련된 인생의 개념
죽음과 불멸
공간과 시간
시간의 미래 영역을 확장하거나 발견하기
영적 존재, 스피릿과 살아 있는-죽은 존재
신적 존재와 신의 동료
스피릿
살아 있는-죽은 존재
신비한 힘, 마술, 주술과 사술
악과 윤리, 정의의 개념
악의 기원과 속성
손해배상과 처벌
요약과 결론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프리카인에게 역사와 선사는 신화의 지배를 받는다. 아프리카 전역에는 우주의 창조, 첫 번째 인간의 탄생과 인간 세상에서 멀어지는 창조주, 아프리카 사회의 기원과 현재 국가로의 이주 등과 관련된 수많은 신화가 있다. 아프리카인은 끊임없이 자마니를 바라본다. 사사가 자마니를 통해 모든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자마니는 소멸하지 않는다. 자마니는 활동과 사건으로 가득 찬 기간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창조와 임박한 죽음, 언어와 관습의 진화와 현명함의 출현 등에 대한 설명을 찾기 위해 자마니에 의존한다. ‘황금기’는 매우 가깝거나 존재하지 않는 미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마니 안에 놓여 있다.
-40~41쪽
본래부터 선한 사람 또는 악한 사람은 없다. 다만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율과 관습에 순응하는 것은 선하게 행동하는 것이고 그러지 않는 것은 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151쪽